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발레STP협동조합의 「발레, 아름다운 나눔」(3월 25일 강동아트센터 한강극장)
‘발레STP협동조합’,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2012년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라는 명칭으로 시작해 2014년 ‘발레 STP(Sharing Talent Program, 재능나눔프로그램) 협동조합’으로 체제를 갖춘 것인데,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이원국발레단, 와이즈발레단, SEO발레단 등 총 다섯 단체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시작단계라 명확하지는 않지만, 「발레, 아름다운 나눔」 공연은 발레협동조합이 무슨 조직인지, 그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 행사는 각 무용단이 자신의 레퍼토리를 차례로 선보이며 말 그대로 ‘협동’ 공연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공연의 형식 자체로는 평범하다.
그런데 이번 공연이 보여준 것은 이 모임의 비전이라기보다 우리 발레계가 처한 현실이었다. “발레의 발전과 대중화”라는 폭넓은 목표뿐만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민간발레단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이 공연은 민간발레단이 처한 열악하고 암울한 현실 그대로의 상황을 무대에서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에게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도대체 우리 발레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약 2시간에 걸친 공연은 다섯 단체의 작품과 특별공연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각 공연이 있기 전 짤막한 작품소개가 있었는데, 이는 발레단 대표들이 교대로 맡아 진행했다. 서로 독립적인 작품들이 대표들의 인사와 소개에 이어 펼쳐지면서 어느 정도 무용단의 공연성향을 엿볼 수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작품성에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먼저 유니버설발레단은 클래식 『라 바야데르』에서 발췌했다는 몇 장면을 짧게 선보였다. 비교적 부담없는 간단한 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수들의 피로감이 객석에 그대로 전해졌다. 하늘거리는 스카프를 들어올리는 팔은 천근만근이었고, 중력을 절대 거스를 수 없다는 듯 다리는 바닥에서 떨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따라서 『라 바야데르』가 어떤 작품인지 혹은 클래식발레의 매력이 무엇인지 아니면 갈라처럼 무용수의 출중한 기량을 보여주는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았다.
와이즈발레단의 『쉐도우(Shadow) 2』(안무 최진수), 서울발레시어터의 『1x1=?』(안무 제임스 전), 이원국발레단의 『카르멘』(안무 이원국), 서발레단의 『웨얼 위 고…(Where we go…)』(안무 서미숙), 정운식과 이원국의 특별무대 『투 디퍼런트 패쓰(Two different path)』(안무 제임스 전) 등 이어지는 공연들도 마찬가지였다. 발레가 특별히 테크닉이 엄격한 예술장르로 손꼽히긴 하지만, 모든 춤은 기본적으로 정확해야 한다. 오랜 훈련을 통해 습득된 정확성이야말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다. (체력의 한계든 이해의 부족이든 기타 이유든 간에) 무용수들이 대충 얼버무리듯 추는 춤에서 작품의 질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모든 무대는 간소했다. 별다른 장치가 없이 검은색 바닥에 원색적인 조명뿐이었다. 그러니까 20여분의 각 작품들은 조명과 음악으로 그 효과가 결정되는 움직임에 치중한 춤 자체에 중점을 두었다. 춤무대에서 조명은 단순히 색채를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움직임이나 공간을 만들어내는 핵심요소인데도, 이번 공연에서 조명들은 전반적으로 단순했다. 마치 지하실 공간에 형체를 알아보는 용도로 쓰인 듯한 빛처럼, 공간 아무 곳이나 무의미하게 비추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춤은 날것처럼 고스란히 단점을 드러냈고, 아마추어 무대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또한 음악이 대부분 춤과 잘 맞지 않았다. 서울발레시어터의 『1x1=?』는 빠른 비트로 속도감을 부여하는 곡을 사용했는데, 오히려 춤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움직임은 무용수들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고유한 빠르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이 지각하는 시각적 청각적 속도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빠른 템포의 곡을 사용할 경우 춤이 음악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지루하기 쉽다. 그런 효과를 목표한 작품이 아니라면, 춤추는 이는 음악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갖춰야 한다. 음악 자체에 이야기와 인물의 캐릭터가 담겨 있는 「카르멘」 곡을 사용한 이원국발레단이나 샹송 곡을 사용해 춤이 배경처럼 보이게 만든 서발레단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단점이자 약점은 발레예술 고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발레의 대중화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곧 ‘발레란 무엇인가’, 다른 분야와 다른, 그 영역 특유의 성격을 보여줌으로써 존재감을 소수의 전문가나 매니아층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인정받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질적 수준으로는 오히려 우리 발레의 영세한 상태만을 강조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공연에서 핵심은 아마 사회자들이 ‘훌륭한’(?) 것처럼 소개한 멘트가 실제 공연의 질과 동떨어진 바람에 우리 발레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점이 아니었나 싶다. 10년, 20년, 30년 역사의 무용단들이 과연 10년, 20년, 30년 전 처음 창단했을 때보다 실력과 수준이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창단했을 당시의 바람과 희망은 어느 정도 성취된 것일까. 그때 그 수준 그대로라면, 그것은 퇴보로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복고’라는 어떤 트렌드를 연상시키는 식의 그런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물론 이 같은 퇴행적 징후는 비단 발레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춤현장이 우리 사회의 우울한 측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작품은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판이 되지 못하고 옛날에 좋았던 시절을 회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책은 예술의 생산영역이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걱정은커녕 도태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외면하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돈이 되지 않은 것들을 없애버리거나 사라지기를 재촉한다. (가령 춤의 직업화는 여전히 고군분투 중인데, 대학들은 취업률 저조라는 명목으로 서둘러 학과를 폐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발레협동조합의 공연은 현재 우리 발레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새삼 뚜렷하게 인지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