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사람에게는 네 가지의 유형이 있다
무식하면서 무식함을 모르는 바보니 그를 피하라
무식하면서 무식함을 아는 자는 단순하니 그를 가르쳐라
유식하면서 유식함을 모르는 자는 잠을 자니 그를 깨우라
유식하면서 유식함을 아는 자는 현명하니 그를 따르라
- 리처드 버튼 경의 전기에서

오래전 이런 말을 들었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남자가 발레리나와 결혼해서 이상적인 부부로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남편은 부인의 무대 리허설 장면을 보고 이혼을 요구했다고 한다. 남자와 어울려 그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스트레칭을 하며 남자가 자신의 부인을 만지며 들어 올리는 것이 불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레리나가 이런 직업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래전에 들었던 이야기라 이런 사람은 이제는 없을 것이라 믿지만, 이것이 예술 춤에 대한 비하인지 아니면, 불만스런 결혼생활에 대한 탈출구로서의 핑계인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리 그 남자가 그 어떤 훌륭한 학벌을 가지고 직장을 가졌다한들 타 분야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배우자가 될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은 그 남자의 잘못이며, 그는 스펙과는 관계없이, 과격한 표현이지만, 일자 무식쟁이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무식하다고하면 가방끈이 짧은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 오늘날의 보편적인 관념이다. 무식을 단지 “배우지 않았다“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무식이란 단어를 ①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음, ② 행동 따위가 격에 맞거나 세련되지 않고 우악스러움으로 정의했다. 무식은 한자로는 알지 못한다는 뜻의 “無識”이다. 언어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관념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무식이란 단어를 한자 뜻대로 이해하기 보다는 비하하는 감정을 연상하며 사용하다보니 무식은 1번의 정의 보다는 그야말로 2번에서와 같이 ‘행동과 격’에만 무게를 맞춘 단어가 되어버려 알지 못함 자체를 죄악시 시켜버렸다.
반면, 인간이 날 때부터 알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며, 당연한 것이라도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음을 근래에야 인식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남들은 아는데 나만 모른다고 물어보는 행위는 특히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이론은 그럴 듯하나, 실제로는 다수 앞에서 나 하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때문에, 몰라도, 이해가 안가도, 고개를 끄떡이며 아는 척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숨기는 제스처는 아마도 높은 직위나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한국의 교육열은 이미 미국대통령도 칭찬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고 자국인들도 인정할 만큼 유별나다. 학벌경쟁 때문이다. 다 좋은데 경쟁이 심할수록 갈 길은 멀고 해야 할 공부는 많다보니 잘 따라하는 학생위주로 진행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모른다를 외쳐도 그 누군가가 소수일 경우는 진행속도를 가로막는 방해물밖에 안되기 때문에 쉽게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어떻게든 모르는 것을 따로 알아내야 하거나 마치 큰 비밀을 알고도 발설하지 못하는 심정으로 가슴앓이만 할 뿐이다. 한국의 사교육이 성행하는 이유도 이러한 수치심 문화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한영사전으로 무식을 검색해보니 ignorance, ignorant, idiotic라는 단어들이 열거되어있다. 그 중, “Idiotic”이 눈에 뜨인다. ‘무식’ 보다는 주로 ‘바보 같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이것이 명사가 되면 idiot이 되며, 관용구라는 idiom이라는 단어와 철자 한 자 차이로 전혀 다른 뜻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영어단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어 이웃한 단어들과 서로 연관 있음을 감안한다면 idiot과 idiom은 백지 한 장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 억지주장일 수도 있겠지만, idiom은 많은 사람들이 문법이라든지 이치적으로 맞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라 할지라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통념적으로 사용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무조건 외워야했다. 어쩌면 비판과 회의감 없이 무조건 외워야하는 일 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는 것 같으며, 한국의 주입식교육마저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성적으로만 평가한다면 당연히 공부도 잘해야 함은 물론, 시험도 잘 치르는 사람이 좋은 학교와 직장이 보장되는 것이 당연한 공식이다. 보편적으로 한 가정에 자녀 대 여섯을 둔 시절에서는 인구가 많아서 라고 이해하겠지만 한 가정 한 자녀가 대부분인 오늘날에도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는 “좋은 학교” 그리고 “좋은 직장”의 관문이 어째 예전보다 더 좁아졌으며,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학생들의 삶의 질도 덩달아 피폐해져만 간다.
‘좋은 직장 얻어 결혼 할 때까지’ 유년시절, 친구와의 우정, 가족과의 시간들을 모두 반납하며 인격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년기를 희생시키면서라도 일찍이 학원생활을 강행시키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직 미혼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이해 못하는 나도 막상 자녀가 생기면 남의 아이들에게 뒤처질까봐 ‘대세’라는 핑계를 대며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주류에 타협하고 나의 신념을 묵살할지 아니면 용기를 내어 내 아이의 행복을 올곧게 추구할런지 장담 할 수 없다. 후자의 선택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인 삶이 정상이 되어버린 부조리한 세상이다. 세태가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용인되는 이유는 어쨌든 목적을 충족시켜주는 최선이라 여겨지는 선택이 최악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열은 ‘입신양명’이라는 뿌리 깊은 유교사상 때문도 있지만 전쟁 이래 자원이 풍부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최선의 방법은 ‘공부’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았어도 내 자식만큼은(!)’이라는 깊게 배인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교육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해졌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얼마나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느냐는 그 사람의 지식은 물론, 인격까지도 자동 보장되는 방패막이가 되어버렸다.
교육열에 맞추어 훌륭한 학교들도 늘어나는 마당에 이쯤 되면 입신양명한 가정도 늘어나고, 그러다보면 사회 역시 나아져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뉴스를 통한 우리 사회는 갈수록 험악해지기만 하다. 일류대학에서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각자 처한 위치에서 좋은 소식보다는 어이없는 일들을 저지르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식수준과 상식의 수준은 별개임은 분명해진다. 교육수준은 높아져만 가는데 비해 상식수준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공부수준은 높아졌으니 예상대로라면 인격수준도 높아져야 할 텐데 왜 교내에서는 동급생들과도 계급이 생기고, 무례해지고, 사회에서도 감사와 존경이 사라지고 후안무치에 늘 불평불만만 늘고 범죄는 더 교묘해지고 거칠어져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 공교롭게도 두 지인에게서 거의 같은 시기에 내가 쓰고 있는 강남의 사무 공간 한 층을 빌렸으면 하고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침 노는 공간이기도 하고 또 협업할 수 있을 기회도 있을 것 같고, 놀리느니 수익도 낼 수 있겠다 싶어 저렴한 가격에 허락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한 지인은 얼마 되지 않아 임대료를 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내용증명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주장은 어차피 신고를 위해 한 평 정도만 빌린 것이고 실질적으로 쓰고 있질 않으니 굳이 돈을 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내가 억지를 부리는지 잠시 되돌아보게 될 정도였다. 하지만 일단 자신이 필요한 것이고, 그 공간을 쓰던 안 쓰던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게다가 계약 전에 어떠한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내가 그냥 쓰라 했다며 우리 직원에게 거짓말까지 했는데, 적어도 임대료수익발생에 대한 세금까지 내가 낼 수는 없기에 그렇게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한때 이웃이기도하며 학교도 같이 다녔지만 결국 그 일로 관계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사람 역시 나머지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했다. 공간을 같이 쓰기로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전용공간처럼 만들어놓고는 사용하기는 남의 시설을 함부로 사용해서 2년 동안 여러 군데가 더럽혀지고 훼손되었다. 거저나 다름없는 저렴한 가격에 배려를 해줬음에도 기대는 안했지만 나갈 때도 잘 썼다는 인사도 못 들어봤을 뿐만 아니라, 원상복구요구에도 일단은 발뺌을 하고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이 역시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두 명 다 대한민국 상위권에 들어가는 대학원을 다니며 알게 된 동기이며, 사람에 대한 안목 없는 내 잘못이긴 하나, 인간성과 학벌과는 전혀 관계없음을 피부로 느낀 동시다발적인 사건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에 대한 섭섭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단번에 바보로 만드는 그 우악스러움을 볼 때, 앞서 언급한 리처드경의 격언처럼 그런 유형의 사람은 피하는 것만이 달리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렇듯 점점 막무가내로 망가져가는 인간성이 어떡해야 회복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지만 교육열 때문에 망가진 인간성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수단 역시 교육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가 인간성에 대해 정말로 아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말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성은 ‘변화’다”라고 했다. 여기서 교육의 내용이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