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간발레단들이 뜻을 모아 ‘발레STP(Sharing Talent Program)협동조합’(초대이사장 김인희)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 첫 발은 2011년에 있었던 작은 회의로부터 시작한다.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이원국발레단, SEO발레단, 와이즈발레단의 단장들이 발레시장 확대와 발레 대중화 그리고 민간발레단 운영방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를 벌인 것이다. 그 표면 아래에는 국공립단체와의 지원 격차가 심해진 현 상황에서 민간발레단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깔고 있다.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지한 다섯 단체는 개별적인 이익을 초월하여 국내 민간발레단들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쳐 나갔다.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2014년 정식으로 발레STP협동조합을 발족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무용계 뿐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최초의 협동조합으로 기록된다. 현재 발레STP협동조합은 공연, 교육, 행사를 통해 보다 다각적이고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펼쳐 나아가는데 최우선의 목적을 두고 있다. 그 첫 번째 기획으로 「발레, 아름다운 나눔」이라는 합동공연을 들 수 있다.
3월 25일 강동아트센터에서 있었던 「2015 발레, 아름다운 나눔」은 각 발레단의 대표작이나 인기작을 갈라 형태로 선사하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와이즈발레단의 『쉐도우(shadow) 2』, 서울발레시어터의 『1×1=?』, 이원국발레단의 『카르멘』, SEO발레단의 『웨얼 위 고…(Where we go…)』에다가 특별공연 『투 디퍼런트 패쓰(Two Different Path)』가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은 1980-90년대를 풍미한 발레리나였던 문훈숙 단장의 영향 때문인지 유독 우아하고 서정적인 레퍼토리를 잘 소화한다. 이번 기획에서도 자신 있는 『라 바야데르』의 하이라이트를 추려 공연하였다. 불과 3일 전에 시즌공연을 끝낸 지라 솔로나 듀엣으로 구색만 맞출 줄 알았으나 20명 내외가 출연하는 제법 규모를 갖춘 공연을 펼쳤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열의와 성의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막 공연만큼의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진 못했지만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은 충분히 유지하였다.
와이즈발레단의 『쉐도우 2』는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두운 면을 춤으로 그려낸다. 동작과 표현에 있어 말끔한 한국창작발레라는 무난한 느낌은 좀 더 개성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울발레시어터의 『1×1=?』는 여성 2명과 남성 1명의 트리오로 전개되었다. 비트 있는 음악에 맞춘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춤이 세련미를 돋운다. 다만 정박에 대한 고수로 인해 절정감은 반감되었다. 이원국발레단의 『카르멘』은 기존의 작품을 새롭게 변용시켜놓았는데 가장 독특한 점이라 한다면 카르멘만큼 호세가 끈적끈적하게 성적 매력을 풍기는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두 남녀에 의해 『카르멘』의 이야기가 아닌 이미지가 뚜렷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SEO발레단의 『웨얼 위 고…(Where we go…)』는 젊은 감각의 활기찬 춤이 전개된 전반부와 서미숙 특유의 여성적인 춤이 펼쳐진 후반부를 붙여놓은 인상이다. 후자의 경우 여성의 삶을 관조하는 듯한 춤사위가 전유진에 의해 더할 나위 없이 그려진다. 인위적인 연기 없이도 춤추는 몸 자체에 희로애락을 함축한 전유진은 안무가가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실현한 뮤즈다.
특별공연 『투 디퍼런트 패쓰(Two Different Path)』는 제임스 전 안무에 이원국과 정운식의 듀엣으로 실연되었다. 언뜻 이원국이 젊은 날의 자기인 정운식과 조우하여 듀엣을 추는 듯하다. 놀랍게도 이원국과 정운식은 동년배다. 정운식은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탄력 있는 몸으로 갖가지 동작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였다. 아무리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쉰에 가까운 무용수가 20-30대와 같은 탄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가 얼마만큼 춤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 관리에 철저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사실 위의 단체들은 실력이나 위상 면에서 국내 5대 민간발레단으로 손꼽힌다. 국공립단체를 제외한 최정상급 발레단들조차 활로를 찾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현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이제 발레STP협동조합의 성패는 우리나라 발레의 미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표적인 민간발레단들조차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그 아래에 있는 발레단들은 더더욱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용계 더 나아가 문화예술계가 발레STP협동조합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