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 2013년 제16회 크리틱스초이스(6.12~19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이인수 안무의 『비코즈 오브 와이(Because of Why)』
지난해 크리틱스초이스에서 보았던 이인수의 작품을 회상하며 즐거운 기대를 가지고 작품 『Because of Why』를 보았다. 작품의 시작은 단단한 움직임으로 전개된다. 춤 자체에 담긴 에너지의 이동과 주고받는 흐름을 보면 자연스레 전개되는 젊은 춤꾼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 류진욱을 중심으로 펼치는 움직임에 거침이 없다. 질주, 탄성, 반동, 춤으로 만드는 관계. 이들이 만드는 움직임과 춤 자체의 질적인 가치는 이미 수많은 무대에서 검증을 거쳤으니 이 움직임을 이끌어가는 작품의 정신이 무엇인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겠다. 작품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 메시지를 찾아본다. 지난해 ‘이유를 찾아서’에서 보였던 농도에 비해 분명히 빈약하다. 무대에서 보이는 움직임들은 어떤 주제와도 상관없이 그저 춤만으로 훌륭하니 아쉽다. 작품의 후반 이인수가 독백처럼 외친 담담한 메시지가 결국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감상의 문턱으로 관객의 생각과 기억의 문을 노크했다. 주관적 관점이지만 소리에 진실함이 담겼다. 이인수 자신이 몇 년의 작품 활동을 정리하고자 했다니 그 진실함을 품고 발전시킬 메시지를 무대에 전하길 바란다.

이영일 안무의 『사파리(Safari)』
춤을 추고 속에 담긴 이야기를 밖으로 발하다 보면 결국 어떤 시점에는 춤을 추는 근본적인 이유에 닫기 마련인데 크리틱스초이스에 즈음해 이영일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죄다 꺼내놓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나보다. 화두는 춤의 본질은 아니고, 춤을 추는 환경에 대해 춤과 관련된 시선과 구조에 대해 본인의 주장을 늘어놓았다. 이야기 속에 춤을 추고 사는 고민과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지금 것 꽤 굵직한 주역을 맡으며 무대에 섰던 이영일이 자기 무대에 올려놓을 깜은 아니다. 많은 말들이 춤과 어떻게 관계 맺을까 보았지만 설득은 빈약하다. 말의 직접성을 넘어 은유의 그림으로 녹아드는 과정도 미비했다. 무용하는 젊은이들의 애로 사항을 정확한 발음으로 듣고 나서는 이어지는 정리의 춤. 여기에 우리가 춤을 보고 계속 즐기는 감상의 경계점이 있었다. 이 마지막 춤이 어땠는가 하면 어떤 주제나 춤의 지향과는 연관을 갖지 않는 춤 자체만으로 꽤 좋은 느낌의 춤이었다. 분위기 있는 음악을 타고 최인호, 표상만, 이제준 등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볼만했다. 이런 춤의 재능들이 끊임없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우리가 춤을 계속보고 또 생활의 고통을 참고 이기며 계속 무대에 서고야 말게 되는 장점이자 생활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단점이다.
작품을 통해 ‘사파리’란 단어가 스와힐리어이며 그 뜻이 여행이란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울타리와 경계, 그 너머의 야생과 대비되는 일상의 것들을 작품 속에 분명히 품어주는 작가의 길에 이영일이 서길 바란다.

윤영숙 안무의 『어 름 爾』
아슬아슬하게 줄을타는 어름산이의 모습에 사람의 인생이 반영되었다 볼 수 있다. 아이들도 또래집단 속의 세를 만들며 어른과 같은 정치를 행사한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회적인 관심과 작가적 상상을 부여하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윤영숙의 작품 ‘어 름 爾’은 무용수들을 꽤 분주하게 움직이게 했지만 캐릭터를 부여하는데 미숙했기에 작품의 중심으로 관객을 이끌지 못했다. 김종완의 움직임에 기대를 가져볼만 하겠다.

오설영 안무의 『유토피아 vs 유토피아』
나 자신과 집단,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든 관계 맺기가 형성되고 나라는 존재와 집단의 질서 사이에는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주제는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 수없이 느끼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주제인데 오설영은 무대 위로 많은 수의 사람을 초대해서 조금 더 직접적으로 집단속의 나에 대해, 나와 무리속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중심은 꼼짝할 수 없는 일상 속에서도 결국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유토피아와 집단의 유토피아는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는데, 어떻게든 이 희망의 덩어리는 삶의 중추에 오롯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무대의 후면에 묵묵히 앉은 대중들. 그 사이사이를 오가며 오설영과 이재영, 조형준이 움직임을 이어간다. 서로의 바램을 들어주는 움직임. 새로운 많은 기호로서의 움직임을 무대에 그려간다. ‘유토피아’를 그리기 위해 일상의 모습을 디자인해 몇 개의 춤언어를 보인 것이 새롭다. 작품이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증폭되지 않아 아쉽기도 하고 아니면 이것이 오설영의 스타일인지 주목하고 싶다.

전혁진 안무의 『더 그레이드(The Grade)』
아주 분명한 형태의 공간으로 전혁진의 『더 그레이드』는 시작된다. 횡으로 가로지른 빛으로 무대를 상하로 나누고 숨거나 대화하듯 교차하는 이미지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계층을 표현한다. 이 분명한 인상적인 시작이 올해 크리틱스초이스에 선보인 어떤 작품보다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인상을 준다. 사람이 나서부터 사회적 신분이 정해진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여기에 높거나 낮음이 누군가의 삶을 강제하고 지배한다는 사실은 참기 힘든 일이다. 그 안에 놓인 이들의 절박함과 무기력은 상상만으로도 버겁다. 전혁진이 지적하는 관계 사이에서의 등급, 높고 낮음에 의해 영향 받는 사람을 주제로 작품을 풀어가는 제안은 일리가 있다. 이런 화두를 춤으로 풀어내는 것, 주제를 놓치지 않고 맺음까지 이어가는 힘에 우리는 작가라는 말을 쓰곤 한다. 전혁진은 아주 좋은 스타트와 전개과정, 두 사람의 에너지 있는 무용수, 와인잔을 모티브로 한 상황의 설명을 보였다. 이런 과정이 전개되면서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지루함이 있었다. 빼어난 무대 위의 춤꾼이 작가가 되기까지 분명 시간이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김재덕 안무의 『무제』
김재덕은 작품의 제목답게 몸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에너지만큼과 춤과 움직임이 맺는 관계를 경쾌한 흐름으로 작품에 담았다. 객석에서 두 사람의 무용수가 좌충우돌하며 마주하고 한사람의 움직임이 더해지며 일상의 무대에서 춤의 무대로 공간을 이동한다. 또 다른 한사람의 무용수는 시종 객석과 무대, 무대 밖의 공간을 가로지르며 반복적으로 움직인다. 그때 극장 안을 가득 메운 음악들이 극장안의 공간과 정서를 장악한다. 사이사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된 움직임들이 새롭다. 작품이 후반으로 전개되며 우리도 춤을 좀 출수 있다는 어필이 시작되면서 움직임에 힘이 들어가더니 김재덕의 날것이 좀 밋밋해졌다.

원혜인의 『어설픈 자리』는 작품이 전개되는 내내 움직임 속에 편안함이랄까 어떤 그리움 같은 여운과 기억하고 싶은 편안한 느낌이 분명하게 남았지만 염지훈의 『불편한 진실』과 마찬가지로 메시지를 던지고 그 속으로 몰입 할 수 있는 과정을 열어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