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책에 대한 나의 지론은 “책은 책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이른바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의아함을 넘어 괴상한 풍조를 목격하게 된다. 성인을 위한 그림책 또는 ‘색칠 책’이나 ‘컬러링북’으로 일컬어지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령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밀의 정원」 같은 것은 지난 해 8월 출간된 이래 오래도록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더니 아직도 상위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니, 호기심에 겨운 사람들이라면 한번 사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문제는 이런 유형의 도서들이 과연 ‘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그림책 하면 어린이들을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요사이 유행하는 컬러링북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먹선으로 이루어진 그림 윤곽만 그려져 있는 책을 사서 스스로 색칠해 나가며 완성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활자로 표현된 글자는 전혀 없다는 것. 결국 완성된 텍스트로서의 책이 아니라 그림 그리기를 유도하는 취미 만족형 도구에 불과한 것을 책으로 대접해 가며 베스트셀러 운운하는 지경인 셈이다. 그렇잖아도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로 떠오르며 우리 출판산업 생태계를 뒤바꿔놓고 있는 전자책(e-Book) 업계에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터에 종이책마저 콘텐츠가 아닌 아이디어 위주의 마케팅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우리 출판산업은 ‘문화산업’의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도서관도 책들의 무덤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글을 쓰는 사람이 설 땅은 없어지고 말지도 모른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출판에 대한 정의는 “저작자의 원고를 편집자가 정리하고 그것을 인쇄술로써 다량 복제하여 유통기구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여 문화적·산업적 효과를 얻는 일련의 행위”를 뜻하였고, 그 의미는 “인간 문화 축적의 일반적 수단”, “인류 문화 및 그 성과의 위대한 발견과 끊임없는 진보를 위한 가장 적절한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그 결정체인 책은 개인과 정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매체이며, 문화를 창조하는 매체라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출판은 유용한 형태의 정보를 제시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유네스코는 1964년 ‘서적과 정기간행물에 관한 통계의 국제적 표준화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하면서 책이란 “국내외에서 출판되어 공중의 이용에 제공되는 최소한 49쪽(표지 제외) 이상의 인쇄된 비정기간행물을 말한다”고 규정하였다. 일찍이 한국 출판학을 선도했던 남애 안춘근 선생은 “책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맨 것이되, 용이하게 펼쳐 볼 수 있고 운반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목적을 가진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하며, 일정한 분량(49쪽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최근 일간지 칼럼(「한겨레」 2월27일자)에서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이 “‘색칠 책’ 베스트셀러에서 빼자”고 주장한 것에 적극 공감하며, 우리 출판계에서도 ‘책다운 책’을 통해 진정한 독자를 창출함으로써 불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