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살롱

배삼식은 극작가다. 「허삼관매혈기」(2003), 「열하일기만보」(2007), 「3월의 눈」(2011)이 대표작이다. 유려한 언어로 점철된 그의 작품은, 시를 읽는 것과 같은 기쁨과 숭고함이 있다. 그의 대본은 그대로 노래란 생각에 미친다. 작품이나, 실제나, 배삼식은 마치 조선시대의 시인묵객과 같다. 공자가 말한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듯 보인다.
고금아속(古今雅俗)이란 말이 있다. 배삼식은 옛것[古]을 가져와서 지금[今]을 보게 한다. 아속(雅俗)은 어떤가? 어떤 시대를 다루건, 무엇을 보던 간에, 배삼식에겐 버릴 수 없는 선비적 지식인의 시각이 있다. 아속(雅俗)으로 이분할 때, 여실히 아(雅)에 해당한다. 속(俗)을 얘기해도, 아(雅)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나처럼 속기(俗氣)가 충만한 입장에서 보면, 「은세계」(2008), 「피맛골연가」(2010), 「화선 김홍도」(2011)에 사람냄새를 좀 더 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통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음악적 전개에선 늘 아쉬움이 있다.
이런 배삼식이 서울예술단과 만났다. 근대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은 배삼식 극작, 작사, 임도완 연출이다. 지금까지 만난 배삼식 극작 중에서는 가장 가볍고 경쾌한 작품이었다. 공연 후의 울림은 적을지는 몰라도, 공연 중의 즐거움은 가장 최고였다. 임도완 연출은 음악(노래)·무용(움직임)·연극(대사)을 능숙하게 엮어냈다. 작품은 ‘매화’를 소재로 해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한다. 이런 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나, 한국공연예술에 무척 필요한, 특히나 서울예술단에는 아주 적합한 방식임을 확인했다. 서울예술단 단원 중에는 각각 노래, 연기, 무용의 한 분야에 특히 치중해왔던 단원들이 있는데, 그들의 이런 역량이 아주 잘 살려졌기 때문이다. 서울예술단의 중견단원인 고미경, 정유희, 김백현을 비롯해서, 모든 단원들이 즐겁게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객석에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조풍래는 특히 이 작품에서 무척 돋보였다. 비유컨대, ‘시인묵객’ 배삼식의 고아함을 ‘시정잡배’ 조풍래의 통속함으로 잘 풀어냈기에 그렇다. 조풍래가 랩을 했다. 그러니까 배삼식의 시어(詩語)가 랩이 된 것이다. 조풍래의 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듣는 랩이면서도, 또 그런 랩이 아니었다. 랩의 분위기와 율격을 지켰다는 점에서 랩이었다. 반면 고아한 정서를 결코 잃지 않았다는 점에선 랩이 아니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시인묵객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배삼식의 작사가 시정잡배처럼 무대를 활보하는 노래하고 춤추는 조풍래를 통해서 생동감을 얻고 있었다. 배삼식 작품에서도 속기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겐, 조풍래의 노래 춤, 랩은 매우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희열 자체였다. 조풍래는 탈춤의 사위를 제대로 구사할 줄 알면서, 여기에 K-POP 댄스가 더하고 있었는데, 그대로 그 한 몸 안에 고금아속이 모두 존재하는 실력자였다. 무대를 활보하고 도약하면서 한삼을 휘날리는 조풍래의 모습은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래갈 즐거움이다. 서울예술단은 그간 여러 방식으로 형식 실험을 했다. 이와 같은 옴니버스 방식은 서울예술단만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