공연평

* 장유경 안무 『푸너리 1.5』(2월24~2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장유경 안무의 『푸너리 1.5』는 「동해안 별신굿」의 푸너리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풍어제 성격의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이며, 푸너리춤은 굿거리에서 푸너리(‘풀어낸다’는 뜻) 장단에 맞춰 무당이 자유자재로 추는 춤이라고 알려져 있다.
공연은 묵직해 보이는 커다란 암석 같은 물체가 놓여 있는 무대에 흰색 의상과 모자를 쓴 무용수들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흰색 꽃이 달린 고깔을 변형한 듯한 커다란 모자가 머리를 덮고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정체모를 생물들이 아주 서서히 움직이며 푸른빛이 도는 공간을 가른다. 의상의 일부인 기다란 끈이 마치 암초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다. 그래서 무대는 미지의 우주 공간이라기보다는 바다 속 저 깊은 어딘가처럼 보인다.
깊고 푸른 바다 어느 지점에서 삶과 죽음이 갈라질 것이다. 「동해안 별신굿」이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서 있는 어부들의 삶과 관련있는 것인 만큼, 작품의 첫 장면은 그 같은 배경을 상징적으로 이미지화했다. 낮게 깔리는 음악은 단순히 신비로운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일 생존을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듯하다. 거기에는 불안한 긴장감이 있다.
지금이야 훨씬 더 기술이 발달해 안전하다할지라도, 배를 타고 바다로 간다는 것,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죽음’과 직접 대면하는 순간일 것이다. 바닷물에 빠진 이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바다 저 깊은 곳을 헤매다 결국 저승에 도달할 것이다. 비록 모든 무속춤이 자연의 힘에 거역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삶이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며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푸너리 1.5』는 특히 삶도 죽음도 아닌 혹은 그 둘 다인, 즉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선 순간을 주제화했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굿에서 주로 사용되는 도구를 연상케 하는 부채와 신대를 이용해 마치 굿거리를 마련한 듯한 군무가 펼쳐진다. 그 가운데 검은 의상의 무용수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같은 죽음의 이미지는 혼령처럼 첫 장면부터 줄곧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으며, 마침내 삶의 형체로 드러난 것이다. 무당은 삶과 죽음을 매개한다. 그리고 그 순간 ‘춤이 나온다’. 주술적 의미에서 춤은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춤은 곧 춤추는 이(신관이나 무당 등)였다. 이렇게 1시간 길이의 공연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무당의 즉흥적인 푸너리춤(여기서는 김용철의 독무)을 핵으로 하여 절정에 이르렀다 다시 군무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상승과 하강 구도를 보여준다.
물론 극장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 진짜 굿일 수는 없고, 그것을 변형하는 과정에서 굿춤의 의미가 변질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삽입의 형태로 굿춤을 담아냄으로써 굿춤의 본래 성격을 훼손하지 않고 푸너리의 특징과 의미를 무대화하는 의도를 살렸다. 라이브 연주의 매력 또한 더해졌다.
하지만 그 핵을 중심으로 둘러싼 다른 장면의 춤들, 즉 별신굿의 춤사위를 토대로 안무한 군무가 그 자체로 별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펼쳐져 있다. 그럼으로써 이 작품은 특별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전개되기보다 ‘생과 사’라는 좀 더 보편적인 굿춤의 의미가 주제로 남겨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 혹은 중간, 그 추상이 제목의 ‘1.5’라는 암호처럼 남겨져 있는 것이다.
『푸너리 1.5』는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주제의 맥락에서 춤이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고 굿춤의 동작과 장단을 중심으로 주제를 형상화해 전달하는 데 포커스를 두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분명 삶이지 죽음의 상태는 아니다. 안무자는 그 현재를 삶과 죽음의 중간이라고 보고, 삶도 죽음도 모두 긍정한다. 그렇다면 작품은 바로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춤 혹은 안무가 더 명확해져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