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매해 5월 22일은 “생물 다양성의 날”이다. 유엔에서 정한 “세계 생물 다양성의 해”인 2010년부터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계속해오고 있다. 기후변화, 환경오염, 무분별한 개발 등의 이유로 해마다 수만 종의 생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성 감소의 문제는 이제 사람들이 체감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봄이면 팔랑거리며 하늘을 수놓던 나비들, 여름밤을 울리던 개구리들의 노래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경제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 농업이나 축산업에서 생물 다양성의 감소, 그리고 그에 따른 종자 확보는 이제 국가 단위의 산업이 되었다. 한국도 국립생태원이나 생물자원은행 등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생물학적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아 재앙을 맞이한 사례로는 바나나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세계 어디서나 값싸고 맛 좋은 노란색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 케번디시라는 종류의 바나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똑같은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 즉 전 세계에서 동일한 종의 바나나를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가 병에 걸리면 유전적으로 비슷한 다른 지역의 바나나에도 손쉽게 퍼져나가고, 똑같은 종들만 키워지다보니 유전적 다양성이 낮아 병에 면역이나 저항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최근에는 파나마병이라는 곰팡이가 돌아 바나나 나무들이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데, 감염된 지역의 바나나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른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더 이상 값싸고 맛 좋은 바나나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바나나뿐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물들은 이제 대형 종자회사에서 보급하는 종류로 이루어져 있고, 그만큼 지역에서 키워 먹던 다양한 종들의 작물들은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인간에게 있어 별 다른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작물들도 수집하여 보존하고 생태를 기록하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이익에만 집중한 생물학적 다양성 보전은 반쪽짜리 보전이다. 생물학적 다양성의 보전이란 결국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태계의 복잡성을 얼마나 잘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생태계의 높은 복잡성은 인간이 완벽하게 파악하여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기 때문에 어느 부분만 선택적으로 유지, 촉진 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에게는 별 필요가 없어 보이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기생충도 생태계 다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 생물 중 40% 가량이 기생생활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이런 기생생물들은 건강하고 역동적인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흔히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생충의 역할치고는 낯설다. 하지만 그렇게 다양한 기생충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생태계라는 의미도 있고, 동시에 기생충이라는 적절한 자극이 생태계의 순환과 성장, 진화를 돕는 이유도 있다. 고른 다양성의 보전, 그리고 인간의 주관에 치우치지 않은 공정한 보전은 길게 보아 인간이라는 종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작은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