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산책

최근 들어 영화 「백 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1985)」가 세계 도처에서 심심치 않게 방영내지는 재 상영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미래의 세상이 바로 2015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도 언급한 바 있듯 민혜경이 부른 가요 「서기 2000년」처럼 우리는 한 세기를 넘기면 뭔가 달라진 세상에 살 것이라 믿었다. 그것은 2000년대를 꿈꿨던 1900년대의 사람들 뿐만 아니었을 것이고 1800년대의 사람들 역시 1900년대에는 이상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 꿈꿨을 것은 당연했을 일이다. 가요나 영화에서 묘사된 세상보다는 현실의 생활은 다소 뒤쳐져있지만, 그럼에도 1800년 대 보다는 1900년대가, 그리고 1900년대 보다는 2000년대가 인간이 훨씬 더 살기 편한 세상임에는 틀림없다.
「백 투 더 퓨처」는 우리의 미래가 더 편리해지고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어준 대표적인 영화지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의 주연으로 나온 마이클 제이 폭스(Michael J. Fox)는 1991년부터 현재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니까 1985년 개봉 이래 89, 90년 연속으로 이루어진 3부작 개봉 다음해부터 이 병을 발견한 셈인데, 마이클 제이 폭스의 투병은 우리가 상상만으로 그쳤던 화상 통화나 3D 프린팅 내지는 가상체험 기기 등의 최첨단 과학은 발전, 실현화시켜 인간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것 같지만, 의식주 문제 해결은 물론, 기후, 자연재해나 감기와 같은 질병 등의 창세 이래 문제 되고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스리질 못하고 있다는, 이 최첨단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뭔가 거창한 일들은 해오지만 정작 기본적이고도 가까이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 역시 첨단 IT세상에서 사는 인간의 한계인 것 같다. 다시금 이 영화를 보면서 오늘날의 나를 알 수 없었던 당시의 내가 생각난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가 개봉된 당시에는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이었으며 한국에 개봉됐을 1987년에는 처음으로 간 미국의 한 가정에서 9월부터 다닐 학교 준비하며 이 영화를 TV로 시청하고 있었다.

11월에 있을 한국춤평론가회의 정기 세미나는 조동화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께서 한국 춤에 끼친 업적을 기리는 주제로 꾸며질 예정이어서 한동안 옛 신문들을 검색하고 있었다. 신문이란, 새 소식을 전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사를 보노라면 당시의 생활상과 가치관, 그리고 언어를 알 수 있는 하나의 ‘타임머신’이 되기도 한다. 조동화 선생님에 대한 신문 자료를 검색하면서 그분이 단지 춤 평론만 기고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발견한다. 말로만 듣던 꽃과 식물에 관한 글, 그리고 방송관련 인터뷰까지 다양한 경력과 해박한 지식으로 간간히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주제로 지면을 장식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그 중 동아일보 1960년 2월 14일자에 기고하셨던 수필이 문뜩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은 1922년 생 이시니까 대외적으로 파란만장했던 1950년대를 마감하고 개인적으로도 ‘불혹’이라는 마흔을 한 해 앞두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미지의 불안감이 중첩된 그분의 심정을 알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춤 평론 1세대’라는 수식어에 익숙한 권위적인 인물이 아닌, 인간 조동화를 느낄 수 있는 한 대목이 나에게는 더욱 친근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이 고인이 되신 오늘에야 이 글을 읽게 되면서, 그리고 왜 선생님께서 나에게 오랫동안 「이동우의 춤산책」을 쓰도록 권하셨는지 먼 훗날에 가서야 그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면서 내 나이 서른아홉, 나는 불혹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선생님의 글을 앞에 두고 만감이 교차한다. 당시 선생님은 자신의 미래상을 어떻게 그리며 사셨을지, 그 바람을 이루셨는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지내되, 순간순간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소개하려 한다.

사람의 일생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은 불과 몇밖에 배당받지 못한 한정된 수명의 떡을 하나씩 먹어버리는 것 같아서 초조해진다”는 K 씨의 이야기다. 정말 그런 것 일지도 모른다. 이게 떡과 같은 것이라면 아껴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개만 먹어도 오래도록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본다. 너무도 세월이 빠른 것 같고, 일 같은 일을 해보지 못하고 늙어질 것 만 같은 마음이 새해마다 더 강하게 의식되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때로는 일 많이 한 나이 많은 분에 대하면 세월이 그리 무의미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사람 일평균 수명 칠십이면 어지간히 오래 사는 셈이다. 이 동안이면 하고 싶은 일은 어느 정도의 불만이 있다고 하여도 해질 수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만일 이만한 불만마저 죽어진다면 그때까지 산다는 멋마저 없을 것이 아닐까.
죽을 때를 진정 고대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다고는 듣지만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으면 만족할 것인가. 산처럼 바다처럼 그렇게 오래 산다고 이 ‘산다’는 문제에 대하여 인간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 아닐까. 하다못해 눈(雪)을 보면 죽기 전에 대관령 스키장으로 가보고 싶겠고 내일부터 다음 주 영화 프로가 바뀌니까 그것을 봐야겠고 시골서 십 년 만에 친구가 올라온다니 꼭 만나야겠고 내일쯤 등산도 할 만하니 그것도 해봐야겠고─ - 조동화, 「동아일보」 1960년 2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