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기생충 가문의 영광이라고 해야 할지, 먹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3월 중순 ‘고래회충’이라는 기생충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2년 영화 「연가시」가 개봉하며 1위를 했던데 이어 두 번째 쾌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세간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회에 숨어 사람들을 노리고 있는 악당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 이후 실제 영상에 등장한 기생충은 사람에게 감염되는 고래회충이 아니라는 반박이 나왔다. 물고기에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맞지만, 사람에게는 해가 없다는 내용이다. 고래회충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래’라는 이름이 앞에 붙은 탓에 고래가 원흉으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고래회충은 고래를 통해 사람에 감염되는 경로가 아니라 바다물고기나 오징어를 통해 감염된다. 그리고 국내 활어회 소비량에 비해 그렇게 흔히 발견되는 감염증은 아니다.
물론 이름 때문에 고초를 겪은 것은 고래만이 아니다. ‘고양이기생충’이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톡소포자충은 고양이를 최종숙주로 할 뿐이지, 대체로는 날고기로 감염된다. ‘살인진드기’는 또 어떤가.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라는 복잡한 이름이 붙은 이 질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지는, 바이러스를 옮길 뿐인 진드기가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냥 엉뚱한 이름이 붙은 경우도 있다. 십이지장충은 사실 십이지장에 살지 않는다. 처음에 십이지장에서 발견되어 이런 이름이 붙었으나, 본래 소장에 사는 기생충이다. 이제는 구충으로 부르고 있다.
기생충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에는 학계에서 불리는 학명과 별개로 사람들이 부르기 쉽고 편한 일반명이 함께 존재한다. 고래회충은 아니사키스라는 학명이 있고, 회충은 아스카리스 룸브리코이데스라는 길고 복잡한 이름이 있다. 학명으로 보면 둘은 완전히 다른 종의 생물이다. 일반명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물론 편의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이 때문에 엉뚱한 생물들이 피해를 입는 게 문제다.
고양이기생충이 방송을 탔을 때는 임신 가능성이 있는 집들에서 고양이들이 단체로 쫓겨났다. 임신 초기에 감염되면 태아에게 실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갔기 때문이다. 살인 진드기가 등장했을 때는 ‘진드기 테마주’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집먼지진드기와 같은 이름이 붙어있어서다. 집먼지진드기는 바이러스를 옮기는 진드기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집안의 진드기를 없애는 각종 상품들이 불티난 듯 팔려 나갔고 테마주까지 생겨났다.
이름이 주는 힘, 그리고 이름이 주는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학명을 붙인다는 것인 굉장한 영예다. 그래서 자신이나 가족, 존경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곤 한다. 그런데 일반명을 붙일 때는 지나치게 고민 없이 붙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이름이 붙은 이에게 만큼이나 붙인 이에게도 많은 책임이 주어진다. 시청률이나 페이지뷰 약간 때문에 낙인찍힐 생물들에 대한 고민을 한번쯤은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