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장현수의 『수정흥무(守丁興舞)』(4월17~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립무용단의 최장수 무용수이자 간판스타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온 장현수가 개인전 『수정흥무(守丁興舞)』를 4월17~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펼쳤다. 수정흥이 과연 무엇인가 궁금해 할 사람이 많을 텐데 한국무용가 국수호, 배정혜, 조흥동의 가운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장현수가 추는 국수호, 배정혜, 조흥동의 춤이라는 뜻이다. 사실 셋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 한국무용가로서 국립무용단의 수장을 역임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춤 스타일이 서로 다르고 대가(大家)로서의 자존심도 대단하여 한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장현수란 춤꾼의 역량을 높이 사지 않았다면 허락할리 없는 구성이다.
장현수는 모두 네 개의 작품을 독무로 추어냈는데 한영숙류 태평무를 재해석한 『향연』, 조흥동류 한량무를 재해석한 『여정』, 배정혜류 흥풀이춤을 재해석한 『찬가』 국수호류 입춤을 재해석한 『미학』이 그것이다. 4월18일 공연에는, 네 개의 독무 사이사이에 오철주의 『승무』, 민은경·김준수의 『감각(사랑가)』, 성슬기·채수현의 『경기민요』 등을 배치하여 관객에게 다채로운 쾌를 선사하였다. 그밖에 아홉 악사들의 신명나는 국악연주, 화려하고 고은 색감과 디자인의 한복, 현대적인 감각을 돋우는 사각구도의 무대미술까지 어우러져 ‘수정흥무’란 공연을 풍성하게 완성하였다.
한영숙류 태평무를 재해석한 『향연』에서 장현수는 왕비로서 격조, 우아함, 여성미 같은 특질들을 춤추는 몸에 담아냈다. 조흥동류 한량무를 재해석한 『여정』에서는 선비의 기상과 품위보다는 풍유와 장난기를 더 잘 그려냈다. 라이브로 연주된 국악 장단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유로이 노니는 모습에서 어떤 경지마저 느낄 수 있다. 배정혜류 흥풀이춤을 재해석한 『찬가』에서는 리드미컬하게 수건을 휘돌리고 감아치면서 절제된 신명을 표현한다. 국수호류 입춤을 재해석한 『미학』에서는 기생의 고혹 속에 감춰진 슬픔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발뒤꿈치를 들고 서서 잔걸음을 연속하는 기교는 많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장현수의 춤에서 무슨무슨 류의 전형이 그리 중요해보이지는 않는다. 원래 어떤 춤이든 간에 자기 몸으로 빨아들여 자기 춤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어떤 춤이든 장현수가 추면 장현수의 춤이 된다는 의미다. 이는 그녀가 탁월한 기교와 입체적인 표현은 물론 무대 장악력과 관객 흡입력까지 모두 갖춘 범상치 않은 무용수이기에 가능한 성취다. 그녀가 그 동안 몇 차례 보여준 안무 능력은 크게 주목할 만하지 않았지만, 이번과 같이 기존의 춤을 재해석하여 추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장현수 춤의 또 다른 매력은 한국무용임에도 불구하고 옛것으로 보이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일련의 박자감에서 찾을 수 있다. 박자를 길게 잡아끌고 늘여서 춤을 췄던 기존 스타일에 비해 장현수는 리드미컬하게 음악을 타고 놀면서 추는 스타일이다. 거기에다가 잡고 놓아줄 때, 맺고 끊을 때를 적절한 타이밍에 활용하는데, 훈련에 의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넘어 타고난 재주까지 엿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장현수의 한국춤사위는 한층 감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이쯤 되면 장현수는 일반적으로 춤 잘 추는 무용수를 넘어선 ‘신기(神技)를 타고 노는 춤꾼’으로 명명될만하다.

* 조택원&국수호 『무용조곡-춘향전』(4월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매년 봄이 되면 새로운 생명력이 만물을 희망차게 만들 듯, 무용계에서도 겨울 내내 경직되어 있던 춤에 활기를 불어넣는 봄꽃과 같은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올 봄에 주목할 만한 창작품으로 조택원&국수호의 『무용조곡-춘향전』, 차진엽의 『페이크 다이아몬드(Fake Diamond)』, 윤푸름의 『17센티미터』를 꼽아 본다.
조택원&국수호의 『무용조곡-춘향전』은 4월 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있었던 「조택원·김문숙 춤 유산」이라는 공연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다. 원전은 조택원에 의해 1941년 일본 히비야 공회당에서 초연되었으나, 현재 구할 수 있는 영상이 1분 40초짜리 하이라이트인 관계로 국수호가 원전에 관한 프로그램, 신문기사, 사진, 부인인 김문숙의 증언 등을 토대로 35분짜리 작품으로 재창조하였다. 그러므로 이번 공연에 관한한 조택원&국수호의 『무용조곡-춘향전』이라는 명명도 가능하리라 본다.
‘방자표표’, ‘춘향난만’, ‘몽룡춘흥’, ‘광한정연’, ‘옥중춘향’, ‘재회장한’이라는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는 『무용조곡-춘향전』은 첫 장면의 방자를 제외하고는 몽룡과 춘향 둘이 춘향전의 기승전결을 함축해서 그려나간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몸짓이나 휘몰아지는 감정 표현 없이 낭만적이고 서정적으로 흐르듯 진행되는 춤이 인상적이다.
작품의 음악성은 매우 탁월하다. 무대 오른 편에는 가야금, 대금, 장고가 그리고 왼 편에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연주되고 있는데 국악과 양악의 합주가 한국적인 소재와 서양적인 연출을 효과적으로 받쳐주고 있다. 특히 신파 가까운 진득한 표현으로 몽룡과 춘향의 만남, 사랑, 이별, 재회를 그리는 것이 아닌, 음악적 감성을 풍부하게 함양한 몸의 심미적인 선형으로 이를 묘사한다는 데서 매우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을 읽을 수 있다.
백아람(춘향)과 호흡을 맞춘 몽룡 역의 김재승은 유연하고 우아한 선형의 춤으로 작품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조한다. 딛고 뛰는 움직임에서조차 섬세함과 기품을 유지할 줄 아는 특질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작품의 심미감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김재승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이번 『무용조곡-춘향전』은 70여 년 간의 시간을 초월하여 춤의 대가(大家) 둘이 협업한 것 같은 작품으로 재창조되었다. 두 대가의 조합이 얼마만큼 예술성 뛰어난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 차진엽의 『가짜 다이아몬드』(3월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차진엽의 『가짜 다이아몬드(Fake Diamond)』는 2013년 「창작산실」 공연 이후 「우수작품재공연」에 선정되어 3월 6일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재공연작이라고는 하나 초연 때와는 다른 작품으로 여겨도 무방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에 띄게 탄탄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몸에 밀착한 드레스를 걸친 채 가슴과 엉덩이에 거대한 뽕을 넣은 여성무용수들이 그 부위를 강조하는 웨이브와 트위스트를 하는데 다소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대량으로 버려진 쓰레기더미 속에서 검은 봉지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린다. 이젠 벌거벗은 몸뚱아리들이 줄지어 걸어다닌다. 넉넉했던 인터미션 시간에는 극장로비 두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솔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2부로 들어서면서 한층 더해진 열기가 작품의 본격화를 말해준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무용수들은 마치 클럽에서처럼 젊은 감각을 발산한다. 그들은 경찰 헬멧, 가면, 망토, 털 코드, 풍선, 빤짝이 의상, 선글라스, 왕관 그리고 “차진엽 니가 갑이다”라는 플래카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품들을 착용하거나 손에 들고 등장해서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유흥, 놀이, 허세 등이 뒤섞인 움직임을 리드미컬하게 펼쳐나가는 전개가 독특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점차 인간의 염원을 담은 제의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진행됨에 따라 항변의 뉘앙스도 엿볼 수 있는데, 염원하는 마음속에 변화로의 의지가 담겨져 있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보다 편안하고 진솔한 움직임으로 무리지어 걷고 선회하고 헤드뱅잉을 하기에 이른다.
『가짜 다이아몬드』에서 차진엽은 물질문명에 예속된 현대인의 허영과 욕망과 콤플렉스를, ‘이름답지만 쓸모없는’ 가짜 다이아몬드에 비유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상징되고 있긴 하지만 재산, 외모, 성, 유행, 신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에 대한 집착은 환멸과 상실을 불러일으킬 뿐이며 결국 여기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성공의 키워드는 차진엽의 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작품의 흐름을 거의 무아지경으로 끌어올리다가도 한 순간에 공허하게 만들 수 있는 통제력을 지닌 드문 무용수이기도 하다. 가짜 다이아몬드라는 제목에 반하여 진짜 다이아몬드 같은 무용수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안무를 최상으로 빛낼 줄 아는 능력은 희소가치가 높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녀 없이 최상의 안무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어야할 과제다.

* 윤푸름의 『17센티미터』(3월27~2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윤푸름의 『17센티미터』는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의 일한으로 3월 27-2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소개되었다. 윤푸름은 오랜만의 신작에서 안무 이상으로 공간에 있어서 창조력을 발휘하였다.
윤푸름의 고유한 안무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한국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색채, 순환적인 호흡과 낮은 무게중심, 의미를 함축한 몸짓과 구도적인 대열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는 곽고은, 김모든, 박재영, 배유리, 이윤정에 의해 효과적으로 실현되었다. 평소보다 행위자들 간의 관계성을 함축하는, 근접하지만 그다지 붙지는 않는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는 안무 구도에는 더욱 신경을 쓴 듯하다. 다만, 다섯 명의 전체적인 동선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예측을 뛰어넘는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함양한 움직임 자체의 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