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춤기행

2007년 안무작 『나는 배고프다』가 프랑스 리옹 람담극장 (Ramdam, Culture LYON.FR)과 넝시(Nancy)페스티벌에 선정되어,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서 리을무용단과 익산시립무용단, 전통문화예술연구원을 오가며 활동을 하고 있었고, 몇 개의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무용하는 이로서,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때마침 프랑스와 인연이 되어 몇 개월간 프랑스에 머물면서 경험했던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나에게 큰 자극점이 되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2007년 프랑스에서의 레지던스와 공연으로 만난 예술가들 중 「몽펠리에 댄스페스티발」에서 만난 안무가 수잔 버지(Susan Buirge)가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이 후 프랑스 예술가로부터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권유를 받았는데 그것이 참으로 달콤한 유혹이 아니었나싶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것들에 대한 열망과 궁금증들은 줄곧 나를 흔들었다. 그러던 2008년 가을, “한 6개월만 보고 듣고 경험해보고 들어올게요”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남기고 캐리어 한 개에 설레임, 그 하나만을 싣고 떠나온 것이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된… 오늘이다.
짧은 인사를 뒤로 그냥 훌쩍 나온 여행길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첫발을 디딘 곳은 프랑스가 아닌 체코였다. 한기가 가득하지만 깊은 영혼의 울림이 새겨진 그 곳에서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어릴 적 춤에 입문하여 38세가 되던 그 해까지 마치 경주마처럼 달려온 인생이었다. 내게 춤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한번은 체코 프라하의 까를 다리 위를 산책하다가 거리악사들의 연주소리에 끌려 눈을 감고 감상을 하던 중 나도 모르게 춤을 췄다. 관광객들이 “브라보!”를 외쳐주며 나와 함께 그리고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춤판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무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율과 환호만 버무려진 속에서 꾸미지 않은 그냥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그 곳에서 다시 나를 찾은 날이었다.
나에겐 두 아들이 있다. 친정에 두고 온 아이들. 문득 내가 엄마란 것을 깨달은 나이가 38세. 얼마나 가슴을 부여잡으며 울어댔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먹먹하다. 다행히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몇 년간 온전히 엄마로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유학교육이 꼭 좋다고는 볼 수 없지만 내 아이들에게 낯설기도 하지만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유럽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1년 반의 체코생활을 접고 2010년 1월에 파리로 이동을 했고, 2011년부터 서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조금씩 문화원과 교육원 행사에 참여하였고, 2013년 주불문화원 무용수업이 개설되면서 강사로 지금까지 강의를 하고 있다.
서서히 활동 폭을 넓혀 가던 중 또 다시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좋은 공연들은 많은데 그 이후 이들이(유럽인들) 문화갈증을 해소 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것을 풀어 내 줄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언제든 어디서든 이들과 호흡할 수 있는 우리문화의 살아있는 공연들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유럽에서 활동중인 예술가들을 찾게 되었다. 이 넓은 유럽에 한국전통예술가들이 이렇게도 없을 줄은 몰랐다. 당시 파리에 거주하면서 활동을 하고 있던 예술가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유럽에서 한국문화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싶다. 함께 해 보자”고.
그렇게 처음 모인 멤버는 한국 전통춤(나), 대금연주자(이인보), 장구연주자(박희경), 피아니스트(이종훈), 성악가(허나영) 5명이었다. 그렇게 2014년 9월 프랑스에서 사단법인 “울림”이라는 공연단체를 창단하게 되었다.
유럽에 판소리를 하는 분은 어디 계신가? 없었다. “그래, 우리 가곡을 우리 악기와 서양악기의 선율로 시작 해 보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료로 최선을 다 해보자.” 이렇게 시작한 울림이었다. 창단공연을 가진 후 주 벨기에문화원의 초청으로 “울림”의 단독공연을 했다.
피아노와 대금, 그리고 장구와 성악가의 가곡에 한국전통춤을 입혀 한국문화를 제대로 알리게 된 계기점이었고 지금은 주 헝가리문화원, 주 로마대사관 등을 통해서 유럽 안에 존재하고 있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영혼의 꽃, 리진』 작업을 하면서 만난 첼로연주자(Marc Girard Garcia), 바이올린연주자(Philippe hardon)는 지금 “울림”단원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으며 얼마 전인 2015년 10월 공연에서는 프랑스인인 이들이 연주한 「정선 아리랑」(이인식 작곡)이 핫이슈가 될 정도였다. 어떻게 프랑스인들이 서양악기로 한국의 아리랑을 이렇게도 한(恨)스럽게 표현을 할 수가 있냐는 감탄과 의문이 절로 생겨나게끔 하는 공연이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의 보급이 아닌가! 이들에게 한국의 정서와 恨을 일깨우고 그것을 함께 공유하고, 또한 그 감성을 그들이 현지인들에게 전달하여 한국의 소리를 공유한다는 것만큼 큰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기까지 했던 것 같다.
프랑스. 파리!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
한국에 자주 방문은 하지 않지만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새로움이 있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을 때는 참으로 불만이 많았다. 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도 없구나를 외치며 ‘도대체 프랑스라는 나라는 무언가?’하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했었다.
예로 프랑스는 그 어떤 작은 일도 모든 것이 예약문화이다. 관공서 같은 경우에는 예약을 잡으려 치면 한 달에서 3개월 후가 기본이다. 기다렸다가 하는 방문길에 혹시나 서류 한 개가 빠질 경우 다시 3개월 뒤이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어떠한 일을 보게 됐을 경우, 일의 경과와 답은 편지로 날라오기 일쑤이다. 지하철 안에는 아직도 신문과 책을 보는 이들이 핸드폰을 보는 이들 보다 많은 나라. 공연장과 전시장이 많은 관객들로 항상 붐비는 나라. 햇빛이 좋은 날에는 수많은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사색을 하는 나라. 옛 것을 소중히 하며 지키고자 하는 나라. 이름이 있든 없든 각 예술가들의 철학과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나라. 그리고 그 예술가들을 지켜주는 나라. 이러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나는 프랑스 각 지역에 한국전통춤 공연과 더불어 한국춤 아틀리에 수업을 하며 한국 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파리 몇 개의 중학교 아틀리에 수업을 하고 있으며 주불문화원에서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전통춤 수업을 한지도 3년째를 맞는다. 파리의 각 시청들과 대학들과도 수업 진행을 하고 있다. 한국 춤을 알고, 직접 추고자 하는 이들의 바람이 커져 아마도 향후 몇 년 뒤에는 인력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너무 즐거운 비명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안무가와 무용수들과 함께 하는 아틀리에 또한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수업은 나를 더욱더 분발하게 하고 발전시킨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다.
파리는, 프랑스는, 유럽은 나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곳이며 나를 살아 숨쉬게 하는 밭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는 곳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파리 사이요무용국립극장(Theatre national de Chaillot) 상임안무자인 조제 몽딸보(Jose Montalvo)와의 미팅이 있었다.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한국의 국립무용단과 사이요국립극장의 공동작업으로 2016년 3월엔 한국에서, 6월엔 파리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것 때문인지 한국전통 춤과 호흡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그의 요청에 한국의 춤들과 나의 호흡춤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었다. 수교 130주년 공연이 끝나면 나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의향도 비추었다. 그리고 얼마 전 너무 값진 선물을 받았다. 광주의 무영스님께서 파리에 당신 일로 오셨다가 공연을 보시고 꼭 만나고 싶다며 연락이 와서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스님께서 나에게 호를 지어주셨던 것이다.
“무안”
無 없을 무, 武 호반 무, 舞 춤출 무, 茂 무성할 무, 巫 무당 무의 5개 무를 뜻한 ‘무’와 나의 성씨인 편안 ‘안’을 이은 무안이라 지어주셨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말로 무안은 ‘moine[mwan]’은 ‘수도자’를 뜻하기도 한다.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변치않고 꾸준하게 수도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에 더욱더 소중한 것 같다. 또한 스님의 인연으로 「춤」지에 실릴 사진이 필요하다는 말에 선뜻 멋진 사진을 촬영해 준 황지영 작가와의 아름다운 인연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렇듯 파리는 나에게 값진 인연의 선물을 주는 곳이다.
이제 나와 나의 공연단체인 프랑스 사단법인 “울림”을 소개해 본다. 앞서 말한 울림은 창단 된지 1년이 되었다. 한국전통문화를 알리고자 모인 것이 프랑스 극장장들의 권유로 작품까지 만들게 되었다.
조선 초대공사로 부임했던 빅토르 콜랑 드 플랑쉬(Victor Collin de Plancy)와 그의 여인, 조선의 무희 리진(Li-Tsin) 을 주제로 한 무용극 『영혼의 꽃, 리진』과 죽음의 경계를 주제로 한 한국장례의식을 「진도씻김굿」으로 풀어낸 『보이지 않는 경계』 이렇게 두 작품의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혼의 꽃, 리진』은 2015년 4월, 쇼 케이스를 통해 프랑스 파리 아시아국립박물관에 선정되어 오디토리움에서 2015년 12월18일 공연으로 현지인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관장에게 완벽하다는 평과 함께 초청되어진 나의 인생을 건 프랑스에서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빅토르는 조선 말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