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올해를 대표할만한 신작을 찾기 어려워
심정민 _ 2015년 무용계도 다사다난했습니다. 봄에 춤계가 기지개를 펴는가 했는데 메르스 사태로 다시 심하게 위축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사태가 생기면 공연예술계 특히 춤계가 직격탄을 맞고 그 회복은 더딘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올해의 경우, 주목할 만한 신작을 찾기 어렵고 특히 젊은 신작이 가장 침체된 현상이 두드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무용 동향에 적응해가려는 국립단체들의 현황이라든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지원사업인 창작산실이나 상주단체, 정치논리에 휘둘리는 예술관련 기관의 독립성 유지의 필요성 등이 올해에 부각된 사항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춤평론가 김경애, 박민경과 이동우 씨를 모시고 2015년 춤계 결산 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신작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재공연작 중에는 몇 개 찾을 수 있는데, 국립무용단이 테로 사리넨에게 안무를 맡긴 『회오리』 김남진의 『봄의 제전』 김성한의 『인간단테』 이경옥의 『심청』 장유경의 『푸너리 1.5』 조택원 원작에 국수호가 재구성한 『무용조곡-춘향전』 차진엽의 『페이크 다이아몬드』(가나다 순)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작산실이나 여러 기획공연들이 많았는데 그에 비해 주목할 만한 신작은 왜 이렇게 없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이동우 _ 공연철인 봄철에 유독 불상사들이 일어났는데요, 작년의 세월호 사건에 이어서 올해는 메르스 사태 때문에 봄에 공연들이 다 취소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래야 하면 안 되겠지만,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 보면, 그나마 선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어쨌든 모든 면에서 선생님 말씀대로 맥 빠진 한해가 된 것 같습니다.
김경애 _ 제가 춤계에 와서 일한 지 30년이 되었어요. 그 30년 동안 금년이 가장 무기력하게 느껴졌어요. 춤계의 성장세가 둔화된 한해였다고 봐요. 외부 여건도 메르스 사태 등 그러했지만 춤계 내부가 더 이상 뛰어넘을 무엇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줄기차게 30년을 달려왔다고 봐야겠지요. 이런 확장세가 벽에 부딪혔는데 그것을 극복하자면 통상적인 흐름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에요. 뭔가 획기적인 탈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크게 관통하는 ‘철학’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해요. 어떤 칼럼에서 “우리나라가 소득 4만불 시대가 되자면 ‘덕(德)’이 있어야 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이지요. 무용계에 ‘덕’이라는 것이 뭘까도 생각해봤어요. 아마 삼삼오오 갈라진 속에서 나름 춤예술을 추구하고 있는데 벽을 깰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합심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예를 들어 국립발레학교라든지, 직업무용단 확대, 춤전용극장이라든지 큰 그림이 그려지지 않고는 이 선을 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우리 춤기술이 어느 정도는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었는데 그 이상을 넘어서서 관심작으로 떠오르지 못하는 것은 지속적인 직업화 지원체계 등 인프라가 부실하기 때문이거든요. 금년은 겉으로는 메르스 등이 원인이 된 것 같지만 무기력했던 것은 이런 한계가 가져다준 것이 아닌지요? 소강상태가 길어지면서 지루하고 작품성이 답보상태가 된 것이지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춤예술가가 국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죠.
올해 작품들도 그런 현상을 심하게 보인 해인 것 같아요. 창작정신 구현보다는 연명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나 할까, 작가정신보다 무용가로서의 생존, 연명을 위해서 공연을 한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어요.
박민경 _ 춤사회가 발전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무용가 개개인의 헌신과 희생이 상당히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노력과 의지, 필요성 등이 춤사회를 형성하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구축해 왔어요. 그런 것이 주로 예술적 작업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왔는데, 그 희생이 이제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어요.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춤사회도 성장기가 아니라 ‘어느 시점의 안정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보다 구축된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게 관건인 겁니다. 하지만 그 동력이 없어요. 특히 정부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여전히 국민들 개인의 몫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의존하는 의식이 있는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춤사회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저는 창작의 활기가 사라진 데 대해 예술가의 역량이나 작품의 질 자체보다 지원기관의 문제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춤현장을 돌아가게 하는 실질적인 힘인 지원사업이 여러 가지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지원사업 구조 자체가 허약해서 충분한 자양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형식적이고 내용과 체계가 없는, 즉 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춤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예술적인 측면을 말할 수 있는데요. 문화 전반으로 예술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만큼 춤작품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수준 이하로 보이기 때문에 특히 완성도에 대해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또 현재 예술의 방향이 예술가 개인들의 작품보다 교육 쪽에 더 치중하고 있는 추세이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예술작품의 영역이 위축된 느낌을 줍니다. 예술은 누구나 즐겨야 한다는 보편성이 강조되면서 일반인들의 활동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작업이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현상들이 작품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더불어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예술성이 변질된 측면이 있는데, 그 또한 작품의 질적 수준을 하락시킨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것처럼, 지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작품의 질을 떠나 어떤 형태로든 공연을 하면서 춤현장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동우 _ 사회적으로나 아니면 내부적으로나 총체적 난국이 현재 진행형인 것이 더 큰 문제이지요. 내년도 그리 낙관적이라 보긴 힘들죠.
심정민 _ 손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박민경 _ 지금 춤지원을 주관하고 있는 기관들에서 고민을 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가장 핵심은 문화부의 정책기조인데, 근래 문화예술위원회나 한국공연예술센터의 문제를 봤을 때 암담함이 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상황을 더 악화시켰어요. 앞으로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책이 같이 가지 않은 이상 달라질 가능성은 낮겠죠.
이동우 _ 정책이 계속 바뀌잖아요. 정책에 일관성 없이 시행착오를 개선할 생각보다는 덮거나 없애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한 거죠.
심정민 _ 지금 예술지원기관 얘기가 나왔는데, 근 몇 년 사이에 예술지원기관이 단순 창작지원에서 벗어나 여러 형태의 기획력을 발휘하는 지원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창작산실이나 상주단체 등은 파격적인 지원액이라든가 중장기적인 사업내용으로 무용계의 대대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지나치게 다양해지는 지원프로그램으로 인한 문제점도 도출되고 있는데요, 지원프로그램의 가짓수나 공모기간이 다양해지다보니 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해 지원 자체를 못하는 무용가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정보에 재빠른 사람과 예술성에 집중하는 사람은 다른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예술성에 집중하는 무용가들은 본인의 창작활동에만 몰입하다 보니 지원제도에 대한 정보에 취약해서 어떤 지원프로그램들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정보에 밝은 무용가들은 발 빠르게 여러 지원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중복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술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 오랜 동안의 노하우로 지원프로그램의 흐름도 잘 읽는 무용가들도 있습니다만,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성향이 갈리는 경우가 더 많은 듯 보입니다. 그러니까 다각적인 지원제도 이를테면 기획력을 발휘해서 창의적인 지원제도를 만들어가는 추세가, 오히려 예술성을 탄탄히 해가는 데 집중하는 무용가들이 지원하기에는 너무 복잡할 정도로 다양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역량있는 무용가들이 좀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프로그램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연간 브로셔를 제공한다든가 공모기간을 어느 정도 한정한다든가 하면 좋겠습니다. 심의를 들어가면 그 지원프로그램에 적합할만한 무용가들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사람들이 전혀 지원을 안 한 상태고 여기저기 중복 지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띠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원래 지원제도가 역량있는 무용가들의 창작활동을 고취시키는데 주 목적이 있다면 그러한 무용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기관의 기획력을 발휘하는데 몰두하는 지원제도가 아닌 무용가에게 내실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프로그램으로요.
김경애 _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연극과의 갈등으로 1년 내내 소음이 있었고 급기야는 공연예술센터가 없어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하부기관이 되는 등 환경변화가 있었지요. 이 일은 대학로의 대표 극장이 없어진 것은 아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공신력 큰 기관이 운영하니까 믿을만한 지점도 있지만 무용계로서 서운한 것은 「춤중심극장」이라는 명목이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격변 속에서도 아르코가 춤중심극장으로 유지되길 바랍니다. 올해 홍은동에 홍은창작센터가 서울무용센터로 자리를 잡은 것은 좋은 일이긴 하나 지역이 공연 중심지역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예술 활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