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 최상철 안무의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10월27~2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최상철의 안무작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은 제목에서 짐작하듯 두 가지 모티프를 바탕으로 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봄의 제전」이 그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최상철의 작품은 「봄의 제전」 음악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동물농장」의 줄거리를 무용극화한 것이다. 그래서 뭔가 알쏭달쏭함, 약간은 석연치 않음이 있다. 이런 경우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진 이야기가 섞임으로써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고전들의 내용에 빠져들지 않게 하는 데 있지 않나 싶다. 안무자는 이미 잘 알려진 고전을 소재로 이용해서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것은 먼저 음악의 사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원곡의 내용이나 구조 같은 특성은 무시되어 있다. 비록 명곡 「봄의 제전」을 작품에 삽입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자주 애용되는 식의 식상한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이 곡이 무용수들의 춤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배경음악에 그칠 뿐인데, 그런 면에서 음악은 작품에 효과적으로 쓰인다. 물론 곡의 내용을 알고 있기에 각 장면의 배경에 약간의 스토리를 부여하는 듯 하지만, 춤은 명확한 스토리가 따로 있기 때문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불협화음으로 인한 긴장감이나 멜로디의 야릇함처럼, 원곡이 주는 인상이 효과음처럼 작동한다.
최상철의 작품이 더 근접한 쪽은 소설 「동물농장」의 내용이다. 아담한 소극장의 무대는 삼면(양 측면과 뒷면)을 따라 수풀이 우거져 있고, 무대 앞쪽 바닥 역시 띠처럼 풀이 깔려 있어 공간은 숲처럼 보이며 자연의 세계를 제시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 나무 사이에 솟은 바위에 핑크빛 돼지가 앉아 그 장소를 내려다보고 있다. 곧바로 시커먼 동물, 검은 탈과 복장으로 온 몸을 감싼 이가 수풀 사이로 몸을 내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까마귀는 이후 매 장면마다 등장해 또렷한 발성의 대사로써 소설의 내용을 압축해 전달하면서 극을 전개시킨다.
돼지가 내려다보고 있는 무대에는 먼저 인간들이 등장한다. 대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춤추는 인간의 세계는 그 다음 펼쳐질 동물들의 세계와 비교를 위해 삽입된 것이다. 외형적으로 봤을 때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단지 두 발로 걷느냐 네 발로 걷느냐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용수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등장할 때 두 팔과 손은 다리와 발이 된다. 돼지, 말, 개, 닭 등 무용수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제작된 (그래서 최대한 시야를 가리지 않는) 탈과 의상을 착용했다. 기술의 발달로 진짜처럼 실감나게 제작된 가면들은 괴기스럽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그런 면을 비켜간다. 원작에서 동물들은 의인화된 것이기도 하고 또 풍자적 성격이 강해서 ‘동물성’ 자체가 희박한데, 분장은 그 수준을 적절히 지킨다. 또한 분장은 작품의 주제가 너무 무거워서 가라앉지 않게 하려는 안무자의 의도에도 부합한다.
최상철의 신작 『동물농장에서의 봄의 제전』은 내용적으로는 소설의 주제성을 공유하고 감각적으로는 음악의 원시성을 연상시키면서도 전체적 표현에서 원작의 사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무대를 가볍게 한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내용들, 가령 지혜로운 돼지가 선동해 농장의 동물들이 혁명에 동의하고 한마음으로 성공하지만, 이어 새로운 주인으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돼지가 생겨서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또 다른 지배가 시작되는… 동물농장은 인간이 지배하던 세계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이야기가 경쾌함으로 버무려 펼쳐진다. 연극성이 분명한 공연에서 무용수 8명의 연기적 춤은 상황을 묘사하고 스토리에 충실하다. 또한 여기에는 「봄의 제전」 음악을 배경으로 한 역동적 움직임의 격렬함 역시 공존하는데, 전반적으로 풍자의 희극성을 전제로 깔고 있어서 ‘노예적 삶이 주는 고통과 역겨움’ 같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프로그램 책자에 따르면) ‘또 다른 희생제’다. 「봄의 제전」에서 생명을(=처녀) 제물로 바친 내용과 연계해서, 지배를 위해 권력은 또 다시 희생물을 찾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들의 싸움 끝에 권력자였던 돼지는 결국 목이 잘린다. 하지만 그게 끝일까, 아니 또 다른 시작일 뿐이라고 까마귀는 역설한다. 작품은 우화로 꾸민 소설의 내용을 전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 작품 시작과 끝부분에 인간들의 등장이 첨가되어 있어 인간의 세계가 이 동물들의 세계와 같지 않느냐는 메시지가 오늘의 상황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혁명에 관한 오웰의 문제의식은 부각되지 않는다. 혁명은 타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불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혁명은 타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항상 다시 새롭게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