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평년 수준 유지한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5월1~5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어수정·이지선·변재범·이준욱·최성욱·김서윤·이동준·마소정·김유정

1992년에 시작된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은 젊은 무용가들에게는 안무자로서 공식 데뷔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강경모, 차진엽, 김성용, 이영일, 전성재, 한창호, 류장현, 김동규, 이인수 등이 젊은 안무가 창작공연 출신이라는 것은 이 행사의 위상을 웅변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올해는 아홉 명의 젊은 안무자가 참여해 자웅을 겨뤘다.
어수정의 『도착(The Arrival)은 무용수들의 고른 기량과 안정된 구성이 돋보였다. 쉬운 소재를 맛깔나게 요리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그러나 움직임의 언어적 의미전달은 다소 아쉽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안무방식이 메시지 전달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지선의 『페이지』는 경쾌하고 발랄하다. 다채로운 구성, 이색적인 움직임이 이채롭다. 자유로운 무대사용도 신인답지 않다. 그에 반해 전개과정에 있어 갈등 국면에서의 긴장감은 다소 느슨했다.
세련된 무대 매너, 성숙된 기량을 보여준 변재범의 『동행』도 눈여겨볼 작품이다. 주제에 대한 치밀한 분석, 메시지 전달에 주안점을 둔 작품으로 사뭇 진지했다. 이준욱의 『신뢰에 관한 연구 - Balance』는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탐문한 작품으로 지극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남녀 2인무의 밀착된 교감은 탁월한 경지에 이르러 있다.
인간의 내면 심리를 추적한 최성욱의 『숨은 마음』은 한국창작춤으로는 수준급이었다. 움직임이 테크니컬하면서도 섬세하다. 한국춤 동작을 활용한 창의적인 움직임이 돋보였다. 김서윤의 『쓰담쓰담』은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애환을 경쾌하고 코믹하게 풀어냈다. 소극장 무대에 어울리는 창의적 구성으로 공간 활용이 인상적이다.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樂) 중 분노에 대한 감정을 집중 탐색한 이동준의 『울화』는 내면 심리에 대한 치밀한 분석으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 작품이 솔로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젊은 안무자의 창작과 안무력을 평가하는 본 행사의 취지에는 다소 적절치 않다고 여겨진다.
한국창작춤꾼 마소정의 등장은 반갑다. 성균관대 출신 마소정은 『가시고백』에서 나이답지 않은 안무 수준을 과시해 눈도장을 찍었다. 다섯 명의 무용수로 꾸며진 이 작품에서 마소정은 현대사회의 소통 부재로 인한 인간성 상실, 소외, 갈등 등을 다뤘다. 치밀하게 계산된 밀도있는 구성과 정교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국악라이브 연주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김유정 『불규칙 변동』은 개성미 넘치는 무용수들의 조합이 시선을 끈다. 무용수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모습의 조형적 형상은 주목을 끌었으나 정작 메시지 전달은 약했다. 올해 젊은 안무자 창작공연의 작품은 예년 수준을 웃돌았다. 젊은 무용가들의 집요한 근성과 치열한 열정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 한국의 무용인재 양성의 산실 재확인 「K-Arts무용단 정기공연」(5월24~25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
- 안성수·김삼진·남정호

K-Arts무용단은 크누아무용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개교 20주년을 맞아 크누아무용단에서 K-Arts무용단으로 개명되었다. 학교 전체의 로고 변경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학 무용단의 공연을 이렇듯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예종 무용원이 대내외적으로 갖는 위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 무용교육은 한예종 무용원의 개원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그만큼 춤사회에서 무용원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크다는 얘기다.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개원은 한국 무용교육의 커다란 변곡점이 되었다. 개원 20여년 만에 무용원은 비약적인 도약을 이뤄냈다. 「K-Arts무용단 정기공연」은 그동안 무용원이 쌓은 내공과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해 주는 의미있는 무대였다.
안성수 안무의 『렛스 플레이(Let’s play)』는 밝고 화사하다. 다양한 소재를 옴니버스 스타일로 조합한 무대다. 비발디 음악의 선율에 맞춘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몸짓이 절묘하게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움직임의 반복은 다분히 감각적이다. 안나 야마고치의 『텅 비다. 텅 비다. 텅빈 … 』은 3인무의 정교한 작품으로 치밀한 안무가 인상적이다. 텅빈 육체, 사유하는 몸짓의 진수를 엿보게 한다.
김삼진의 『간격』은 한국창작춤의 전형적 스타일을 고수한 작품이다. 귀에 익은 국악의 선율로 막을 열고 한국적 몸짓과 때론 모던한 스타일의 표현이 상호 뒤섞여 전개된다. 초반의 견고한 짜임새는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느슨해졌다. 유은선의 음악이 진부해진 탓도 있는듯 하다. 다양한 층위의 구성,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양식화된 패턴은 그리 낯설지 않다.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역시 명작으로서 위풍당당하다. 남정호의 『빨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물가를 배경으로 빨래하는 여인들의 내면을 묘사한 작품으로 한국 ‘현대무용의 한국화’의 대명사가 된 『빨래』와 오랜만에 마주한다. 한 여름밤 잠못 이룬 여인네들이 우물가로 모여들어 빨래를 하면서 그들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수다를 떨다가 빨래를 하고,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유희를 즐긴다. 여인네들은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노동 혹은 유희는 끝이 나고 여인네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빨래』는 한국 여인들의 내밀한, 비밀스런 공간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우물가를 맴도는 여인들은 한복을 변형한 흰색 의상을 착용하고 빨래를 한다. 그들의 행위는 노동을 가장한 일종의 유희다. 노동과 유희가 절묘하게 만나 예술적으로 승화된 경우라고나 할까. 작품에 등장하는 빨래통은 놀이기구이자 소도구이고 빨래감으로 사용된 흰색 천은 의상으로 때론 소도구로 유의미하게 사용된다. 다층적 쓰임새를 활용할 줄 아는 안무자의 선택이 재치있다.
한국 여인들의 삶의 일부인 빨래에서 소재를 따온 이색적인 발상은 초연 당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직선적인 현대춤과 곡선적인 한국춤의 동작어법이 절묘하게 혼융되어 독특한 공연미학을 만들어낸다. 특히 한국적 몸짓의 구사는 놀랍다. 오랜 세월 기(氣) 수련에 몰입한 바 있는 남정호의 내공이 발현된 탓이리라. 이렇듯 『빨래』는 다분히 한국적이다. 때문에 해외에서 더 격찬 받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무용이 서양에서 이식된 장르이지만 ‘한국화’를 통해 세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수작으로 재음미의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 민속춤의 고급화, 韻外之致의 춤미학 「윤미라의 춤」(5월30일~6월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한국춤의 맛과 멋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물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춤 특유의 미적 정서를 제대로 담아내기엔 세월의 나이테가 필요하다. 삶의 희노애락, 고난과 역경, 굴곡을 경험한 이후에야 한국춤의 곰삭은 속 깊은 멋을 낼 수 있다고들 말한다. 50대쯤이 되어야 이런 멋을 제대로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50대 중반에 이른 윤미라는 한국춤의 미학적 질감을 제대로 발현하기 위한 적기가 아닐까 싶다.
중견무용가 윤미라가 『무악지선(舞樂之仙)』이라는 타이틀로 공연무대를 꾸몄다. 적지 않은 세월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묻어난 인상 깊은 무대였다. 우선, 우리 민속춤을 세련된 무대미학으로 정립하여 고급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눈여겨 보게 된다. 사실 윤미라의 전통춤 배움의 내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여타의 무용가들이 하나의 사회적 스펙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인기종목의 문화재춤 이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윤미라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행보를 선택했다. 현실적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라 여겨진다. 대신 그녀는 화성재인청의 후예 이동안에게 입문해 경기류 전통춤을 체득하고 대구의 달성권번 예맥을 잇는 최희선의 문하를 거쳤다.
이동안이 누구던가. 그의 할아버지 이재학은 화성재인청의 도대방(우두머리)을 지낸 전통예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이동안은 혈맥에 따른 가계전승의 맥을 이어온 분이다. 기예가 출중하여‘조선조 마지막 광대’로 불릴 정도였다. 춤이 아닌, 발탈로 인간문화재가 된 것은 그에겐 불운이었다. 무형문화재 목록에서 제외된 그의 춤은 현재 단절의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안 춤의 예맥을 잇고 있는 윤미라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윤미라 춤의 자양분을 구축한 또 한 사람의 스승으로는 바로 최희선을 꼽을 수 있다.『달구벌입춤』(달구벌수건춤이라고도 함)으로 유명한 최희선은 달성권번을 매개로 전승되는 박기홍-박지홍의 예맥을 윤미라에게 물려줬다. 공교롭게도 최희선 역시 문화재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2년전 타계했다. 이렇듯 세속적인 이해타산과 거리가 먼, 사라져가는 우리 춤의 소중한 예맥을 찾아 학습한 윤미라의 고집스러운 춤배움의 내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동안의 『진쇠춤』은 조선시대 왕의 환갑을 맞아 팔도 원님들이 진쇠를 들고 춤추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자는 무관복을 입지만 여자는 철릭을 착용한다. 붉은색 치마에 미색 철릭을 착용한 의상이 화사하면서도 권위와 무게감을 안겨준다. 지긋이 즈려밟아 들어올리는 발짓과 절도 있으면서도 위용이 깃든 팔사위, 흥을 실은 꽹과리 장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대였다.
군무로 꾸며진 『태평무』 역시 이채롭다. 화성재인청에서 전해오는 이동안 『태평무』는 유래부터 남다르다. 고려시대 팔관회에서 추어지던 춤으로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