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2012년 7월, 세계적인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이 진두지휘하는 바체바무용단(Batsheva Dance Company)의 ‘가가 움직임 워크숍(Gaga Intensive Summer Course)’에 참가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을 밟았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벤구리온 공항에서의 엄청난 통관 절차를 거치고, 외교통상부로부터 몇 차례의 경고와 주의 통보 문자를 받으며 어렵게 도착한 땅. 섭씨 30도를 웃도는 열기가 온 몸을 에워싼다.
각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약 2주간의 집중적인 워크숍이 진행되었고, 작렬하는 태양에 맞서 한껏 달구어진 몸들은 움직일 틈 없이 비좁은 공간에서도 질서 정연한 자리를 지켜나갔다. 이미 가가 움직임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오하드 나하린을 비롯한 바체바무용단을 대표하는 무용수들이 직접 수업을 리드하였고,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모든 수업에 임할 수 있도록 비교적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수잔 델랄 센터(Suzanne Dellal Centre)의 내부에 위치한 바체바 스튜디오(Batsheva’s studios)는 연중 가장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참가자들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냉방 시설이 전무한 모든 스튜디오가 땀으로 젖기 일쑤였다. 필자 역시 그간 춤을 추면서 느껴왔던 그 어떤 감정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을 가가와 함께했고, 무엇보다 춤을 추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위대한 것인지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된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연일 뜨거운 열정이 가득했던 워크숍이 끝나고, 이스라엘 투어를 계획하던 차에 현지에서 만난 독일인 무용수와 그녀의 사촌이었던 유대계 미국인 저널리스트가 여행을 동행하게 되었다. 독일과 스위스를 오가며 무용수로 활동 중인 친구와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지만 이 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이주를 결심했다는 친구. 혼자 떠났더라면 그 나름의 긴장과 설렘, 때로는 시행착오들을 맞닥뜨리겠지만 이 여행의 유경험자와 동반자가 함께하니 시작부터 즐거움과 여유가 넘쳤다. 또한 워크숍이 이제 막 종료된 직후여서인지, 몸의 구석구석에 위치한 모든 세포들이 활성화되어있는 듯, 줄곧 기분 좋은 기류가 흘렀다.
지중해를 등지고 동쪽으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내달리면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수도가 나온다. 굽이굽이 유대 사막을 지나 요르단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리다보면 지형이 점차 낮아지기 시작하는데, 대지의 가장자리에 사해(Dead Sea)가 보인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사해는 염분의 농도가 해수의 약 10배로 생물이 거의 살 수 없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반 해수면에 비해 약 420미터 가량 낮은 지점에 위치한 호수로 잘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자리를 잡은 깔리아 해변(Kalia Beach)의 입구에도 해발 -418미터를 표시한 간판이 전면에 붙어있었다. 과거 지중해에서 유입된 바닷물이 오랜 세월에 걸친 지각 변동으로 균열된 지점에서 고이게 되었는데, 이 지역의 건조하고 무더운 기후의 영향으로 점차 수분이 증발하면서 해면이 낮아졌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높아진 염분 함량에 따라 몸이 저절로 수면 위에 뜨는 부력이 형성되었고, 사해의 진흙과 소금은 피부미용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탁월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연안 구역들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들로 조성되어 있었다.

너른 대지와 짙게 펼쳐져있던 사막 한가운데에 잠시 정박하니, 그 건조하고 더운 냄새가 콧속으로 긴급히 밀려오기 시작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생경한 기후가 살갗을 전부 사르르 녹여버릴 듯 엄습해왔다. 그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시공을 초월한 어느 지점을 부유하는데, 나 자신의 존재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실로 맞이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사해의 어둡고 질퍽한 흙 밭을 밟고 지나, 뜨거운 볕에 저항하는 성난 물결을 따라 잠입을 시도하는 순간이 왔다. 끈적끈적하게 찰싹 달라붙는 그들이 급기야 몸을 들어 올렸고, 그 상태가 결코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앉은 자세로 분명히 떠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직 가가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아서였을까! 물속을 유영하는 동안 워크숍에서 줄곧 지시되었던 움직임의 여러 가지 질감(Texture)들이 점차 온 몸으로 만져지기 시작했다. 사해의 수중 속에서 신체가 완전히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었다. 발바닥으로, 손끝으로, 겨드랑이 사이로, 등과 허벅지의 피부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일련의 흐름 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일반적으로 물속에서의 몸은 지속적인 움직임을 갖게 되는데, 가가에서도 시작과 동시에 완전히 끝날 때 까지는 멈추지 않도록 규정되어있다. 또한 정지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흐르다가도 종종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신체 에너지로 변환을 시도하는데, 간혹 바람이 불거나 외부인의 출입 등으로 부딪혀질 때 반응되는 속도와 연관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물속은 또 어떤가! 사해의 수중 바닥 표면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넘쳐났는데, 진흙이 응고되어있는 상태에 따라 가장 보드라운(Soft)것과 점점 걸쭉해지면서 뻑뻑(Thick)해지는 것들 사이에서 다양한 질감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체에 장착된 여러 감각들 중에서도 피부와의 접촉을 통해 세포로 전달되는 촉각(Sensation)이 가가 움직임 문법에서는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질감을 형성하고, 그 결과 독특한 감정과 움직임으로 확장되어 움직임의 질(Quality)을 결정하는 지점으로 연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한 친구와도 자유롭게 그 느낌과 의견들을 나누며 우리가 의도치 않았지만, 가가 워크숍이 사해까지 연장되어 현장 학습을 하는 기분이라고 껄껄 웃으며 돌아왔다.

가가 움직임 언어(Gaga Movement Language)를 비롯한 오하드 나하린(Ohad Naharin)의 대부분의 작업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은 그들이 현재 거주하는 땅과 유구한 역사 속, 민족적 토대위에서 제공받는 것으로 사료된다. 나하린의 초기작인 『검은 우유(Black Milk)』에서 직접 사해의 진흙을 공수하여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가가로 명명된 그만의 독특한 움직임 어휘, 군무를 이루는 구성, 음악과 소품 등의 선택에서도 그들 고유의 전통으로부터 착안된 방식들을 주된 특징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이나 가가 움직임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용어들을 영어와 함께 히브리어로 표기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요인들이 성공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켜왔고, 동시에 전 세계로 번진 가가 열풍에 힘입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도처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y)과 신념(Belief)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과연 우리의 정체성은 어떤 지향(Orientation)과 타협하고 있었나.(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