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이은주의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문화재 지정 기념공연(10월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한 나라의 예술세계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인간문화재가 된다는 것이 예술가로서 얼마나 값지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은주의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6호 살풀이춤 지정 기념공연을 보았다.
필자와 이은주 교수와의 만남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한영숙 선생께 국립국악원에서 춤을 추시도록 하고 그 춤을 처음으로 가까이서 지켜본 후 그의 제자가 독일로부터 돌아왔다고 인사를 받는 자리였다. 전통춤을 추는 사람이 독일 유학은 뭐고 그 전공이 철학이었다는 것을 듣고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가 독일에 갔었는지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고 시원스런 답도 듣지 못했지만 무언가 한국에서 무용하는 그 터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힘들었고 실망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그의 춤의 세계가 궁금했다. 나는 그에게 국립국악원 무대를 내어주고 춤을 추도록 했다. 그 때 그의 춤에서 한영숙 선생의 모습을 보고 세상과 타협하려하지 않는 그만의 순수함과 젊지만 인생의 무게가 있음을 발견하고 내가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필자가 현직을 떠나고 세상 인연을 끊고 살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언제부터인가 아주 가끔 이 교수는 그의 발표회 소식을 보내와 필자는 그의 무용세계를 다시 보게 되었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필자는 무엇이 그와의 만남을 이어줄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그의 발표회 무대에서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던 성기숙 춤평론가의 말에서 답을 찾았고 그에 대한 판단이 나의 것만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 교수가 합리적인 사고,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균형 잡힌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나와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예술가들 중에는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 지지를 얻어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교수는 그런 모습이 없다. 그런 면에서 서양 예술가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본다. 그와 만날 때마다 그날 공연에 대해, 무용계에 대해 여러 가지를 토론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와의 만남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러면서도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다.
이은주 교수는 남들에게 자신의 예술을 알아주기를 바라고 애써 만들려하지 않는다. 본인이 가지고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그는 한영숙 선생이 작고한지 26년이 지나서야 겨우, 그것도 본인의 사명으로 알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혼을 다해 자기 스승의 춤을 문화재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대학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그 후, 독일에서 돌아온 후 한영숙 선생이 서거하기 까지 약 13년간 한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하고 옆에서 그분을 도왔던, 아마 그분에게서 가장 오래 그분의 춤을 배우고 가르친 사람일 것으로 믿는다.
그는 한 선생님의 살풀이춤이 문화재로서 전승되어져야 한다고 처음부터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순수함이 없이는 자기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독일 유학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러한 고결함이 이은주의 본 모습이다. 값싸고 무식하고 어리석고 철없는 어린 애들 같은 사람들의 숱한 반대와 질시를 물리치고 그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결국 이루어 냈다. 아주 늦었지만 이런 노력을 뿌리치고 무시하지 않고 그래도 그 춤을 문화재로 인정한 사람들이 있음을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한다. 현대의 한국 전통무용을 논하면서 한성준 선생과 한영숙 선생을 제외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서 여태껏 그 춤을 애써 무시해왔다는 것은 우리 전통무용계의 겉다름과 속보임의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예술가가 사회에 아부하지 않으면서 예술 활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본다. 전 세계가 지켜본 그 자랑스러운 88올림픽 폐막식에서 독무된 영광스런 그 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움이라고 감히 보여주고 싶었던 그 춤이 여태껏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그 올림픽을 지켜 본 우리들은 무어라고 한 선생에게 설명할 것인가.
이은주 살풀이는 그 춤의 섬세함과 넉넉함에 있다,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도 춤이어야 하는 섬세함의 극치.
무대에 나선 무자에게 조명이 비쳐지는 순간부터… 춤을 추고자 서 있는 무자의 옷매무시가… 너무도 깔끔한 쪽머리에서 시작해서 목을 거쳐 등으로 내려와 휘어지는 희고 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태가 설득되어져야 하는 섬세함의 극치. 인생의 깊이를 보는 눈의 초점과 표정,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 이런 미세한 것 하나하나가 투명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의 연속을 이끌어낸다.
살풀이장단이면서도 인생의 깊은 내면에서 고뇌가 무게와 더불어 부드럽게 나오는, 그러면서도 아주 슬픈 한이 아닌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런 섬세함이다. 이것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면에서 나오는 그런 자연스런 표현이다. 이것은 자기 예술에 대한 최대의 존경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춤은 자진모리로 변하면서 관객은 스스로 춤에 너무 깊이 빠졌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자만도, 값싼 기쁨과 안도도 아닌 그냥 이 세상 삶에서 얻어진 넉넉함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그러다가 다시 살풀이장단으로 흐트러지려 했던 감정을 추스르고 점잖게 춤을 마친다. 이런 점이 한을 강조하고 그것을 해결하고 기쁨을 흐드러지게 표현하는 사람들과 다르다. 살풀이춤도 여러 유형이 있지만 눈이 시린 것 같은 아름다움을 넉넉함에 실어 간결하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의 춤이다. 이런 점이 그의 춤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고 넉넉하게 되는 이유이다. 한성준 선생으로 시작된 춤이 『승무』, 『태평무』에 이어 『살풀이춤』까지 문화재가 되었음을 보게 되다니 크게 기쁜 일이다. 그의 앞날에 큰 보람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