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살롱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 하면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음악계에서는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 직후의 한국음악계 특히 관현학계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단체이다. 1942년 5월 경성후생실내악단은 당시 경성방송 관현악단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였던 김생려를 주축으로 활동이 뛰어났던 현역 기악 연주가와 당시 명성이 높았던 성악가 김천애, 이인범을 포함 10여 명의 단원들로 구성되었다(확대시 40여 명).
이 시기는 바로 1941년 12월8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구축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공격하여 홍콩을 부수고 마닐라를 때려눕히며 싱가포르의 아침바람을 맞는다는 승전의 노래를 부르며 군국주의가 기세를 부릴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압제 하에 있던 우리나라는 전쟁물자를 조달하기 위해서 공출이라는 미명 아래 특히 농산물의 대부분을 수탈당하고 집에 있던 유기그릇까지도 모두 바쳐야 하는 시대였다. 뿐만 아니라 징병과 징용으로 남자들은 군인과 노무자로 끌려가야만 했고, 젊은 여인들은 정신대라는 성노예로 착출 됐던 시기이다. 일반 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배급이라는 이름 아래 만주에서 생산되는 콩깻묵을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 때였고, 문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먹고사는 시대였다. 물론 학교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이 강행되는 때였다.
당시 서울의 음악계는 1941년 유일하게 존재했던 음악인들의 삶의 터전인 경성방송관현악단이 지휘자 홍난파가 8월28일 타계하고 이 여파로 40여 명의 음악가들이 살아가기가 막막해서 삶의 방편으로 시작한 것이 경성후생실내악단이다. 후생이라는 말은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낸 용어이다. 지금도 일본의 정부는 후생성이 있다. 한때 중국의 군부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군에서 갖가지 사업을 했는데 그것이 후생 사업이고, 해방 후 우리나라 군대도 포탄을 수거하는 등 후생 사업을 한 일이 있다. 후생은 당시로서는 먹고살아가는 절실한 요구였다. 그것도 일제의 통제된 정책 속에서 탈출구를 찾은 것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그 시대 그 체제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도 음악가들의 긍지와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식을 저버리지 않고 음악문화를 이루어 가려고 하는 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한편으로 순수 음악인으로서 당시 일본에서도 허용되었던 독일음악을 보급시키고 확산시키려는 의지와 한편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봉선화」와 같은 항일적인 노래들을 부르고 겉으로는 일본 군가와 전시 국민가요를 불러야만 했던 고민의 흔적이 있다.
그럼에도 1990년대부터 거세게 일어난 친일논쟁으로 경성후생실내악단과 그 종사자들은 친일 음악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현재명, 김생려 등 많은 음악가들이 그 범주에 속했다. 작년에 발행된 「한국음악사학보」(발행인 송방송)에 강태구 씨가 경성후생실내악단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균형잡힌 시각으로 쓴 연구 논문으로 경성후생실내악단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