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시향

“민들레를 『앉은뱅이꽃』이라고 합니다. 물론 곳에 따라 오랑캐꽃이나 채송화도 앉은뱅이꽃이라고 합니다./ 민들레는 따로 『무슨들레』, 『둥글레』, 『멈들레』, 『외음들레』, 『문들레』, 『무운들레』, 『금잠초(金簪草)』, 『지정(地丁)』, 『포공영(蒲公英)』, 『고채(苦菜)』, 『만지금(滿地金)』, 등 여러 가지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 조동화, 「세계의 꽃과 전설」(보진재, 1962)

사립문 안팎으로 널려 피었다 해서 “문들레”라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민들레로 불리게 되었다는 얘기. 쓰디 쓴 나물이라 해서 “고채(苦菜)”라고 불렀다는 얘기. 봄이 되면 천지사방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해서 “만지금(滿地金)”이라 불렀다는 얘기. 이름만큼이나 사연이 많고, 사연만큼이나 그 이름도 가지각색인 꽃.

바람에 꽃씨가 날리는 모습이 머리털이 하얗게 센 노인 같다 해서 누구는 “파파정”이라고도 부르고. 누구는 줄기든 꽃대든 잘라보면 흰 즙이 나온다 해서 “개젖풀”이니 “구유초(狗乳草)”니 부르고. 또 옛 조상들은 아홉 가지의 덕이 있다 해서 “구덕초(九德草)”라고 부르기도 하는 꽃. 아침에 해가 뜨면 피었다가 저녁에 해가 지면 꽃을 닫아버리는 꽃. 꽃이 지면 하얗고 둥글게 솜사탕처럼 부풀어 올라 구름처럼 날아오르는 꽃. 민들레.

민들레 이름 얘기를 하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지요.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입니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부분

이상화 시인이 쓰고 있는 “맨드라미”가 사실은 맨드라미가 아니라는 것. 아셨는지요? 경상도 지역에서는 민들레를 민달래로 부르기도 하고 맨드레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상화 시인이 말한 맨드라미가 실은 토종 민들레, 하얀 민들레라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민들레는 쌍떡잎식물로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랍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 주로 분포하고 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든 잘 자란다고 합니다. 4~5월에 흰 색(토종), 노란 색 (외래종) 꽃이 피는데, 꽃대 끝에 국화처럼 두상화(頭狀花)가 1개 달린다고 합니다. 두상화가 뭔가 싶어 또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꽃대 끝에 많은 꽃이 뭉쳐 붙어서 머리 모양을 이룬 꽃. 국화, 민들레, 해바라기 따위…”라고 나옵니다. 그러고 보니 민들레나 국화의 꽃잎 하나하나가 실은 한 송이의 꽃이었네요. 이제야 처음 알았습니다.

포공영(蒲公英)이니, 포공초(蒲公草)니 하는 것은 주로 한방에서 약재 이름으로 민들레를 그리 불렀던 모양인데, 그 이름의 유래는 먼 옛날 포씨라는 성을 가진 선비[蒲公]와 그에 얽힌 이런 저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대충 비슷한 내용입니다. 어떤 처자가 유방에 종기가 생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고민하다 끝내 강물에 투신을 했는데 포씨 성을 가진 선비가 물에 빠진 그 처자를 구해내고 이름 모를 약초를 먹였는데 유방의 종기도 감쪽같이 나았다는. 그 약초가 바로 민들레였는데 그 후로 포공초로 불렸다는 뭐 그런 전설입니다.

한편, 옛날 우리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는 구덕초라 하여 민들레(포공영)에게 사람이 배워야 할 아홉 가지의 덕(忍, 剛, 勇, 情, 禮, 用, 仁, 慈, 孝)이 있다 하였으니 이를 포공구덕(浦公九德)이라 하였고, 그 덕을 배우라는 뜻에서 서당 뜰에는 반드시 민들레를 심었으며 서당의 훈장을 “포공”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인내[忍], 강인함[剛], 용맹함[勇]” 이런 덕목은 민들레가 어떤 환경에서도 견디고 번식하고 융성하는 모습에 기인한 것일테고, “情, 禮, 用, 仁, 慈, 孝” 이런 덕목은 민들레가 가진 다양한 약용과 식용으로서의 쓰임새에 기인한 것일테지요.

민들레 이름과 관련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요, 하여튼 오래 전부터 이 땅의 민중들은 민들레처럼 살아왔고, 민들레는 민중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으니 “민초”야말로 민들레의 이름으로 가장 걸 맞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많은 시인들이 이러한 민초로서의 민들레를 시로 써왔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시인이 아마도 박노해 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아직 이곳에 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폐허 속에서

날이 밝으면
빵과 물을 구하러
폐허 더미를 기어 다니지만
레바논에 살아온 것처럼
끈질기게
끈질기게
폭탄의 틈바구니에서
끈질기게 살아 있는
민들레처럼

우린 아직 이 곳에 있다
우린 아직 여기 살아 있다
우린 다시 일어서고 있다
주검 냄새가 진동하는
폐허의 레바논에서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 박노해, 「레바논의 민들레꽃」 전문

여러분은 민들레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어떤 게 있는지요?
“나 어릴 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오~~/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인가요?
아니면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인가요? 대부분은 민들레 하면 바로 이 노래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달빛 부서지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있네/소리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며/가슴을 에이며 밀려오는 그리움 그리움/우리는 들길에 홀로 핀 이름 모를 꽃을 보면서/외로운 맘을 나누며 손에 손을 잡고 걸었지//산등성이의 해 질녘은 너무나 아름다웠었지/그 님의 두 눈 속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지/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1985년 강변가요제에서 박미경이 불렀던 “민들레 홀씨 되어”이지요. 이 노래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민들레를 홀씨(포자)로 번식하는 민꽃식물인 줄 잘못 알고 있는데요. 시인들도 민들레 홀씨로 종종 쓰곤 하는데요. 실제로는 민들레는 꽃 피고 열매 맺고 씨를 뿌리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쌍떡잎식물이지요. 단지 바람에 그 씨를 날려보내는 모습에 사람들이 홀씨인 줄 착각한 것이지요. 그러니 문학 작품이든 대중가요든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는 아무래도 조심할 필요는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다시 이름 얘기로 돌아와서, 민들레를 지정(地丁)이라 한 것은 글자 그대로 “땅에 못처럼 박혀” 핀다는 것일텐데요. 이러한 민들레를 보고 ‘압정처럼 땅에 박혀있다’고 표현한 시가 있지요. 이문재 시인의 「민들레 압정」입니다.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 이문재, 「민들레 압정」 전문

시가 제법, 무척 깁니다만,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 한 구절에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여러분은 어떤지요?

지금까지 민들레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드렸는데, 민들레하면 떠오르는, 개인적으로 잊지 못하는 한 사람 있습니다. 2003년 8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故) 이화정 기자. 「노동일보」 사진기자로 있으면서 이 땅의 소외된 민초들과 함께 삶을 같이 했고 그들의 삶을 앵글에 담았던, 민들레처럼 살다 민들레처럼 떠난 사람.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인사말과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끝으로 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화정입니다. 스물 두셋부터 dlle(들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하지 않고 빛나지 않더라도 후미진 세상 어느 곳에서나 거침없이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흔하고 너른 들풀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민들레처럼 살고싶어서지요. 일터는 노동일보 사진부이구요. 출입처는 일명 ‘아스팔트’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아주 많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그저 쓸데없는 고민만 짊어지고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질책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지금도 시련의 역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가 있고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른 생채기를 내며 살아갑니다. 너른 들판에 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