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롱

몇 해 전 한국 사회에서 대중심리의 위험성을 일깨워주는 사건 하나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남자가수가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다는 데 의문을 표했던 네티즌들이 무리를 이뤄 그를 파상 공격한 사건이다. 당시는 심각성이 대단해 가족은 물론 그 주변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었고 결국 그 가수는 인기하락까지 감수하면서 흑색선전을 한 사람들을 고발했다. 그들 네티즌들은 가수의 논리정연한 해명은 고사하고 졸업한 학교에서 직접 보내온 학위증명서도 사기로 몰아붙여, 결국 사회문제가 되는 것을 막으려 경찰까지 나서고 말았다. 말하자면 경찰이 가수의 미국대학 졸업사실을 확인해 준 셈이다. 그 때 나온 네티즌들의 반응이 무척 놀라웠다. “원래부터 대한민국 경찰은 믿을 수 없다!” 편견의 위력은 실로 대단해 진실을 보는 눈마저 가리고 말았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더 헌트」(Jagten, 토마스 비텐베르그 감독, 덴마크, 2012년, 115분)는 앞의 가수의 경우와 흡사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와 유치원 교사를 하던 루카스(매즈 미켈슨)는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테오(토머스 보 라센)의 딸인 클라라를 특별하게 돌본다. 클라라는 종종 길을 잃어버리는데 그 때마다 루카스가 집에 데려다준다. “너는 선을 따라가렴, 나는 앞을 보마!” 클라라는 나면서부터 공간지각 장애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클라라의 어이없는 상상에서 비롯된 비극이 루카스를 덮친다. 그가 다섯 살 어린 소녀(클라라)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유치원 원장의 이 한마디는 곧 법처럼 온 마을을 휩쓸어 루카스가 경찰조사를 받자 주변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여자 친구로부터 의심을 사고, 신체적인 폭력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혼한 아내는 이를 빌미로 아들 마커스를 아빠와 떼어놓으려 한다. 루카스의 유일한 희망은 아들과 함께 사는 삶이었는데 말이다. 돌파구 없는 억울한 신세에 놓인 것이다.
클라라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리라는 사실조차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심지어 장애까지 갖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의 장점은 루카스가 끝까지 불행의 책임을 클라라에게 돌리지 않는 데 있다. 친구의 딸이자 장애를 가진 소녀에 대한 연민의 정이 최악의 처지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게 만들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빗나간 확신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은 왜곡된 정의를 좇아 집요하게 루카스를 사냥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분명하게 알려준다.
「더 헌트」는 2012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 유러피언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뱅쿠버 국제영화제, 영국독립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극적 요소가 뛰어나고 루카스의 고군부투와 아버지를 도우려는 아들 마커스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잠시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루카스의 심리를 쫓는 감독의 감각도 뛰어나고 유치원 원장에서 시작된 편견을 영화 전반에 골고루 퍼뜨린 시도도 좋았다. 유치원 원장이라면 왠지 어린이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시선을 가졌을 법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