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 김운미쿰무용단의 『축제 70』(9월10~11일 국립중앙박물관 극장용)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기관의 지원으로 성대하게 올린 쿰무용단의 『광복70년 축제 70(부제 20150815)』은, 춤 공연과 춤 전시가 한데 이루어진 이벤트성 강한 문화행사였다. 쿰무용단 예술 감독인 김운미 교수의 이매방류 『승무』로 서막을 열었고, 쿰무용단 단원, 한양대학교 한국무용과 재학생, 그리고 특별출연진 등 총출연한 본무대인 『축제 70』이 공연됐는데 크게 2막으로 구성한, 그야말로 축제성격의 공연이었다 할 수 있겠다.
지난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렸던 묵간 공연, 『시간의 역사』 공연의 내용에 대한 우려스러움이 있어서 한편으로 염려스러웠지만 이번 공연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보여주었다. “댄스 다큐 시리즈”라는 수식이 있는 만큼, 총 10장에 이르는 『축제 70』에서는 공연에 앞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는 나름의 제의를 시작으로 과거,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를 과거의 사건별(임진왜란, 한일합방, 만세운동, 광복, 남북분단, 산업화 등)로 거슬러 올라갔다.
공연장 로비에서는 『축제 70』의 바탕이 된 『성웅 이순신』, 『열사 유관순』 등의 작품을 안무한 모친 이미라 선생에 관한 「이미라 선생의 춤과 삶 美山(미산)」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함께 열려 당시 사용했던 소품과 의상 그리고 공연 사진 등이 전시되어 한국춤극에 있어서 스토리텔링 어법의 변화를 공연 전후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부에 『승무』를 구성하였음에도 2부에서 또다시 제의(祭儀) 장면에 지나치게 비중을 할애하여 “축제”라는 어감의 경쾌함을 무색하게 한 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초점이 지나치게 과거에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창작춤의 표현과 연출에 있어서 관념적인 것과 구태의연함 사이에서 고심해야할 문제는 꼭 예술성을 강조하는 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 퍼포먼스그룹PG153 「체인지 오브 시즌IV(Change of Season IV)」(9월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퍼포먼스 그룹, PG153이 주축이 된 연례 자선공연 행사인 「체인지 오브 시즌(Change of Season)」이 올 해도 어김없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랐다. 전체 공연에서 둘째, 셋째 날은 첫째 날과 차별을 두어 첫 날에는 학생이나 일반 성인들로 구성한 커뮤니티 댄스 공연을, 나머지 날에는 PG153의 공연으로 구성, 이벤트성 공연의 차원에서 벗어나 자선공연을 보러온 일반인들에게 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는 리더 황미숙의 의도가 보이는 무대이기도 하다.
올 해 공연은 이틀의 공연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전작의 리바이벌이 주를 이루었는데, 첫째 날, 커뮤니티 댄스로 이루어진 『에네르게이아』는 공기, 물, 불, 흙 이 네 개의 원소들을 춤으로 표현했는데, 2014년 말 서울역RTO에서 초연을 한 작품이었고, 그때보다는 변형이 많이 되었다. 둘째 날 PG153의 『운수좋은 날』은 현진건의 동명작품을 기초로 한 기존의 PG153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백색의 이미지와 상징적인 이미지를 그림자극으로 표현했다. 이어서 선보인 작품 『패닉 디스오더(Panic Disorder)』는 붉은색과 같은 강렬한 색감이 주를 이룬 영상을 통해 감정의 극함을 표현했는데, 동작은 그에 비해 임팩트가 약하며 반복적인 요소가 많았다. 이러한 색감과 동작 사이에서 뮤지컬 작곡가 최종윤이 음악을 담당하여 인간 감정의 미묘함과 불완전함을 청각적으로 표현했다.
매년 이렇게 일관된 공연 구성은 PG153가 ‘커뮤니티 댄스’와 ‘탄츠테아터’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지향하고 있음을 입증하기도 하는데, 이 단체가 ‘대중성’과 ‘예술성’ 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무용단’이 아닌, ‘퍼포먼스 그룹’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하기도하다. 하지만, 이 「체인지 오브 시즌」 공연 시리즈를 몇 해 동안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해가 가면서 PG153이 예술성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첫째, 단체명 이라든지 단원들의 배경이 ‘무용단’으로 한정짓기에는 춤 전공자와 비전공자들이 어울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춤으로만 승부하려는 경향이 보이며 둘째, 갈라 형식이 어울릴법한 자선공연에서 조차 너무 심각하고 난해한 작품으로 구성,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셋째, 필요이상의 반복적인 요소와 같은 군더더기가 많아 안무가의 욕심이 앞섰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쉬이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PG153의 공연평을 통해 몇 차례 ‘퍼포먼스 그룹’이라는 이름에 대한 정체성을 가질 것을 강조해왔다. 이는 퍼포먼스 그룹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무대의 다양성 때문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은 상반되지만 따로 또 같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를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이다. PG153가 존재하는 이유와 역할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곽영은의 『고개 숙인 사람들』(9월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고개숙인”이라는 어감은 한때 패배감과 무력함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IT 시대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곽영은 안무 연출의 『고개숙인 사람들』은 시대의 암울함도 무력한 남성도 아닌 궁극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고개를 숙여버린 이 시대의 사람들 이야기다. 네 명의 무용수가 꾸미는 네 장면으로 나눌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첫 번째 장면으로는 태초의 인간의 소통방법을 보여준다. 무채색의 기본적인 의상으로 등장한 남녀(이강석, 황지영)가 느린 현악 연주에 맞춰 원숭이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어 들어와 이인무를 춘다. 이 원시적인 움직임을 통해 지금보다는 빠르지 않았던 세상이 있었음을, 그러한 시대에도 인간이란 소통을 하는 생명체(Homo Disputans)임을 나타내고 있다. 첫 장면이 마무리되며 소통의 도구로 쓰였던 흰색 비둘기의 이미지는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장면이 전환되어 한 남자(손주용)가 마임성격이 강한 독무를 추는 동안 배경의 점으로 이루어진 영상은 점차 선이 되고 전화모양의 형체를 이룬다. 한 남자에서 이윽고 두 남자의 듀엣이 이루어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곧 스마트폰의 시대로 넘어간다. 시리(Siri)의 음성이 반주효과로 사용되며, 림스키 코르사프의 「왕벌의 비행」에 맞춰 정신없이 빨라진 세상을 표현하는 동시에 시리로 상징되는 검은색의 여자(홍정아)를 가운데 두고 사람들은 그녀의 손바닥에 의해 놀아나기도, 사람들 역시 그녀를 가지고 유희를 즐기는 듯하다.
네 번째 마지막 장면에서는 네 명의 남녀가 모두 나와 획일적인 춤을 추는 동안 배경은 이들의 장면을 비추고 있다. 마치 셀카를 찍듯 이들은 카메라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의식하다가 마침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들을 비추는 카메라를 발견하여 관객을 비추며 암전이 된다. 작품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어둠속에서 네 명의 남녀는 첫 장면에서의 유인원들처럼 무반주에 어기적거리며 끝을 맺는다.
인간 통신의 발달과정, 그리고 문명의 이기의 수혜자도 피해자도 모두 인간임을 20여 분의 짧은 시간 안에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는데, 그 진행방식은 아주 간단명료했다. 마임을 많이 이용했음에도 빤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난해하지도 않은 안무와 연출이 돋보였다. 이번 짧은 소품을 통해 곽영은은 안무는 물론, 음악 및 영상을 통한 상징적 표현을 군더더기 없이 세련되게 표현했으며, 지방을 대표하는 신진무용가로서 손색이 없음을 확실히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