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끼의 서울유레카

한국에 일본 맥주가 정식으로 수입이 시작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일본 맥주가 한국산 맥주보다 2배 가까이 비싼데도 한국 맥주 시장의 상당한 부분을 잠식하였다. 그러나 일본 맥주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한국산 맥주의 성역을 무너뜨리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어쨌든 맥주에 대한 개념부터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맥주를 1차 때부터 마시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일단 소주로 시작하며, 맥주가 1차 때 등장하는 경우는 ‘소맥’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맥주는 의례 2차 때 즉, ‘치맥(?)’부터다. 치맥은 병맥주가 아닌 생맥주가 일반적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한국산 생맥주가 부담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일본의 맥주문화는 어떨까? 건배할 때는 맥주가 주류가 된다. 일본 이자카야에 가면 ‘마즈 비-루(우선 맥주)’라는 일본어를 듣곤 한다. 사케를 마시든 일본 소주를 마시든 우선 맥주로 목을 축인 다음에 다른 술로 넘어가는 것이 일본의 음주문화다. 이럴 땐 생맥주가 아닌 병맥주여야 한다. 맥주잔에 술을 서로 따라주는 일로 우정도 애정도 깊어간다.
그렇다, 이번 주제는 맥주다. 일본 사람들이 언제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또 언제부터 대중화되었을까?
일단 우리의 상식으론 맥주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술이라는 사실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4000년부터 이미 사람들이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대 이집트문명 시절에도 즐겨 마셨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포도주가 주류가 되는데 이는 유럽지방에서는 밀보다 포도재배가 적합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중세엔 수도원에서 질이 좋은 맥주가 양조되었으며, 1526년부터 독일에서 물 호프 보리 세 가지 재료로 만든 맥주만 맥주라고 정의했다. 지금도 우리가 마시는 맥주는 이 세 재료로 만든 것이다.
대항해 시대가 되면 물보다 잘 상하지 않는 음료로 맥주가 이용되었으며, 선원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귀중한 수분 공급원이 되기도 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맥주지만 일본에 상륙한 최고의 기록은 1613년에 네덜란드 상인이 반입한 것이며, 1724년에는 8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에게 공물로 바친 기록이 있다. 서민들은 몰라도 에도막부의 고위급 사무라이들은 맥주를 그때부터 마셨다고 추정되는 이유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나가사키에 소재한 유일한 개항장인 데지마(出島)에서는 외국인 거주민들을 위해 맥주가 양조되었었다고도 한다.
쇄국정책을 취한 일본에서 맥주의 존재는 서민이 알 리가 없었지만 1853년에 서양의사인 가와모토 코우민(川本幸民)이 네덜란드의 책을 보고 양조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당시 카와모토가 만든 맥주는 그의 탄생 200년인 2010년에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맥주 맛에 관한 이야기들은 1960년까지 기다려야 된다. 에도막부 사절단으로 방미한 타마무시 사다유우()가 ‘맛이 쓰지만 갈증 해소에는 족하다.’는 기술을 남겼다. 맛이 있다기보다는 쓰다는 것을 나도 처음 맥주를 마셨을 때 느꼈다.
명치 3년 요코하마에 살던 미국 상인 코플란드(Corpland)가 외국인을 상대로 맥주를 제조한 것이 시판용 맥주를 만든 원조다. 그 후 일본 각지에 맥주 양조장이 생기고 한 때는 100개 이상의 맥주회사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산업혁명에 따라 작은 양조장은 문을 닫게 되었고, 오사카의 아사히맥주, 삿포로의 삿포로맥주, 그리고 코플란드 회사를 인수한 기린맥주가 일본의 삼대맥주로 성장했다.
그 후 일본산 맥주는 나날이 발전했는데, 명치시대 말기부터 대정시대에 이어 카페가 증가함에 따라 비어홀도 많이 생겼다. 그 당시 하이칼라(모던하다의 뜻) 족들이 맥주를 찾아 즐겨 마셨다.
1910년대에는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아시아와의 유통이 중단되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일본 맥주회사들은 아시아 시장에 일본산 맥주를 수출하여 시장을 넓히고 지명도를 올렸다.
그렇게 호황을 누비던 일본산 맥주도 제2차 세계대전이 본격화되면서 원재료의 안정적인 공급이 어려워져 1939년을 계기로 급속히 공급이 떨어졌다. 1945년에는 맥주 제조량이 39년 기준의 4분의 1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945년 이후 연합국총사령부(GHQ) 통제 하에 맥주 제조가 제한되었으나, 1949년에 제한이 풀리면서 타카라, 산토리 등 소주와 청주, 위스키를 만들던 대기업들이 맥주 시장에 진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카라맥주 등이 1967년에 철수하면서 일본 맥주 시장은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의 과점 상태(오리온맥주가 있으나 오키나와현에서만 유통되고 있으며, 현재는 아사히 자회사가 되었다.)가 되었으며, 오늘날도 이 판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맥주는 원래 고급주였다. 맥주가 서민이 편하게 마시게 된 계기는 1950년 후반부터의 고도 경제성장기의 영향이 크다. 경제성장으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되었다. 동시에 냉장고가 가정집에 보급되면서 맥주는 비어홀에서 마시는 술부터 집에서 즐겨 마시는 서민적인 술로 바뀌었다. 나의 아버지도 일이 끝난 후에 프로야구 중계를 보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을 이해 못하였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1964년엔 아사히맥주에서 캔맥주를 발매하여 맥주는 야외에서도 즐겨먹는 술이 되었다. 맥주의 장점은 알코올 도수가 낮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맥주는 일본 음주시장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바쿠슈(麥酒)’라고 불리던 맥주의 호칭이 ‘비-루(ビ-ル)’로 바뀌면서 일반적으로 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엔 ‘비야, 혹은 비어(ビヤ, ビア)’로도 사용하게 되었다. 비어는 영어이지만 ‘비-루’의 어원은 무엇일까? 어원은 1724년로 거슬러 간다. 도쿠가와 요시무네 장군에게 바친 맥주를 ‘비이루(ビイル)’로 기록한 것에 기인한다. 이것은 네덜란드어의 ‘Biel’을 발음대로 기재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루’는 고급주였던 관계로 서민의 입에 들어가거나 그 호칭이 불릴 일도 없었다.
아무튼 ‘비야’와 ‘비어’에 관하여 고도 성장기에 들어가 맥주가 대중화되어 가는 일본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맥주가 부족해졌고, 고구마로 만든 발포음료인 ‘라어너 비야(ライナ-ビヤ)’가 판매되었다. 맥주 1병이 125엔인 시대에 65엔으로 내 놓았으며 알코올 도수도 맥주가 3.7도인 것에 비해 7도였다. ‘맥주의 절반 가격에 2배 취할 수 있다’는 광고 문구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기존의 맥주회사들은 이에 대해 반발하여 ‘비-루’라는 호칭을 못 쓰게 소를 제기했다. 그 결과 1959년에 판결에 의해 발포주에 ‘비-루’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 신문 등의 홍보 효과로 인해 ‘비-루’는 고급, ‘비야’는 싸구려 술의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그 후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발포주는 사라지고 맥주의 시대가 왔다.
기린＞아사히＞삿포로＞산토리 순으로 오랫동안 과점상태였던 일본 맥주 시장에 큰 이변이 일어났다. 1987년에 발매된 아사히 슈퍼드라이가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맥주 시장 점유율 1위였던 기린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슈퍼드라이는 해외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아 영국, 중국, 태국, 캐나다에 공장을 만들어 일약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가 되었다. 한국에도 1990년대에 OB 슈퍼드라이가 판매된 적이 있으며, 롯데를 통해 한국시장에 정식 판매된 일본산 맥주도 아사히 슈퍼드라이가 최초였다. 시장 점유율 최후순위 산토리는 프리미엄 몰트를 판매하면서 일본 고급 맥주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러던 중 맥주가 아닌 발포주라 불리는 맥주 아닌 맥주가 등장했다. 일본의 주세법상 맥주는 주재료가 되는 보리를 50% 이상 사용한 술만 맥주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발포주는 보리를 50% 미만으로 양조했고, 판매가격도 맥주보다 쌌다. 이 발포주는 불경기가 오래 지속되던 일본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와 비슷한 맛을 낸다는 이유로 맥주의 시장점유율을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또한 양조과정에서 당(糖), 푸린체를 제거한 제품도 나와 혈당치나 요산치가 높은 사람도 발포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가격경쟁과 맛에 대한 추구는 발포주로 끝나지 않았다. 일본 맥주회사들은 ‘제3의 맥주’라고 불리는 맥주풍 알코올음료를 내놓았다. ‘맥주풍’이라고 쓴 이유는 보리 대신에 대두 등 다른 재료로 양조하여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가격대도 맥주의 절반 정도로 맥주회사들이 많은 TV 광고를 하는 등 주력상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음주나 건강을 생각해 비알코올 맥주도 일본에서 인기이다. 일본 이자카야에 가면 술들 사이에 비알코올 맥주가 메뉴판에 있는 것이 흔한 일이다. 맛도 옛날과 비하면 많이 좋아진 편이다. “술집에 와서 그런 것을 왜 마셔?”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리운전 요금이 한국보다 비싼 일본인 만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본은 프리미엄 몰트 등의 고급 맥주, 슈퍼드라이 등의 일반 맥주, 발포주, 제3의 맥주, 비알코올 맥주가 각 회사의 주력상품이다. 또 아직 큰 시장이 아니지만 수제맥주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맥주는 어떨까?
한국은 일제강점기 때 본격적으로 맥주 양조를 시작했다. 한일합방 후 소화맥주의 대주주 중 한명이었던 박승직 사장이 만든 동양맥주와 1933년 8월에 창립한 조선맥주가 각각 오비맥주와 크라운맥주 브랜드로 시장을 과점하고 있었다. 사장 점유율이 오비가 7:3~8:2로 크라운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라운이 1993년에 시장에 내놓은 하이트 맥주가 폭발적인 히트상품이 되어 오비와의 시장점유율이 역전되었다. 그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