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7일 인쇄
2015년 5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5년 5월호 통권 471호 |2025년 5월 10일 토요일|
 

동숭문화광장

 

예술기관의 리더십과 팔 길이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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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언(朴相彦)
(문화평론가)

예술기관은 예술 자체의 모호성(ambiguity)과 독특한 가치,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미의식의 차이들 때문에 일반 기업이나 기관과는 다른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러한 리더십은 대개 그 기관의 CEO와 구성원의 포괄적인 예술 전문성, 즉 예술에 대한 신념과 태도 그리고 경험과 이해의 정도 등에 기반을 둘 것이며, 이 CEO와 구성원의 예술 전문성은 예술기관만의 고유한 정책·행정·경영 역량의 질과 수준을 상당한 정도로 결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기관의 리더십 확보를 위해서는 예술기관의 법적 지위와 그 상호관계의 측면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제도적이고도 보다 처방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 용이할 것이다.
예술기관은 각급 정부의 소속기관이나 산하의 법인으로 존재한다. 이 중 산하기관 또는 법인을 준정부조직이라 하는데, 이 준정부조직은 1980년대 이후 전 지구적인 신공공관리와 신자유주의의 득세 속에서 더욱 확산되어 왔다.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의 타개를 위해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가운데서도 국민들의 다양해진 요구를 충족해주어야 했기에 공공재와 공공서비스의 공급 기반을 더욱 강화해 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실패(market failure)를 벗어나기 어려운 예술을 민간 영역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이렇게 예술부문은 정부든 시장이든 어느 한 영역으로만 국한할 경우 최적 배분을 기대할 수 없기에, 정부도 시장도 아닌 중간지대의 예술기관을 필요로 한다. 이 점은 법적 지위는 그렇지 아니하나 준정부조직과 유사하게 운영되는 정부 소속 예술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준정부조직으로서의 예술기관의 리더십은 이 지점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준정부조직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지원체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에 가장 오랜 자유주의적 전통을 가진 영국에서 조직들 간 운영원리의 하나로 등장한 ‘팔 길이 원리(arm’s length principle)’를, 문화정책에서 특히 중요하게 논의해 왔던 것이다. 정부와 준정부조직 간 그 접촉 거리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의 공공정책 원리인 팔 길이 원리의 관점에서 예술기관을 살펴보는 것은 예술기관에 부여된 역할(role)과 역량(competency)을 재고 따지는 데 유용하며, 예술기관의 리더십이 독립적으로가 아니라 여러 상호작용으로 결정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팔 길이 원리는 문화정책에서 좀 더 직접적인 개입을 바라는 정부의 욕망 때문에 한계를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예술기관의 자율성이 위축되는 등 ‘필요하면 간섭한다’는 정책이 힘을 얻게 되었다. 준정부기관의 역할과 역량이 더욱 확대되어야 할, 신공공관리와 신자유주의의 파고 속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예술기관은 전반적으로 점점 짙어지는 정부 간섭의 그림자 아래 놓여 왔다. 팔 길이 원리는 실제 문화정책 현장에서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해석을 넘어 팔 길이 거리를 두되 일정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영국의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팔 길이만큼 떨어져 있되 손은 댄다(arm’s length but hands on)’, 즉 ‘지원은 하되 관리는 한다’는 원리이다. 여기서 ‘손은 댄다(hands on)’는 ‘책임을 지운다’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대부분의 예술기관 현장에서는 정부가 갖는 예산권이나 임원 인사권과 같은 큰 문제도 물론 문제려니와 개개 사업의 운영에 대한 담당 공무원의 상시적인 간섭의 문제를 더 크게,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예술기관이 국가 또는 지역사회에서 자율적인 리더십을 확보하고 발휘하는 데 실제로는 일상적·지속적인 작은 간섭이 더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뜻한다. 정부의, 이른바 ‘손은 댄다’는 원칙적으로 상시적인 간섭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지운다’의 문제이다. 따라서 ‘경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한다’이며, 경영이란 결국 리더십의 행사(行使)이므로 ‘손은 댄다’는 CEO든 기관이든 그에게 자신의 ‘리더십에 대하여 책임을 지운다’이어야 한다.

정부가 대는 ‘손’ 자체를 피할 수 없다면 결국 예술기관에 남는 것은 ‘손’이 아니라 ‘손길’, 즉 ‘어떻게 손을 대는가’이다. 이러한 정부의 ‘손길’은 예술기관의 리더십에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자율은 없고 책임만 지는, 그리고 그 책임마저도 공정한 평가 등 합리적인 원칙이나 절차에 따라 지는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냉정한 현실이다. 예술기관의 리더십이 갖춰질 리 만무한 정책 환경 속에서 그 절대 불충분하고 불완전한 리더십마저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기관의 리더십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이 아닌 예술계, 나아가 국민 또는 지역민을 향해야 하며, 국민 또는 지역민으로부터 권위(authority)와 신뢰(trust)를 획득함으로써 마침내 완성된다.
국가 및 자치 법령, 정관 등에 의해 태어난 예술기관은 주어진 역할에 따라 기본적인 리더십을 확보하게 되는데, 이것이 ‘역할 기반 리더십’(a role based leadership)이다. 이렇게 일정한 정도로 자연스레 갖춰지는 리더십은 제도적인 성격으로 인해 어떠한 경우든 어느 만큼은 보장된다. 다만 이러한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경우 구성가치인 공공성(publicness)의 축소나 침해가 발생한다. 또한 이 ‘역할 기반 리더십’은 정부와 팔 길이만큼은 떨어져야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은 또 다른 구성가치인 자율성(autonomy)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이 팔 길이는 예술기관과 예술계 사이에도 유지되어야 예술 지원 정책의 중립성, 나아가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쌍방향 팔 길이 원리(double arm’s length principle)’라고 한다.
예술기관의 CEO와 구성원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자질과 식견을 갖추어야 하며, 이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예술과 예술가의 특성에 부합하는 맞춤형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로써 확보되는 리더십이 ‘역량 기반 리더십’(a competency based leadership)이다. 이것은 법규 등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발적인 성격을 띠며, 예술기관 안에서부터 갖춰지는 전문성(professionalism)을 구성가치로 한다. 여기에는 예술 전문성뿐 아니라 행정 전문성도 의당 포함되는데, 예술기관은 예술가가 예술을 하는 예술단체가 아니라 행정가가 행정을 하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영성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성(accountability)을 또 한 구성가치로 한다.

예술기관의 경영은 필립 코틀러의 말투를 빌면 ‘돈을 어떻게 잘 쓰는가’가 본질이다.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는가’가 본질인 일반 기업에 대한 평가와 예술기관에 대한 평가는 달라도 아주 다르다. 그러므로 예술기관에는 수치 중심의 성급한 성과주의의 양적 잣대를 들이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예술기관의 리더십은 단기적으로, 또 CEO 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지속가능성을 찾아 총체적으로 구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기관 CEO에 대하여는 현저한 과오 따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느긋한 시선으로 오래도록 지켜보아 주는 성숙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예술기관의 ‘역할 기반 리더십’은 예술기관을 둘러싼 정책 환경과 조건, 나아가 결국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와 직결되며, 이에 그 가장 중요한 방법론인 팔 길이 원리가 점점 더 중요하게 동원·적용되어야 한다. ‘역량 기반 리더십’은 조직 스스로의 의지의 문제에 닿아 있으면서도 정부 등 외부로부터 보장 받아야 할 전문성이라는 구성가치 때문에 역시 상당 부분 팔 길이 원리 위에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예술기관에는 다른 기업이나 기관과 구별되는 예술기관만의 구별적 리더십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바로 ‘팔 길이 리더십(arm’s length leadership)’이다. 다함께 ‘팔 길이 리더십’을 외쳐 부른다면 일종의 명명효과(命名效果)를 불러 예술기관 리더십의 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