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온 세상의 반을 가르고 있고, 그 알엔 짙은 녹색과 연두색 숲이 깔려있고 일정한 넓이의 뜰 한쪽엔 들꽃이 만발해서 5월의 봄 향기가 그윽한데 뜰 다른 한쪽엔 거의 쓸어져가듯 간신히 서 있는 집 한 채가 있었다.
때는 기원전 612년 경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춘추(春秋)시대가 끝나갈 즈음이다. 오나라 고소(姑蘇, 현재의 소주)의 교외였다. 40대 중반쯤 되는 남자 하나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마치 검무를 추는 듯 몸과 칼이 흔들릴 때마다 나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질 듯 내려오다 다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나무숲 사이에 서서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거한(巨漢) 한 사람이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떨어져가는 나비를 잡아 바라보곤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나비는 날개가 잘려나간 게 아니고 오른쪽 날개 끝 1mm 정도만 잘려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쇼크를 받아 떨어지다가 다시 날아가곤 했던 것이었다. 거한은 키만 큰 게 아니라 무섭게 생긴 용모에다 얼굴 반은 시커먼 수염으로 덮여 있었고, 등에는 장검을 비스듬이 메고 있었다. 그 거한은 거한답게 나지막하지만 우렁찬 소리로 “참으로 기막힌 검술을 보는군요” 하고 내뱉었다.
칼을 휘두르던 40대는 고개를 돌려보고 “창피한 걸 보셨군요”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때 집에서 다섯 살 정도의 눈이 커다란 여자애가 나오면서 “밥이 다 됐다고요” 하는데, 집이 폐가(廢家)이듯이 소녀도 남루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초면입니다. 성함을 알고 싶군요. 저는 초인(楚人)으로 오원(伍員)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40대는 “아이고 천하에 알려진 오자서(伍子胥)님 이시군요. 저는 오의 당읍(堂邑, 지금의 강소성 육합현)에서 태어난 전제(專諸)라는 미숙한 자 올시다”라고 더욱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전제님이시군요. 아무튼 나비를 죽이지 않고 날개 끝만 자르는 묘기는 참으로 감탄이 저절로 나는군요” 하자, “호접검(胡蝶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미숙할 뿐입니다” 한다. “술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만 오늘은 빈손인지라 며칠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라며 “저 집에 사시는 군요” 하고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이번엔 당당히 대답을 했다. 마치 가난한 생활과 자기와는 큰 관계가 없다는 듯했다.

***

오원(伍員), 그는 오자서로 더 알려져 있다. 초나라 명문출신으로 초나라를 일으킨 장왕(莊王)을 모신 오거(伍擧)가 조상이 된다. 장왕(기원전 613년~591년)은 즉위하고 3년간 정무를 돌보질 않고 매일 낮 매일 밤 음악을 연주케 하고 미녀들의 춤과 술판 속에서 지내면서 간(諫)하는 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라고 포고를 내렸었다.
이때에 오거가 어전에 나가 꿇어앉았다. 왕은 한손에 술잔, 한손에 미녀를 안고 게스름한 눈빛으로 오거를 내려다보았다.
“임금님, 수수께끼를 하나 하겠습니다.”
“내용이 뭔가?”
“언덕 위에 새가 있습니다. 3년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어떤 새일까요?”
“3년간 날지 않더라도 한 번 날았다하면 하늘 끝까지 날 것이고, 한 번 울었다하면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알고 있네. 내려가 있게.”
이렇듯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러자 대부(大夫, 장관급)인 소종(蘇從)이 왕 앞으로 나갔다. “간하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걸 알고 있겠지.” 그래도 소종은 굴하질 않고 “임금님을 각성시킬 수 있다면 이 몸은 어떻든 상관 않겠습니다.”
이때부터 왕은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의 놀이는 씻어버리고 정치쇄신에 나서서 신인을 등요하고 오거와 소종에게 국정을 맡겼다. 이때부터 초나라는 초강대국이 된다. 용(庸)을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토벌하고 포로 수만 명을 거닐게 된다. 오 씨는 초나라에서 명문중의 명문이 되었다. 오원의 아버지인 오사(伍奢)는 평왕(平王)을 모시고 태자인 건(建)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그에겐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형이 상(尙)이요, 동생이 원(員, 오자서)이 되는데 둘이 모두 영리하고 무술에 능하게 자랐다.
그 오자서가 초나라 수도를 떠난 것은 5년 전 가을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모시고 있는 평왕에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고, 방랑 끝에 오나라에 머물게 되었다. 그가 떠난 계기가 된 것은 평왕 3년(기원전 527년)에 일어났다. 태자 건이 진나라 공주를 맞아하게 됐는데 비서실장 격인 비무기(費無忌)가 공주를 만나자 깜짝 놀랐다. 가히 하늘나라 선녀로 보일만큼 절세의 미녀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무기는 야심이 생겼다. 그는 공주를 경호해 오다가 일행보다 말을 달려 한 걸음 빨리 귀국해서 평왕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진나라의 공주는 더할 나위 없는 미인입니다. 이 사람을 임금님의 왕비로 삼으시는 게 어떠실지요? 태자는 아직 젊으니 딴 곳에서 미인을 골라 갖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평왕도 그녀를 만나보니 저절로 탐이 나 자기 것으로 만들고 태자는 다른 여인을 맞아 부인으로 삼게 했다. 평왕과 공주 사이엔 진(軫)이란 사내아이가 태어났고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비무기로 보면 자신은 평왕의 절대적인 환심과 신용을 얻었지만 평왕이 죽은 다음이 걱정이 되었다.
태자 건이 즉위해서 왕이 되고 나면 자신을 중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평왕에게 태자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했다. 평왕도 공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진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평왕은 건을 국경의 변두리 성부(城父, 하남성 平頂山 북쪽)의 수비대장으로 쫓아버렸다. 그러나 비무기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다. 그래서 오사를 소환해서 조사를 시켰다. 오사는 비무기의 모함인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반대로 평왕에게 사실무근한 일이라고 강경하고 명백하게 보고했다.
“과히 믿을 수없는 이의 잠꼬대를 믿으시고 피를 나눈 태자를 의심하시다니 너무 하십니다.” 한편 비무기는 물러나질 않고 필사적이 되었다. “망설이시면 임금님이 오히려 함정에 빠지실 수 있습니다. 선수를 치셔야지 자칫하면 임금님의 목숨이 달린 건지 모릅니다.”
이에 평왕은 이성을 잃고 태자를 죽일 명령을 내렸다. 이것을 누군가 태자에게 알려줘서 건은 송나라로 피신을 했다. 비무기는 여기서 다시 공격목표를 바꾸게 된다. “오사에겐 두 아들이 있사온데 둘이 다 무술에 능해서 방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잡아가두고 있는 아버지를 인질로 해서 둘을 소환해서 죽이면 될 것입니다. 늦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평왕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비무기의 말을 또 믿게 된다. 평왕은 옥중의 오사에게 하명을 했다.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너를 용서해줄 것이고 아니면 네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여기서 오사는 호연하게 대답을 했다. “형인 상은 효자에다 생각이 깊은 고로 아버지의 위기상황을 알면 반드시 출두할 것이오. 그러나 자서는 성격이 과격함으로 어떤 오명을 쓰더라도 그것을 참아내서 대의를 지킬 것이니 순순히 나올 애가 아닐 것이오”라 했다. 평왕은 이런저런 사정은 관계없이 두 사람에게 출두하면 아비를 살려주고 아니면 죽일 것이라고 통보를 했다. 큰아들 상은 “출두를 해도 아버님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으나 아버님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 우선 아버님을 구하고 그 원한은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했고, 자서는 “왕의 본심은 우리 둘을 놔두면 자신이 위태로우니 우리 둘을 유인하려는 것이오. 출두하면 아버지와 우리 둘이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것이니 일단 외국으로 피신해서 힘을 기른 다음 아버지의 원한을 갚아야 될 것이오”라고 의견이 갈렸다. 형제는 각기 자기 신념으로 길을 택했다. 상은 “자서야 나는 죽음을 택했다. 너는 피신을 했다가 복수를 하라” 하고 출두를 했고, 자서는 체포하려는 군졸을 따돌리고 우선 송나라로 도망을 쳤던 것이다.
오사와 오상은 예상대로 처형을 당했다. 자서의 평왕과 비무기에 대한 복수심은 그야말로 골수에 사무쳤고, 태자 건이 망명한 곳이 송나라이기에 그도 같은 길을 택했던 것이다.

***

자서가 술과 돼지고기 등 안주를 하인에게 잔뜩 들려서 전제의 오막살이를 찾은 것은 약속한 지 10여 일이 지나서였다. 방 안에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 갖춰져 있었고, 또 한 방엔 장검이 한 자루 있을 뿐이었다.
그가 전제를 찾아가기 전에 그에 대한 대원을 대충 조사해보았다. 전제는 젊을 때부터 침착한 사람으로 큰소릴 안내고 조용했으나 한 번은 산속을 지나다가 굶주린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를 했다. 눈은 불타듯 빛을 냈다. 전제는 호랑이의 눈을 응시했다. 노려보는 것은 아니고 그저 조용히 바라본 것이다. 이쪽에선 너를 적대시 안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한 순간이라도 눈을 돌리면 호랑이는 달려들었을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호랑이와 눈싸움하기를 약 두 시간이 지나자 흐르는 땀이 눈앞을 가리곤 했다. “이젠 더 못 버티겠다”고 각오를 했을 때 고개를 한 번 흔들고 한 번 짖고 나선 호랑이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전제가 고향을 버린 것은 그의 처 정씨가 사건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미모에다 정숙하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지방 호족 중 왕각(王角)이란 자가 있었고, 왕각은 정씨를 사모했다. 전제가 집을 비웠을 때 정씨를 속여서 꼬여내고 겁탈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전제는 홀로 왕각 집에 쳐들어가 왕각을 베어 죽였다. 이때 왕각 집의 하인들이 그를 에워쌌으나 그들은 다치게 하질 않고 왕각만을 살해했었다. 그리고 나서 정씨를 데리고 당읍을 떠나 고소의 깊은 숲속에 살림을 차렸었다. 그런데 정씨는 왕각의 아기를 낳았다. 여자애 였는데 전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