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백 번을 만나도 안 보면 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만 만나도 일생에 가슴에 남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한 번 만나도 잊지 못하는 사람을 오랜 세월 만나고 지냈다면 분명 그의 인생에는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조동화 (1922.7.12.~2014.4.24.) 선생님의 기일 1주기를 맞아 「조동화 선생을 생각하는 밤」이 개최되었다. 월간 「춤」과 한국춤평론가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행사는 총 2부로 나뉘었으며, 오후 4시부터 5시 반까지 진행된 1부는 “방송, 춤과의 인연” 그리고 5시 반부터 7시까지 진행된 2부는 “월간 「춤」과 사람들”이라는 각각의 소제목이 붙었다. 소제목에 맞게 1부는 선생께서 몸담았던 언론계, 특히 이제는 원로가 된 당시 동아방송의 동료였던 분들이 주객으로 자리를 메워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많은 분들 및 단체에서는 크고 작은 화환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리고 예술가의 집 다목적 홀 2층으로 지나는 길목 요소마다 조동화 선생님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심정민 한국춤평론가회 회장의 추모인사를 시작으로 오랜 세월동안 춤의 현장을 지킨 선생님의 모습을 담은 “영상으로 보는 조동화 선생”이 진행됐다. 전 「춤」지 편집장을 역임한 춤평론가 박민경 씨는 헌사에서 조동화 선생을 척박한 한국의 춤계에 봄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가꾸신 분으로 기억했다. 마치 생전 선생님을 뵙는 듯,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진행순서에는 없지만 조동화 선생의 장남 조유현 세명대학교 디지탈콘텐츠창작학과 교수의 유족대표 인사말과 선생님의 반려자인 전상애 사모의 인사는 잠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전체사회에 김기태 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1부 사회는 필자가 맡았으며, 진행은 전 동아방송 PD를 역임했고, 조동화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 참석하셨던 ‘수요회’의 회원인 안평선 선생께서 담당했다. 추모회라면 보통 엄숙한 분위기가 될 수 있었지만 원형으로 의자를 배치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대형인데다가 원로 분들의 회고담은 고(苦)와 낙(樂)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인지 인생의 연륜에서 배어나온 저마다 방식으로의 추억담은 때로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나누는 선생님의 훈훈한 미담에서 웃을 수밖에 없는 비화까지 - 돌아가신 슬픔보다는 선생님이 계셔 행복했음에 감사한 추모 분위기를 초반에 연출했다.

이 행사의 준비를 위해 한국춤평론가회 회원들이 연초부터 「춤」지 사무실에 수시로 모여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며 준비에 신중을 기했다. 널리 알려지다시피 선생께서는 당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 그 어느 것도 허락지 않으셨던 분이셨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나의 기억으로도 선생께서는 7월12일 생신으로 여름휴가에 맞추어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가시거나 그즈음만 되면 연락이 잘 안 되는 등 어떤 식으로든 조용히 넘어가시던 분이셨다. 당신께서 발간하는 지면에서조차도 본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안 좋아하셨기 때문에 행사 내내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 선생님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런 만큼 선생님께 누가되지 않게끔 더욱 조심스러웠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쓸데없다 생각하실 일일지언정,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특히 존경할 만한 어른이 많지 않다는 오늘날, 선생님의 업적과 존재가 쉬이 잊혀지지 않고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의 회고를 기록하여 그분의 정신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회고담은 이윤하 선생으로부터 시작됐다. 선생님과 함께 ‘앵무새 사건’으로 수감되었을 때 감옥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종이학을 배우던 일을 기억했다, 안평선 선생으로부터는 조동화 선생님이 춤 뿐만 아니라 연극계에도 도움을 주셨던 일, 희귀 춤 자료들을 많이 기증하신 신우식 선생으로부터는 조동화 선생님을 기쁘게해드리기 위해 춤 자료를 구해다 드렸지만 이제는 선생님이 안계시니 더이상 춤 서적을 구하지 않는다는 말씀, 선생님의 조언에 방송인에서 수필가가 된 이경희 선생의 추억과 더불어 “조동화 선생님, 보고싶어요”라는 목 메인 한 마디에 잠시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언제나 조언을 구하러온 사람의 편이 되어 “우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까?”라고 격려하시며 정확한 판단력과 핵심만 말씀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는 송정숙 선생, 최남단 국민학교를 다닌 김정옥 선생이 기억하는 최북단 초등학교를 다닌 조동화 선생과의 각별한 인연, 취재차 시골길을 지나다 만난 가난한 가정의 소년을 도와준 미담을 상기시킨 이순열 선생, 춤 인생 30년을 전폭으로 기획해주신 조동화 선생의 은혜에 지금도 감격해하는 육완순 선생, 조동화 선생에 대한 이모저모를 잘 알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글을 쓰라’는 조동화 선생의 당부대로 장기간 「춤」지의 “음악살롱”을 담당하고 계신 이상만 선생, 끝으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혼자 춤을 추시던 것을 포착한 유일한 목격자이며, 당시의 상황을 조동화 선생의 성대모사로 장내를 시종 박장대소로 이끈 동아방송 PD였으며 「춤」지 창간멤버인 김학천 선생까지 - 이분들 중에는 순서지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즉석에서 말씀해 주신 분들도 많이 계셨다.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든, 이번 기회에 처음 듣는 이야기든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고 늘 새로움이 느껴졌다. 또 원로들 대부분 이북이 고향이어서 그분들의 어조에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비화를 어떤 식으로 추억을 하든 모든 분들의 공통점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셨던 분, 그리고 아름다움을 즐기신 분”으로 기억하신다는 점이다. 1부의 마지막은 동아방송 개국 성우로 활동했던 배우 박정자 선생이 열창한 현인의 「세월이 가면」을 끝으로 그 단원을 마쳤다.

2부인 “월간 「춤」과 사람들”에서는 박민경 춤평론가의 사회, 그리고 김기태 교수의 진행으로 무용가들을 중심으로 선생님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혜숙 선생 역시 누구에게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 분으로 기억했고, 김태진 선생은 동아방송을 통해 시사를 강화하여 방송의 역사를 쓰셨고 그 때문에 「앵무새사건」과 테러사건을 당해야한 선생님에 대해 증언하셨다.
배정혜 선생은 조동화 선생님을 12살 어린나이에 처음 뵀으며, 자라면서 선생님의 춤을 보시는 심안(心眼)에 감탄했으며, 최청자 선생은 영국유학 후 한국에서 활동하도록 도움을 주신 분이 조동화 선생님이셨고, 김기전 선생은 정막 선생님과 함께 대구에 춤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으로 기억하며, 춤의 정신과 철학을 심어주신 분으로 김화숙 선생은 기억한다. 김양근 선생에게는 해외로 나가 세계의 춤을 볼 수 있도록 도움과 귀국 후 「춤」지에 “세계의 춤기행”을 쓰도록 기회를 주신 분으로, 반면 정귀인 선생은 선생님과의 원고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송스러움을 갖고 있던 기억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상대방의 장점을 정확히 알고 짚어내실 줄 아는 분으로 기억하는 윤덕경 선생, 조동화 선생님이 직접 모는 차를 탄 적이 있는 김복희 선생은 조동화 선생님을 누구보다도 애정이 많은 분으로 기억했다, ‘무용테라피’라는 학과를 국내에 소개하려는 류분순 선생을 크게 칭찬하시며 격려와 찬사 때문에 용기를 낸 류분순 선생, 이와는 달리 칭찬에 자신을 과대평가한 적이 있었다던 윤중강 선생의 재미있는 추억담, 조동화 선생께서 마산에 교편을 잡으셨을 때 같은 학교에서 무용선생으로 계시던 시절부터 어머니를 통해 선생님과의 인연을 가지게 된 김운미 선생의 기억, 보자기속에 「춤」지를 들고 와 홍보하시던 조동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그 정신을 느낀 학생시절의 박은화 선생의 증언은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남정호 선생은 초창기 한국춤평론가회 멤버로서 누구보다도 조동화 선생님을 가까이서 바라봤으며, 오은희 선생은 무용가로서의 책임감과 동시에 자긍심을 심어주신 선생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닮고 싶어 하며, 무용인을 사랑하는 진정성을 전홍조 선생은 절실히 느꼈다고 한다, 송 범 선생을 통해 조동화 선생에 대해 많이 들어왔었지만 뒤늦게야 뵙게 된 윤성주 선생이 기억하는 선생님의 웃는 얼굴, 한 번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1주기 행사를 통해 조동화 선생님을 후학들에게도 알려야한다고 뒤늦게 깨달은 이은주 선생, 역시 조동화 선생님을 생전에 뵙지는 못했지만 헌무를 통해 조동화 선생님을 연구하며 누구보다도 선생님을 잘 알게 된 김순정 선생까지 이어졌으며, 끝으로 안평선 선생의 더 많은 이들의 춤지 구독 독려로 2부 회고 시간을 마쳤다.
1부 때 보다는 좀 더 숙연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아마도 원로 분들은 조동화 선생님과의 비슷한 연배에 직장 동료로서, 상사로서 선생님을 추억하셔서이겠지만, 무용가들에게는 선생님이 멘토로서 다가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무용가들 역시 “선생님은 나만 좋아하신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더라”는 불만 아닌 불만으로 역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도록 안배를 했음에도 시간상 모든 분들에게 마이크가 돌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어 「춤」지 편집장을 역임한 김경애 한국춤평론가회 회원의 추모사가 있었다. 여기에서 「춤」지 편집장 시절을 떠올리며 조동화 선생님께 야단을 많이 맞았던 일을 회고했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시적 진실”을 말씀하셨다는데, 그때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예술과 과학, 즉 감성과 이성을 함께 갖추어야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임을 깨달았고, 이미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