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끼의 서울유레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이 의외로 커피를 많이 마신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느 곳을 가도 커피 대접을 받을 수 있었고, 또한 후식으론 으레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것도 100% 인스턴트 커피를…. 격세지감, 30여년이 지난 요즘은 별다방이니 콩다방이니 하는 별칭으로 불리는 커피전문점과 내로라하는 바리스타들이 지천이다. 본디 일본에서 원두커피를 즐겼었던 나로선 요즘 한국의 이런 커피 문화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하여 이번 호는 커피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커피의 기원은 13세기의 에티오피아라는 것이 통설이며, 산양이 커피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마시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커피는 아랍을 통해 세계에 특히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그래서일까 터키의 커피는 한국의 된장국처럼 집집마다 그 맛이 제각각이란다.
일본에 커피가 상륙한 때는 에도시대 초기 즉, 17세기로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개항장이었던 데지마(出島)였다고 한다. 하지만 개항장 출입이 허락된 일본인이 담당 사무라이와 상인, 그리고 창녀들뿐이었던 데다가 일본인의 입맛에 맞지 않아서 그런지 적극적으로 수입되지 않았다.
더 많은 일본인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명치시대 이후라는 게 통설이다. 명치시대에 들어선 일본은 서양문명을 빨리 배우고 익히려는 한 방편으로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실 기회가 있는 사람들은 상류층뿐이었으며, 맛을 안다기보다는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심으로 인한 부분이 더 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조선도 왕실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 마니아로 알려진 고종황제와의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로 엮은 김소영 주진모 주연의 영화 「가비」와 김탁환 작가의 소설 「노서아 가비」를 통해서도 이런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일본이나 조선이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었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커피전문점이 문을 연 때는 1888년 도쿄 우에노의 한 카페였다. 당시엔 별로 인기가 없어서 몇 년 만에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양잿물처럼 쓴 음료는 서민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에 들어선 이후다. 문단의 작가들이 파리의 문호와 같은 행세를 하려고 적극적으로 마셨고, 더욱이 커피 값이 전보다 내린 관계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본 곳곳에서 카페가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어 조선의 한양에서도 이와 같은 카페가 문을 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국의 음료문화라 하여 전면 금지된 과거도 있었으나, 패전 이후 주둔군으로 인해 다시 커피가 일본에 들어왔다. 그 후 1950년부터는 커피콩의 정식수입이 재개되었다. 1960년 이후부터는 인스턴트 커피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명실 공히 커피는 서민들의 음료로 인식되었다.
내가 태어난 1965년에는 이미 커피가 대중적이었다. 내가 커피를 마셨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을 다니기 전이니 서너 살 때쯤일 것이다. 그날 어머니와 함께 근처에 있는 이른바 잘 사는 집에 놀러갔었을 때 일이다. 나는 그때 우유를 마셨는데, 어른들이 먹는 검은 액체가 궁금해서 나도 먹겠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집 주인은 나를 위해 커피를 한 잔 뽑아 주셨었다. 나는 기꺼이 마셨는데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약보다 쓴 그 맛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옆에 뒀던 우유를 한 번에 다 들이켰다. 그래도 음식은 남기는 것이 실례라고 배운 나는 각설탕을 엄청 넣고 겨우 다 마셨다. 어린 나이인데도 그 당시의 경험은 오늘날도 생생하다. 그 이후 어떻게든 블랙커피를 마시려고 노력(?)을 한 나는 우유에 인스턴트 커피를 넣고 마시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 후 아침마다 커피우유를 즐겨 마셔왔지만 그때까지도 블랙커피는 넘어갈 수 없는 장벽이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이제 블랙커피를 즐겨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사이펀으로 끓인 커피를 처음 마셨다. 집에서 마시던 인스턴트와는 확실히 다른 풍요로운 향기와 맛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내 커피 인생의 두 번째 임팩트였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사이펀 기구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부모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결코 싸지 않은 사이펀 세트를 사주셨다. 그 후 나는 가끔 커피콩을 파는 가게로 가서 커피콩을 조금씩 사오고, 집에서 커피를 끓여서 즐겨 마셨다. 물론 친구를 집에 불러 커피를 대접하기도 했다.
중학생이었지만 이미 콜롬비아, 브라질 등 커피 생산지로 커피 맛 세계여행을 한 셈이었다. 그중에 가장 좋아한 커피는 블루마운틴. 다른 커피콩보다 비싼 가격이지만 난 이미 그만한 이유를 알게 된 중학생이었다. 그래도 평상시에는 브라질 등 비교적 싼 가격의 커피를 마시고, 세뱃돈 같은 큰돈을 받았을 때 블루마운틴을 샀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나는 깃사텐(喫茶店)에 자주 갔었다. 깃사텐의 한자식 표기를 한국어 발음으로 하면 끽다점이다. 차를 즐기는 점방이란 말인데, 한마디로 일본식 다방이다. 별다방 등의 커피전문점이 생기기 전에는 커피를 마시려면 깃사텐에 갈 수밖에 없었다. 깃사텐에는 커피뿐만 아니라 주스 등의 음료수와 햄버거나 파스타 등의 경양식, 그리고 맥주 등 술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커피보단 가게 안에 비치된 만화 잡지나 전자오락기에 관심이 끌렸었다. 집에서는 왠지 만화책을 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며, 만화책을 보려면 이발소나 깃사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이발소는 매주 갈 수 없어서 자연스럽게 깃사텐에 가게 된 것이다.
깃사텐이 한국의 만화방과 비슷한 역할을 지니고 있던 셈이다. 일본에도 만화방이 옛날에 있었으나 196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일본의 깃사텐에 온 한국 친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긴다. 물론 담소하거나 미팅 때문에 오는 손님들이지만 혼자 오는 손님도 적지 않다. 나처럼 만화잡지를 보러 와서 커피 한 잔으로 오랜 시간 버티는 손님도 있고, 식사를 혼자 하러 오는 손님들도 있다. 혼자 왔으니 당연히 이야기 상대는 없었고, 혼자서 묵묵히 잡지를 보거나 신문을 보면서 식사하는 그들이 모습이 어딘가 겸연쩍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지만 한국에 와서 이유를 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1980년대에도 다방에 혼자 오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혼자 오는 손님들은 다방 아가씨나 마담하고 담소하고 싶어 오는 나이 많은 중년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깃사텐과 한국의 다방을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커피 자체에 있다. 내가 한국에서 처음 다방에 들어간 일은 1984년 봄, 부산관광호텔 앞 다방이었다. 커피숍이라는 간판 보고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나온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였다. 일본의 깃사텐은 나 같은 불량손님(?)이 와도 커피전문점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이상, 제공하는 커피는 당연히 원두커피이며 만일 인스턴트 커피를 제공하면 다음날부터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다.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라면전문점에서도 인스턴트 라면을 파는 것이었다. 그 후 한국에서는 인스턴트식품을 손님에게 제공하여도 장사가 되는구나, 라고 알게 되었다.
일본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것은 배달 서비스이다. 나는 세계 50개국 이상을 다녀봤지만 커피 배달 서비스가 보편화되어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하긴 점점 알게 되는 바지만 한국은 배달 서비스의 천국이다.
처음 한국의 다방에 갈 때마다 궁금했던 것은 쟁반을 보자기로 싸 들고 다방 아가씨들이 어디로 가는지였다. 그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 구 대한극장 4층에서였다. 옛날 대한극장은 70mm 상영관이었으며 한국 내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극장이었다. 극장건물 4층에는 작은 사무실들이 몇 개 있었으며, 그중에 하나가 「영화예술」 편집실이었다. 재일교포이신 고 이학인 감독님 소개로 나는 고 이영일 주간님을 소개 받았다. 이 주간님은 내가 편집실을 찾을 때마다 다방에 커피를 시키셨다.
처음엔 짧은 치마에 화장이 진한 아가씨가 보자기를 들고 들어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였다. 아가씨는 설탕을 몇 개 넣을 건지 물어보고 묵묵히 물병에서 잔에 커피를 따른 후 커피 잔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커피 잔을 받아 커피를 마셨다. 이 주간님이 커피를 다 드신 후 계산을 하시면 아가씨는 인사말만 남기고 나가 버렸다. 그 시간은 5~10분이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사실 인스턴트 커피 정도는 사무실 직원이 끓여도 같은 것이 나온다. 왜 일부러 다방에 시키는 것인지 나는 끝까지 알 수 없었다. 이영일 주간님이 돌아가신 지금, 그 이유를 물어볼 수 없지만 다방에 커피를 시키신 일은 일본에서 현해탄을 건너 온 일본인 청년을 대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인스턴트 커피라 해도 숙녀분이 정성껏 따라주는 특별한 커피라서 그러려니 하고 요즘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요즘은 별다방으로 대표되는 커피전문점들이 대로변은 물론 골목상권까지 점령해 어디서든 쉽게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깃사텐과 비슷했던 다방들은 원두커피의 위세에 밀려 이젠 도심에서 점점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반면 일본은 좀 다르다. 별다방이 일본에도 상륙한 것은 같은 점이지만, 깃사텐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깃사텐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 서비스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주인들이 긍지를 갖고 커피를 끓이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다방과 깃사텐의 명암을 가른 것은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어째든 깃사텐은 지금도 성업 중이다.
현재 다방이라는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