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살롱

로기수는 가공인물이고, 이은관은 실존인물이다. 로기수는 뮤지컬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외국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다. 복면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 로기수는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자신의 신분을 숨기면서 춤을 출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얘기를 하고 있다. 로기수는 소재도 신선하고 연출(김태형)도 훌륭하다. 탭댄스를 중심에 둔 춤과 노래를 음악(변희석)이 잘 살려준다.
‘로기수’를 보면서 이은관(1917~2014)이 떠올랐다. ‘배뱅이굿’의 이은관은 지난 세기 가장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장사훈(국악학자)이 펴낸 국악대사전(1984)에선 배뱅이굿을 이렇게 폄하한다. “내용이 몹시 조잡해서 짜임새가 적을 뿐만 아니라, 전편을 통해서 세련미가 부족하고 황당무계한 점이 없지 않다.”
2003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가 시작됐다. 나는 채록연구자로 참여했고, 첫해의 채록인물로 이은관 명창이 선정되었다. 국악을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정작 국악인들에게 홀대를 받는 이 분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분의 구술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국전쟁 당시 1년 정도의 행적이 석연치 않는 것이다. 거제도포로수용소 시절의 얘기를 구술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숨기고 싶다기 보다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몇 번에 걸친 구술채록이 끝나갈 무렵, 선생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얘기를 조심스레 꺼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 책에는 많이 담기지 못했다. 그리고 이은관 선생은 10년 뒤 세상을 떠났다. 명인명창, 명무명고. 요즘 이렇게 불리는 분들! ‘요정부터 장터까지’,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그럼에도 아직도 이런 말을 꺼려한다. 그들의 국악이 이렇게 보통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들었기에, 전통예술은 오늘까지 이어졌다.
21세기 전통예술은 그 어느 때보다 국·공립적 지원을 더 받고 있음에도 왜 국민들 사이에서 더 멀어져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을 주는 사람이 로기수요, 이은관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예술 활동을 ‘우러러보게’ 하지 않았다. ‘곁에서 즐기게’ 하려 했다. 비유컨대, 조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 대했던 거다.
이은관 명창의 1주기 공연이 성대히 치러졌다. 하지만 나는 한편 참 갑갑하다. 장소팔, 고춘자, 김영운과 함께 유랑했던 이 분의 경력은 거의 말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이은관 명창은 ‘배뱅이굿’ 그 하나만에 정진했다고 설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 신화를 만들고 싶어하는가?
이런 경향은 비단 이은관 명창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지난 세기에 이름을 날린 명인과 관련해서, 그들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을 뭔가 특이한 ‘신화’를 만들려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은 진정 알고 있을까? 이렇게 신화를 지어낼수록, 결국 국악 혹은 국악인들은 점차 ‘화석’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그러면 그럴수록, 국악이 잠차 박물관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로기수가 이은관, 이은관이 로기수다. 이 둘의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일이 절실하다. 그게 바로 국악도 뮤지컬처럼 대중화될 수 있는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