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기생충을 연구하던 학자들이었다. 윌리엄 캠벨 미국 매디슨 드루 대학 교수와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 대학 교수가 다양한 기생충 감염증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아버멕틴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 받았고,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는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노벨상 위원회는 이들이 수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하고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여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기생충약을 개발한 것은 아버멕틴이 1978년, 아르테미시닌이 1971년의 일로 이미 30년도 훌쩍 넘은 일이다. 물론 노벨상이 과학적 발견이나 업적이 인정되고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이 갑자기 노벨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70년대는 희망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1950년대를 지나며 효과적이며 강력한 항생제, 항말라리아제, 구충제, 살충제들이 개발되었지만, 이들을 지나치게 남용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생충들이 저항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모기는 DDT에도 잘 죽지 않았고, 말라리아는 클로로퀸으로도 잘 치료되지 않았으며, 박테리아 감염에 항생제를 써도 전처럼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의사와 과학자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항생제와 화학요법의 황금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했지만, 기생충과 감염성 질환의 진화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위기감 속에서 또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사토시 박사는 일본의 한 골프장에 살고 있던 균류가 분비하는 아버멕틴을 발견했고, 이를 미국에 보냈다. 이를 기반으로 캠벨 박사가 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이버멕틴을 개발해 냈다. 이 약품은 지금도 서아프리카에서 실명을 유발하는 강변사상충,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림프사상충, 또한 다양한 가축 기생충 치료에 쓰이고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은 1960년대 후반 중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 발견되었다. 고대부터 해열제로 사용되던 개똥쑥에서 추출한 물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약품 역시 현재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말라리아 약으로 쓰이고 있다. 강변사상충 퇴치 사업에 배포된 아버멕틴은 25억 정에 달했고, 7억 명 이상이 치료를 받았고, 림프사상충 퇴치에 약 3억 명이 치료 받을 예정이다. 아르테미시닌 역시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말라리아 치료용 일차 약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제야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는 아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아르테미시닌에 저항을 보이는 말라리아가 나타나고 있고, 아버멕틴도 가축에서는 저항성을 보이는 기생충들이 발견되고 있다. 훌륭한 약품을 가지고 있다고 안심하고, 하나의 약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기생충과 감염성 질환의 폭풍을 막을 수 없음을 경고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벨상을 시작으로 기존에 소외받았던 기생충 질환들과, 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보자는 것이 바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진짜 선정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