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김성한세컨드네이처의 『이방인』(6.2.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완성도 있는 유명 문학작품을 춤 대본으로 사용한다는 것만큼 안무가에게는 든든한 무기도 없지만, 완성도 높은 춤 대본을 뛰어넘는 시각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만큼 큰 부담감도 없다. 안무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저마다의 관점을 가진 관객들을 평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대안이 없을 경우, 한 측면만 부각시켜 균형이 고르지 않은 작품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김성한이 알베르트 카뮈 (실존주의)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안무한 『이방인』은 그간 무대에 선보였던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구토』, 그리고 뷔히너 (자유/표현주의)의 『보이체크』과 더불어 문학작품의 3부작 중 최신작이다. 이 세 작품에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을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세 작품 중 두 작품만이 실존주의 작품이라던가, 주인공이 죽던가, 한 작품만 작가가 독일인 이라는 점 등 - 둘이 맞으면 하나는 제외되는, 이러한 공식을 발견하는데 3부작 속의 주인공들은 사회 속에 어울리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 아닐까싶다.
주인공이 모든 상황에 간섭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위 작품 속 주인공들은 염세적이거나 사회 부적응자들이며, 주위와 공통되지 않고 무심하며 오히려 주인공들을 에워싼 다각적인 면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사건을 만드는 듯하다. 또한 세 명의 주인공들은 유물론적 인간사회가 주는 건조함과 무료함을 일깨워준다. 이 방관자적 입장의 주인공들의 비극은 속세에 길들여진 다수와 관련을 맺으면서다. 지난 『보이체크』때는 원작에서 보여주는 방관적 서술 형태에 반한 치정 코미디에 가까워서 ‘원작속의 무게감 덜어내기‘로 다가왔다.
『보이체크』와는 다르게 이번 세컨드네이처의 『이방인』은 상당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문학작품의 무대화에 대한 한계와 작품해석에 대한 안무가와 관객과의 차이는 이번에도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대바닥 일부를 들어내 지하공간을 사용하거나 좌측 발코니까지 무대로 쓰는 등의 적극적인 무대 활용은 시선의 다각화를 이루며 춤 작품의 무거움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상호보완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번 공연은 3부작의 완성이라는 점 외에도 여타 무용제 참가작들을 포함, 김성한의 독특한 무대 활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쉽게 느꼈던 김성한의 스토리텔링 진행기법이 돈독해지고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덧붙여, 문학작품을 토대로 한 3부작은 이 무용단의 이름인 ‘세컨드네이처’가 뜻하는 지향점이 특정 작품을 통해 더욱 명확해짐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 국립무용단의 『그대, 논개여!』(6.16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012년 6월,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직을 맡은 윤성주 체제하에서 첫 창작 작품을 선보인 『그대, 논개여』는 2000년 작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가 전신이다. 2013년 다시 돌아온 『그대, 논개여!』의 눈길이 가는 부분은 논개와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에 대한 안무가의 시선이다. 안무를 맡은 윤성주 예술감독은 그간 우리가 인식한 논개와 게야무라 로쿠스케의 사이를 흑백논리에서 탈피, 로쿠스케 역시 심장이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자 남자로 풀어내려한 점은 정서상 모험에 가깝기 때문에 일단 안무가의 도전을 높이 산다.
재해석은 이에 변론할 만한 자료적 물증이 없으면 관객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수반한다. 작품 의도는 공연 후 안무가와의 만남에서가 아니라 공연 중 무대 위의 무용수들로부터, 의상과 소품, 배경미술과 음악으로부터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개정작은 초연작 때와 무엇이 보완되었고 전달력이 보완되었는지 모니터링이 없다면 무의미한 기획이다.
조선이 피해자로서 외세의 희생양으로의 표현은 역사적인 이슈가 공연물로 나올 때마다 변함없는 소재다. ‘여성’으로 표현된 약자 조선과 ‘남성’으로 표현된 강자 일본이라는 자조적인 설정은 재해석의 도전을 무색케 한다. 안무가나 대본가의 상상력과 일부의 지식만을 의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라리 원작인 한용운의 시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처럼 시가 주는 인상에만 충실하다면 모를까, 특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춤 단체가 민감한 역사부분으로 시도할 때는 접근방법에 있어서 개인공연 때와는 다른 차별성이 더욱 강조된다.
논개(論介)는 말을 잘한다하여 왜인들이 붙인 애칭이지, 본명은 아닌 걸로 전해진다. 또한 훈장을 지낸 아버지를 둔 양반가의 딸이지만 부친이 사망 후 집안이 몰락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최경회의 소실이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부군을 도와 뒷수발을 한 위인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기생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휴머니티를 강조하기위해 왜장과의 감정을 이입시킨 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기생의 롤모델처럼 30여명의 여성무용수들이 기생차림으로 논개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은 조선을 ‘여성’으로 비유한 선상에서 볼 때 관객의 입장으로는 이것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예술은 감정에 호소하지만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인 머리가 필요하다. 논개가 순국한 지 420여 년이 되는 2013년 현재, 그것도 보훈의 날 6월을 맞아 이 공연을 올리는 것도, 극중 시인 (한용운)이 그녀의 혼을 불러내는 표현에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콩쿠르 무대처럼 군무들이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 잔상만 남아서는 안된다.
『그대, 논개여!』는 인물들의 캐릭터 접근을 볼 때 『도미부인』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대극장에서 심리물을 상연하려는 자체가 이미 무리수였다. 그리고 작품의 의도와 현실이 어긋나는 순간, 어느 무용수가 무슨 배역을 맡았는지는 무색해진다. 한 일 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은 이 시대를 고려했을 때, 역사적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이 이야기를 왜 꼭 춤으로 풀었어야하는지를 다시 한 번 논리적으로 풀어 봐야할 문제다.

*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언타이틀(Untitled)』(5.31~6.1 강동아트센터 대극장한강)
5월에 비해 갑자기 불어난 6월 공연 중 첫 테이프는 정형일이 이끄는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Ballet Creative)의 『언타이틀』로 시작했다. 정형일은 2012년 「크리틱스 초이스」에서 초연한 『무게로부터의 자유』를 안무가 초대전의 일환으로 강동아트센터에서 재공연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언타이틀』로 다시 한 번 무대에 서는 왕성한 활동을 과시하고 있다. 일련의 이 두 연속 작품들을 보면서 정형일의 최대관심사는 ‘신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춤을 춘다면 당연히 신체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 테지만, 정형일은 신체를 ‘소우주’로 여겨, 작게는 무용수들 각자의 육체적, 심리적 내면상태에서 크게는 극장이라는 공간속에 팀워크를 이루며 시종을 이루어내는 무용수들끼리의 팀워크 과정을 우주의 질서에 비유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형일이 발레를 대하는 생각의 깊이가 신체미를 강조하는 타 발레 안무가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정형일의 무대는 스토리텔링보다는 스타일이 강조된 무대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안무가의 의도 그리고 보는 매 순간순간의 감각과 테크닉이 강조되는 무대이기 때문에 미학적으로 접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건상 꼭 안무가를 충족시킬만한 조건의 무용수들과 작업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가장 돋보여야할 무용수들의 기량과 신체적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단점을 무대의 효과를 통해 일개의 창작 안무가가 마주하는 현실의 불일치 속에서 합일치를 찾아가고 있는 안무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 『언타이틀』은 전반적으로 백색무대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색 천을 사용하는 등 관객들에게 간결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겨 제목이 주는 밋밋한 인상과는 달리 관객들에게 뚜렷한 잔상을 심어주었다. 따라서 조건에 맞는 무용수와 무대에 걸맞은 제목을 찾아내는 일만 충족되면 더할 나위없는 무대가 될 것이다.

* 백현순무용단의 『儒林(유림), 다시 돌아보다』(6.23.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춤극 『儒林(유림, 다시 돌아보다)』는 이미 여러 차례 소개가 되었던 백현순무용단의 대표작이다. 이야기는 신분을 초월한 남녀의 사랑과 반대, 이별 그리고 재회로서 통속적이고도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러하기에 안무가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단순한 이야기 골조에 살을 붙이기는 쉬우나, 뼈대자체가 복잡하면 살을 붙이기도 어려울뿐더러 안무가의 의도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창작춤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플롯 자체에 이미 많은 욕심을 내기에 무대 위에서 수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현순은 줄거리 상에 여백을 여유있게 두어 이야기 중간 중간에 『장고춤』, 『소고춤』과 같은 신무용계와 전통의 춤사위는 물론 합죽선을 이용하여 위패와 박을 연상케 하는 창작춤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 공연에 따라 마지막 부분을 달리하여 슬프거나 행복한 결말의 분위기를 연출하여 구태연한 레퍼토리 재현의 탈피를 꾀하기도 한다(결말이 달라지다보니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기재된 결말부분의 설명과 실제공연의 결말이 사뭇 달라 프로그램을 읽고 감상하면 마지막 7장의 ‘유림의 춤’속 군무와 재회장면에 대한 혼란을 주었다).
이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은 코리아 댄스 컨템포러리(Korea Dance Contemporary)기획의 일환으로 ‘다시 돌아보다’라는 부제가 붙어 『유림』의 총결산의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