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김재덕 안무 『무제』(6월 18~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김재덕 안무의 『무제』는 대부분 객석에 불이 켜진 채 진행되었는데, 이는 무대를 특정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반영한다. 그는 이전 작품에서도 정해진 극장 공간을 변형시키려는 시도를 보여주며 공간적 익숙함을 탈피하고자 했다. 이번에는 개인공연이 아니어서 극장 변형은 불가능했지만, 객석 통로를 이용한 구성은 여전했다.
막이 오른 후에도 객석에 불이 꺼지지 않고 무대는 텅 비어 있어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두리번거리게 하였다. 극장의 양쪽 측면 두 출입구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자 두리번거리던 시선들이 그리로 쏠렸고, 양쪽 좁은 통로로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객석 왼쪽 통로에 서 있던 무용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무대까지 뛰어 올라갔다 무대 뒤(혹은 옆)로 빠져나가더니 어느 샌가 (극장을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출입문으로 돌아와 객석 통로 그 자리에 서 있기를 반복했다. 똑딱똑딱 일정한 주기로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처럼 같은 움직임과 동선을 반복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감지시켰고 더불어 공간의 크기와 범위를 가늠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오른쪽 통로에서는 두 남자무용수가 계속해서 티격태격 하고 있다. 마치 싸움이라도 하듯 서로를 밀치고 때리고 부딪치고 하는 상호간의 동작이 직접적인 부딪침 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대 위로 올라갈 것 같았지만 그들은 줄곧 좁은 통로에서 끊임없이 말없는 몸짓을 이어갔다. (비교적 앞쪽에서 이루어졌다고는 하나) 관객들이 계속 고개를 돌린 채 바라봐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뭐하는 거지’ ‘저 사람들 왜 그래’ 하는 식의, 길 가다 호기심에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는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은 그야말로 구경꾼이 되었다. 그 순간 관객들은(구경꾼들은) 같은 궁금증과 관심을 갖게 되는데, 이로써 자연스러운 공감대가 형성된다. 거기에는 ‘말’과 직접적인 터치가 없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상에서 각종 욕설과 인신공격, 모욕과 상처받을 말 그리고 치고받고 때리고 멱살잡는 등 손발을 비롯해 온 몸을 써서 육체적 상처와 고통을 가하는 직접적인 폭력이 있다면, 이들의 싸움에는 오로지 ‘불통’, 너는 왜 나를 이해 못하니 식의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이 가득하다.
안무자 김재덕은 공연 시작하기 전 미리 앞쪽 객석의 관객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공연 중간쯤에 이들 두 싸움에 가세했다. 몇 번인가 이들은 무대를 올라갔다 내려왔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종횡무진 했는데, 그때마다 객석에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등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아무런 소리 없이 오로지 움직임만으로 지속되는 커뮤니케이션은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무대를 채웠다.
이어 공연 후반부에 다른 무대가 만들어진다. 무대에 의자 10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어 무언가의 부재를 보여주며 새로운 장면을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네 명의 무용수들은 객석에서 관객들을 한 명씩 무대에 올려 보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용수에 이끌린 관객들은 뻘쭘한 채 무대에 섰고 무용수들은 이들을 상대로 각자 나름의 말없는 몸짓으로 소통을 꾀하며 교감하고자 한다. 곧 한 명씩 의자에 앉아 다 채워지면 무대에서는 무용수들의 충돌이 다시 한 번 이어진다. 음악은 아까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운 음색으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관객들을 무대로 올려 보내는 과정에서 동의나 호응을 얻어내느라 시간이 꽤 흐르면서 굳이 이러한 요소가 필요하나 하는 의문도 있었다. 분위기가 느슨해지면서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긴장감을 흐트러뜨려 집중력을 약화시킨 것 같다. 이는 즉흥성과 우연성을 의도하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무대 위 일반인들의 역할은 미미한데, 맨 나중에 작은 플래시로 조명을 만들어 각자 작은 빛을 내는 것뿐이다. 어두컴컴한 무대에 작은 별처럼 반짝이는 빛은 우리들 각자의 존재일지 모른다. 결국 이 빛들은 한데 모여 홀로 남은 무용수를 비춰준다. 그렇게 막은 내린다.
김재덕의 『무제』는 특별히 새롭다고 할 만한 요소와 형식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에 대해, 즉 사람들이 서로 교감하는 방법에 대해 하나의 접근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논리적인 말보다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몸짓의 표현가능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감성이 있다는 사실을, 김재덕은 자신의 감수성으로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 오설영 안무 『유토피아 vs 유토피아』(6월 15~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평론가가 뽑은 제16회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서 김재덕보다 앞서 공연된 오설영 안무의 『유토피아 vs 유토피아』 무대에도 일반인들(비무용가)이 등장하는데, 언뜻 보면 이 작품 역시 관객과의 거리를 없애고 직접적인 참여를 통해 공연을 구성한 인상을 준다. 무대 뒤쪽(안쪽)에 약 30여개(혹은 그 이상) 의자로 객석이 마련되어 관객들이 진짜 객석을 마주보고 앉아 있다. 무용수들이 춤출 무대(공간)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 구조여서 처음엔 단순히 객석의 확장으로 인지하기 쉽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과 정반대 형식의 공연이다. 즉 객석과 무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미 작품은 그 자체로 닫힌 구조다. 이 작품은 극장이라는 장소를 소재로 하고, 그곳을 이루고 있는 관객, 출연자 등이 등장인물인 셈이다. 특히 여기서는 춤을 추는 무용수보다 현대무용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이 주역이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단조롭게 움직이는, 즉 전혀 기교적이지도 않고 어찌 보면 일상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만한, 그래서 춤추고 있는 것 같지 않은 몸짓들과 행위를 물끄러미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보며 견디고(!) 있다. 아무런 감동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재미란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 지겨워서 참다못한 관객이 일어나 소리친다. 도대체 그게 뭐냐는 식이다. 그러나 곧바로 극장 관리직원이 등장해 여기서 이러면 안 된다고 조용히 하라고 저지시킨다.
이 작품에서 안무자 오설영은 우리가 관객으로서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 의문을 공론화한다. 가령 무대에 등장한 세 명의 무용수들은 공연이 아니라 몸풀기를 하듯 컨택즉흥 연습 같은 물리적인 움직임만을 보여준다. 이것을 보면 관객들은 ‘지금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그 생각을 대변하듯 무대 위 관객이 대신해 ‘지금 하는 것이 유토피아랑 뭔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다. 순간 우리 현대무용 공연에서 흔히 있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오설영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주제화해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답답한 관객들의 반란이다. 자신들이 직접 무대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거나 춤을 추거나 오렌지를 까먹거나 하는 등의 행위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비웃는다. 그런 공연보다 이런 게 차라리 낫지 않느냐는 식 혹은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듯 반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유토피아 vs 유토피아』는 구체적인 현실을 소재로 해 관객들에게 새롭게 사태를 파악할 것을 일깨워준다. 관객이 생각하는 유토피아와 무용공연이 보여주는 유토피아가 서로 괴리감이 커서 공감이나 이해가 어려운 현실을 꼬집는다. 여기서 ‘유토피아’는 그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오설영은 이 작품을 위해 일반인들을 대거 투입시켰는데, 이들은 현장에서 무작위로 선별된 게 아니라 이미 연습 때부터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비전문가를 공연의 주요 요소로 삼은 이러한 형식은 최근 춤현장에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로써 안무가마다 각자 쟁점화하는 문제가 다르긴 하지만, 그 자체가 춤/공연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인지 아니면 단순히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는 방식인지, 전문적인 춤무대의 일반화를 위한 목적인지 등은 좀 더 분명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