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세계의 춤기행

나는 2014년 2월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 EX2014(Yokohama Dance Collection EX 2014)」에 참가해서 『더 스킬 포 미(The Skill for me)』라는 작품으로 ‘주일 프랑스 대사관 상(The French Embassy Prize for Young Choreographer)’을 수상하여 그 부상으로 6개월간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연수 기회를 얻게 되어 같은 해 7월부터 12월까지 프랑스 연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연수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그간의 프랑스 연수는 어땠냐고.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순히 좋고 나쁨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의 색다른 경험들과 다양한 감정들이 마치 프랑스 빵인 크로와상의 겹겹이 쌓아 올린 모양처럼, 어쩌면 뒤죽박죽 뒤엉킨 상태로 쉽게 정리되지 않았기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할 수도 정확한 대답을 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시간인 6개월이 흐른 2015년 6월 이 시점이 어쩌면 그 시절을 정리해보는 것에 적당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7~8월의 파리지엔들은 도시 밖으로 바캉스를 떠났지만, 그 빈자리를 관광객이 메꾸어 주었기에 나는 여전히 분주하고 활기찬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디를 가도 관광객의 사진기에 노출되었고, 이 많은 이방인들과 함께 이 도시를 누비며 적응해가고 있었다. 파리의 레지던스 장소인 시떼(cite des arts, 빠리국제예술공동체)에서 제공하는 아티스트 카드 덕분에 여러 미술관에서 좋은 전시들을 무료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잠시 옆 나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로 떠나 「임풀스 탄츠(ImPuls Tanz) - 비엔나 인터내셔널 댄스 페스티벌(Vienna International Dance Festival)」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중 에마뉘엘 윈(Emmanuelle Huynh)과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 워크숍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의 특별심사위원인 엠마뉴엘 윈의 워크숍 「인비저블 스쿨(Invisible school)」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용 역사에서부터 현재 현대무용의 흐름, 그녀의 작업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스카이프를 이용해 안무가 제롬 벨(J럕셫e Bel)과의 대화,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는 현지인과 경제 흐름에 대한 대화, 이케아 공장 탐방,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의 재해석 등 정말 경계가 없는 이 워크숍에서 더욱 실질적이고 유니크한 이 형식에 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틸드 모니에의 워크숍 「메모리(memory)」는 몸의 기억을 주제로 몸이 단순히 개인의 역사만을 담고 있는 유기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국가, 문화, 역사, 사회적 영향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한 존재이며 몸이 취하는 태도와 표현 역시 그것을 바탕으로 취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개개인의 몸의 기억을 리서치하고 창작물을 만들어 보았는데 내 몸에 단순한 상처 하나도 기록물로써 다시 바라보니 몸을 인식하는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9월에는 3주간 몽펠리에CCN(centre chor럊raphique montpellier, 몽펠리에국립안무센터)에서 레지던스를 했다. 드보라 헤이(Deborah Hay)와 디디 도빌러(D.D dorviller)의 「쓰기, 만지기, 관차하기, 움직이기(writing, touching, observing, moving)」 워크숍에 몽펠리에국립안무학교 EX.E.R.CE의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다양한 실험과 자신의 작업을 리서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굉장히 자율적이어서 각자 개개인의 성향을 존중해주며 서로가 서로의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나는 서로에게 피드백과 질문을 던지며 창조의 과정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행위와 생각을 의식적으로 발견하는 시간을 보냈고 그것에 있어서 혼돈과 알아차림을 반복하였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내 작업 『망뜨는 사람(Homo knitiens)』은 시작되었다.
10월은 릴리외라파프(Rillieux-la-Pape)에 있는 CCNR(Centre Chor럊raphique National de Rillieux-la-Pape 국립안무센터)에서 레지던스 및 데모크리에이션(Demo-Creation) 수업이 있었다. 마치 산속 별장처럼 지어진 나무건축물은 편안함을 주었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작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오전에는 위발픽(Yuval Pick)무용단의 워크숍에 참여하여 그 무용단의 무용수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개인 작업을 하며 보냈다. 연습실에서 혼자 작업하는 시간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 고독과의 싸움, 선택의 싸움, 불확실함과의 싸움…. 지독하게 고립된 듯한 상황 안에서 가끔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야하기도 했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흐르고 『망뜨는 사람(Homo knitiens)』의 데모 크리에이션(demo-creation) 시간이 드디어 왔다.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왔고 쇼케이스가 끝나고 많은 분들이 피드백을 주었다. 그들의 반응과 질문은 폭이 매우 넓고 다양했으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대답을 만들어가는 순간 순간 아직 머릿속에서 맴돌 뿐 밖으로 표현되어진 적 없던 생각들이 말로 정리가 되면서 마치 그 순간 작업이 완성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 후 작품의 전반적인 방향성이 나왔고, 나는 조금 쉬고 싶은 마음에 랑느(Rennes)로 가기 전 프랑스 노르망디로 잠시 휴가를 떠났다.
매일 바뀌는 바다의 얼굴과 하늘의 색과 빛, 잠시 잠시 다녀가는 무지개들.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속살을 보였다 감췄다하는 몽셀미셀(Mont-St-Michel)은 1년 매일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프랑스에서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일몰을 본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꿀같은 휴식이 끝나고 랑느의 뮤제드라당스로 이동해 레지던스를 진행하였다.
11월의 랑느는 큰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시기라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마기 마랭(Maguy Marin), 보리스 샤마츠(Boris Charmatz), 메트 잉바르첸(Mette Ingvartsen) 등 현재 프랑스 컨템포러리의 현주소 느낄 수 있을 만큼 멋진 공연들이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엠마뉴엘 윈이 있는 지역이라 그녀와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이었다. 항상 귀 기울여주고 나를 응원해주는 지지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랭스(Reims)에서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공연했던 『더 스킬 포 미(The Skill for me)』의 공연 기회가 생겨 한국에서 함께 공연할 뮤지션이 프랑스로 왔고 잠시 『망뜨는 사람(Homo knitiens)』에서 벗어나 공연준비에 힘을 쏟았다.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Luc Petton)이 페스티벌에 나를 추천하여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잠깐의 여행을 다녀온 기분으로 랭스에서의 공연은 무사히 잘 끝났고 다시 신작 『망뜨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잠시 뤽 페통과의 만남을 언급하자면, 이전에 8월 리옹(Lyon)에 있는 본인의 작업장으로 나를 초대하였고, 그곳에 몇 일간 머물며 그의 신작에 출연할 학들(cranes)을 함께 돌보며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연과 동물 그리고 선배 예술가와 함께 보낸 시간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2016년에 서울에서 공연 될 『라이트 버드(Light Bird)』에 출연 할 이 어린 새들이 어떻게 댄서들과 공연을 만들어갈지 매우 궁금하다.
12월 마지막 시연(presentation)을 앞두고 다시 파리로 돌아와 파리CND(le CND Paris)에서 머물렀다. 겨울의 파리는 꽤 우울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쉽게 기분이 날씨를 닮아가게 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12월은 가장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프레젠테이션에는 『망뜨는 사람』에 자신의 옷을 기꺼이 내어준 친구들, 프랑스문화원(Institut Francais),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의 심사위원 레베카 리(Rebecca Lee), CND예술감독 마틸드 모니에(Mathilde Monnier) 외 여러분들이 참석해주셨다. 그 자리는 나에게 있어 6개월간의 프랑스 국립안무센터 연수를 마치면서 갖는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으로 『망뜨는 사람』이라는 신작을 선보이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지난 6개월의 시간과 흔적을 모두에게 들려주는 기분으로 무대 위에 올라갔다. 그래서인지 혼자 한 솔로 (solo)였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과 시간들이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프랑스국립안무센터 연수는 나에게 외로웠지만 너무나 값진 시간이었고 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고 되돌아볼 수 있는 다시 못 가질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간 너무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꽤 잘 지냈고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다. 뮤제드라당스에서 만난 안무가 보리스 샤마츠가 내게 해준 말처럼 나는 그렇게 시간을 지내온 것 같다. “Lost and found in France!(프랑스 분실물 센터)”
앞으로도 매년 ‘주일 프랑스 대사관 상’으로 예술가 1명이 프랑스에서 6개월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조심히 이렇게 전하고 싶다. “갈 수 있다면 저 바닥까지도 내려가 보세요. 가능하다면 더 다양한 당신의 모습과 만나보세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으세요! 모든 면에서” 라고.

*이 글은 일본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 홈페이지에 2015년 7월10일 영문으로 게재되었다(http://www.yokohama-dance-collection-r.jp/en/pdf/ydcex2014_france_residence_report.pdf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