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수상·작은 배가 있었네

그것은 여성일까.

소리가 나도록 혹은 음악이 들리도록, 손으로 직접 기계의 버튼을 누르거나 커서를 움직여서 모니터 화면상에 보이는 버튼을 누르는 경우, 그 곳에 새겨져 있거나 그 표시된 그림은 오른쪽으로 누운 정삼각형 모양의 기호이다.

라디오, 카세트테이프레코더, 씨디플레이어 혹은 엠피쓰리플레이어와 같은 딱딱한 기계에는 그 플레이(play), 즉 재생 버튼 옆에 흔히 포즈(pause), 즉 잠시멈춤의 버튼이 있다. 크고 작은 모니터 상에 나타난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경우에는 때로 그 버튼은 같은 자리에 포즈 버튼으로 모습을 바꾸어 위치하여 있게 된다.
그 버튼 혹은 그 버튼에 새겨진 것은 세로로 내려 그은 두 줄이 나란히 서있는 모양의 기호이다. 기계의 작동을 멈추고 소리내는 것을 잠시 멈추고 쉬라는 뜻이다.
이러한 두 개의 기호는 주역에서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선을 그어서 표시하는 양괘(陽卦)와 가운데가 끊어진 선 혹은 가운데를 띄어서 나 있는 두 개의 선을 그어서 표시하는 음괘(陰卦)를 닮아 있다.

양이 강건함과 드러남과 활동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음은 유순함과 숨어 있음과 고요한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니, 이런 식으로 휴식은 여성임을 뜻하게 되는 것일까.

영국 낭만주의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는 시 「함수초(The Sensitive Plant)」에서 봄의 향기를 전해주는 히아신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그리고 자주빛과 하얀색과 파란색의 히아신스는,
그 종꽃들로부터 달콤한 종소리를 새로이 던졌으니
그토록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강렬한 음악의,
마치 감각 속의 향기처럼 느껴졌었네.
(And the hyacinth purple, and white, and blue,
Which flung from its bells a sweet peal anew
Of music so delicate, soft, and intense,
It was felt like an odour within the sense.)”

히아신스는 봄이 지나면서 꽃도 시들고 여름이 지나면서 잎도 시들어 가며, 다음 번의 개화를 위하여서 쉬는 기간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 45일 이상 상온 이하의 서늘한 곳에서 쉬어야 다시 꽃이 필 수 있다고 하는데, 노지에서 키우게 되지 않는 경우에는 흔히 잎과 뿌리를 잘라내고 말린 알뿌리를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 둔다고들 한다.

히아신스의 구근은 이렇게 차가운 어둠 속에서 일정한 기간의 동면을 거친 후에야 다시 오는 봄, 바깥 세상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강렬하며 달콤한 향기를 뿌려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식물에게도, 야생의 동물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누구에게나 이러한 동면의 시간, 이러한 휴식의 시간은 필요하다.

휴식은 또한 종종 상처를 입었거나 질병을 안고 있을 때 우리가 찾는 것이기도 하다. 찢겨지거나 벗겨져 속이 드러난 피부는, 아무리 그 상처가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곳을 통하여 바깥 공기가 더 이상 우리의 신체 내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붉고 검은 딱지로 차단하고 난 다음 그 속에서 새살을 돋아나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의 휴식을 필요로 한다. 상처 입은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질병이 커다란 것이라면 그 휴식의 기간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역시 마음의 질병이 깊은 것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더욱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고 더욱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예수는 5군데의 상처를 입고 죽음을 당한 이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부활하기까지의 기간 동안 그가 머물렀던 곳은 동굴 속이었다. 기간의 길고 짧음을 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에 머무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는 그 이후 이 지상에 잠시 머물다가 하늘나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개 부활이란 이 지상에서의 생명을 다시 얻는 것을 가리킨다고 하겠지만, 여기서의 부활이란 하늘나라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다. 동굴이라는 자궁 속에서의 성스러운 휴식 끝에 그가 얻게 된 것은 하늘나라에서의 태어남이었던 것이다.

휴식은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가깝든 멀든 타인을 위한 정찰이나 척후의 시간이 아니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 위하여 번데기로서 고치 속에서의 휴식의 시간을 거친다. 이렇게 휴식이란 한 기간에서 다음 기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하나의 매듭이다.
음악을 들을 때에도 각각의 곡들 사이에는 공백의 시간이 있다. 하나의 교향곡에서도 그 여백이 있음으로써 하나의 악장이 끝나고 그 여백이 있음으로써 다음의 악장이 시작된다. 어쩌다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의 2악장과 3악장처럼 쉬지 않고 이어져 있는 악장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휴식이란 전체적인 음악에 완전성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하나의 선율을 다른 선율과 연결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같지만 다른 그 다음의 선율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끝을 처음과, 시작을 마지막과 이어주면서, 하나의 기간을 완결짓도록 하여주는 휴식은 자신의 꼬리를 문 뱀으로 형상화되는 우로보로스(ouroboros)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시작이자 끝이다”(1장 8절, 21장 6절, 22장 13절)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미지에 닿아 있다.

우리가 매번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뜻에 따라 혹은 삶의 온갖 여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이러한 휴식들은 우리에게 어떤 곳에서의 어떤 만남, 어떤 선율의 어떤 식의 재생, 어떤 형태의 어떠한 부활을 준비해두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