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지난 해의 한국연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불황이었다. 세월호 사건에 이어 올해는 메르스 확산이라는 악재가 덮쳤다.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뮤지컬도 지난 해는 별 것이 없었다. 조정래 소설의 뮤지컬 「아리랑」을 제치고 보이는 것은 라이선스 뮤지컬과 그것의 리바이벌 공연뿐이었다. 라이선스 뮤지컬을 오래 하다 보면 안목과 기술이 두터워지고 나중에는 창작 뮤지컬이 대세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수많은 뮤지컬 제작자들의 말은 모두 허언이었다는 말인가. 대학로의 연극은 뮤지컬보다 더욱 가혹하게 불황의 중심에 내박쳐졌다. 예년과는 달리 눈에 띄게 민간극단의 활동이 저조했다. 대학로 연극의 존재이유로 여겨왔던 연희단 거리패, 작은 신화, 극단 청우, 극단 여행자 등의 극단도 활력을 잃거나 활동조정기에 들어간 듯하다. 민간극단들이 활력을 잃은 이유는 불황에 주로 기인한 것이지만 공공극장과 극단의 차출에 연출가와 배우들이 흔쾌히 부응했기 때문이다. 전속작가, 연출가, 배우를 포용하지 못하는 공공극장으로는 넉넉한 국가예산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지 모른다.
겉으로는 공공극장과 극단의 연극은 불황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공공극장과 극단의 예산은 다른 해의 예산에 비해 증액된 것도 아니지만 민간극단의 불황이 극도에 달해서인지 유별나게 무사태평을 구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체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민간극단의 모자라는 힘을 빌려야 생존하는 영구불임의 공공극장과 극단이 한국연극의 밝음이 되는지 어두움이 되는지는 심각하게 연구해야 할 문제이다. 지난 해에는 지속적 불황의 여파로 연극계는 재기불능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진단의 근거로는 연극배우 김운하, 판영진의 가난에 몰린 죽음과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극장의 폐관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불행한 사태에는 관심의 증대와 미봉적 임시응변만 있지 근본적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연극인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연극배우 김운하, 판영진의 죽음을 놓고 어떤 이는 예술인 복지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법과 체제는 대개 최악의 사태를 막는 최종적 장치일 뿐이다. 궁극적 해결책으로는 연극활동의 일터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날 민간극단의 제작비 구성을 보면 배우 출연료 등 인건비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국민 모두가 굶기를 밥먹듯이 하던 시기의 관행을 배우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선 공공극장과 극단이 전속단원제를 채택하여 예술적 성과 못지않게 복지적 성과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배고파야 연극이 된다는 거짓말은 시궁창에나 던져야 한다.
대학로를 중심으로 한 소극장의 폐관도 큰 문제이다. 대학로의 극장가 형성은 세계적 자랑거리이니 만큼 민간은 물론, 정부의 중요한 문화정책이 되어야 한다. 정상적 예술의 생산근거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극장이라면 자립을 하도록 충분히 지원하는 것이 옳다. 감시와 통제가 전제된 지원책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예술적, 재정적 자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