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살롱

아주 오랜만에 음악이 좋아 미니 기타를 둘러메고 어디라도 부르면 가서 노래와 반주를 선사하는 영문학도 출신의 최남석 후배 초대로 국립오페라단 공연 「처용」을 보러갔다. 감사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사이며 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 박사와 서강대 교수를 거쳐 우리나라 신문방송계의 큰 그릇이며 KBS이사장을 지낸 유재헌 교수와 동반 관람이 예정된 자리였다. 영문학도, 신문학도, 사학도, 독문학도 등 서양문화의 토양을 물씬 마시고 교양을 쌓아온 좋은 관객에다, 네 사람 모두 ‘우리 것의 발전’ 방향을 나름대로 제 분야에서 고심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 설화의 큰 자리를 차지하는 ‘처용’은 서양문화의 큰 줄기를 터 잡아 내려오고 있는 오페라라는 그릇에 어떻게 담았을까?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이 오페라는 이미 1987년 11월1일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바 있는 국가적 작품의 일환으로 마련된 귀한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도 그 참가진이 화려하고 단단하다. 원작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극본 김의경, 가사 고연옥에, 지금 막 연극계를 딛고 여러 공연예술계에 진출하여 연출을 맡아하고 있는 양정웅, 작곡계의 큰별 이영조 작곡으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정치용)와 그란데오페라합창단(지휘 이휘성)의 열연을 볼 수 있는 무대였다. 처용 테너 신동원, 가실 소프라노 임세경, 역신 바리톤 우주호, 옥황상제 바리톤 전준한, 임금 바리톤 오승용, 노승 바리톤 박경종 등 출연진도 화려하고 당차있다. 무대(임일진), 의상(김영지), 조명(여국군), 분장(구유진) 등도 자신의 분야에 분투하는 훌륭한 분들이다.
가히 한국 오페라계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이영조의 작곡은 서양 음악인을 무색하게 할 만큼 웅장하고 섬세했으며, 힘차고 근엄하기까지 했다. 출연진의 가창력과 성량 또한 관객을 압도하며 무대의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경제성 때문인지 영상을 활용한 무대도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음을 감지하였다. 모든 것이 화려하고 박력있는 무대였음에도 막이 내리고 쏟아지는 박수를 들으며 마음 허전한 것은 왜였을까?
문제는 처용의 설화를 우리 정서에 맞춘다고 하였는지는 몰라도 옥황상제, 역신, 임금, 노승 등 그 겉옷은 한국적인 것을 보이려고 애를 썼는데 그 펼쳐가는 스토리는 서양의 설화 프로메테우스의 불의 선물을 연상시키는 너무나 서구적 접근으로 우리의 지금의 현 주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서구 오페라를 본 느낌이었다. 왜 제목을 굳이 ‘처용’이라 하였을까? 대본 속에서는 절실한 갈등의 출처를 읽을 수 없는 채 처용의 가실과의 사랑의 갈등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물론 아리아가 공연의 꽃을 장식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과연 서양을 모방할 것인가? 아니면 서양을 소화하여 우리의 것으로 우리 그릇에 담기에는 얼마나 요원한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그러한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있는 것인지? 문화계의 이 화려한 많은 인재들을 품고 있으면서도 서양을 육화(肉化)하기에는 요원한 것인가? 그러기 위해 관객교육과 예술교육이 제 길을 가고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