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최근 본 영화 중 여운이 길었던 작품은 빔 벤더스(70)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이다. 브라질 출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71)의 삶과 사진 세계를 다룬 이 영화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단연 처절하게 빛나는 흑백 사진이었다. 한국에 이미 두어 차례 다녀간 그의 전시회를 보았던 이라도 동영상 속에서 다시 끈적이는 그 형형한 검은 빛 앞에서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경외와 찬탄을 느끼게 된다. 이 기록필름에서 감독은 살가두의 사진에서 느낀 확신이 ‘그가 사람을 아낀다는 점’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세상의 소금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목은 여기서 왔다. 살가두 자신이 수많은 분쟁 현장에서 처참한 학살 광경을 사진에 담고서 이렇게 말하는 대목은 역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간은 정말 흉악하고 끔찍한 짐승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에게는 그 어떤 구원도 있을 수 없다.”
살가두처럼 원하는 주제를 골라 프로젝트로 피사체에 접근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이제 현대미술의 작가로 격상되었다.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작가는커녕 점차 쪼그라드는 직업군이 보도사진가다. 스마트 폰에 보급형 카메라까지 누구나 현장에서 사진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포토저널리즘은 시시각각 그 존재이유를 위협받는다. 인쇄매체가 구시대의 낡은 유물로 사양 산업이 돼가는 오늘 포토저널리즘이 설 땅은 어디인가.
박종근(45) 중앙일보 영상부 기자에게 기록의 수단인 카메라는 무기다. 현장에 나갈 때 그는 양 어깨에 무기를 멘다. 한 대는 보도사진가용, 한 대는 사진작가용이다. 신문을 위한 사진과 자기 자신을 위한 사진은 구분된다. 서울 서소문동 일우 스페이스에서 제5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특별한 작가’ 사진기자 부문 수상 기념전으로 열리고 있는 「박종근: 거울과 세 가지 기억」은 신문사 소속을 떠난 한 명의 작가로서의 박종근 사진세계를 보여준다. 뉴스 상품 제조와 작가 작품 생산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다. 지난 10여 년 나날이 찍은 사진 900여 점 가운데 고른 47점은 신문에 실릴 정도의 적절한 품질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역사적 현장에서 맞닥뜨린 시민의 시선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식이 선명하다는 점에서 ‘다르고 낯선’ 사진이다.
여러 가지 제약이 분명한 보도 사진은 ‘전형’의 틀이 확고해서 그 정형을 깨기 어려운 분야다. 박종근은 신문 사진의 옆구리를 뚫거나, 스테레오타입 비틀기로 같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안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냈다. 보도사진이 요구하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형식이나 시선, 구도 등에 자유롭고 역설적으로 접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해석되는 결이 풍부한 그의 사진 앞에 서면 우리 사회를 거울에 비춘 듯, 사진의 힘이 울렁거린다. 현실 기록과 현실 해석을 겸한 그의 보도 사진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