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는 당나라 동시대를 살았던 시선(詩仙) 이백을 기리며 ‘술 한 말에 시 백 편’이라 칭송했다. 서예가들 또한 술을 떼 놓고 말할 수 없다. ‘술 한 말에 글씨 백 점’이랄까.
지난 달 25일 오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국 구이저우성(貴州省) 준이시(遵義市) 마오타이주 공장 취원(醉園)에 한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서예가 20여 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중문화우호협회(회장 취환)가 주최하는 「차와 글-귀주 취필전(茶字緣-醉美貴州)」은 ‘차·술·서예’라는 한국과 중국의 공통 문화를 맥으로 양국의 우정을 두텁게 하는 마당이었다.
한국 서예 중흥을 내세운 한국서예단체총협의회가 뜻을 모으니 두 나라 서예인들은 술에 취하고 우정에 취했다. 초중등 학교 과정에서 서예가 필수 과목이 된 중국은 일상생활에서 붓글씨 쓰기가 당연한 듯 보여 부러웠다. 둘러보는 모든 공간에 붓글씨 작품이 붙어있어 한국과 대조되었다.
이번 행사는 한국과 중국의 서인(書人)이 옛 전통을 내려 받아 술 한 잔에 글씨 한 폭이란 미덕을 실행하는 재현의 현장이었다. 중국이 국주(國酒)로 자랑하는 마오타이 술잔이 여러 순배 돌자, 한국 서예가들은 화답하듯 막걸리 잔을 권했다. 먹을 듬뿍 머금은 붓이 공중을 휘젓자 한 폭의 추상화 같은 서예 작품이 완성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취필(醉筆)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구경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묵향과 누룩 향에 젖어들었다. 이백이 “시는 칼이요, 술은 칼집이다”라 읊은 뜻이 절로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붓끝을 눅여주는 술은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받들어온 인생의 본질이다. 술을 머금은 붓은 천하의 명필이 되어 아름다운 붓놀림을 만들었다.
한국의 원로 서예가 권창륜(72) 선생은 중국의 신예 서예가 리마오장(32, 李茂江)과 작품을 교환하며 “나이와 국경을 넘어 새로운 예술의 경계를 위해 노력하고 자주 교류하자”고 격려했다. 권 선생은 “중국은 법첩(法帖)을 무시해서 각기 개성을 뽐내며 자유로운 점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본을 멀리 해 문란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너무 법첩에 묶이다 보니 고루한 점은 있으나 기본이 튼튼하니 앞날을 지켜봄직하다”는 평을 남겼다.
나란히 서서 자음시(自吟詩)를 쓴 중국의 양솽(70·楊霜)과 홍우기(55)씨는 “한시(漢詩)를 아는 사람과 필담으로 뜻을 나눠 즐거웠다”며 서로를 칭송했다. 필담으로 마음의 정을 나눈 두 서예가가 나눈 시는 이런 것이었다.
멀리서 온 객과 함께 잔을 기울이며
좋은 술을 마시다보니 흥이 다하지 않더라
마오타이주 따르니 향기가 가득한데
나는 새들 그림자가 옥배에 들어오네.

술잔은 항상 넘쳐야 한다지만
찻잔은 넘칠 필요가 없다지요
귀주엔 하루 종일 물 끓는 소리
자세히 우리 다시 이야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