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살롱

2015년은 기생충에게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2월에는 대게 다리살 속에서 발견된 가느다란 검은색 물체를 기생충으로 오인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결국은 기생충이 아니라 대게의 혈액이 검게 변색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4월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망상어 등의 바닷물고기에서 다량의 기생충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하지만 여기서 나온 기생충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없는 기생충으로 밝혀졌다. 9월에는 꽃게 아가미에 붙어 있는 기생충이 발견되어 뉴스를 장식 했지만, 이 역시 사람은 감염시킬 수 없는 종이었다. 이처럼 먹거리와 관련된 뉴스를 통해 실제로는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다양한 기생충들이 혐오스럽다, 위험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기생충에게도 축하할만한 소식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소식은 바로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기생충 관련 분야가 수상한 뉴스였다. 중국의 투유유 박사가 개똥쑥에서 추출한 물질을 기반으로 개발한 아르테미시닌은 현재 가장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연간 2억 명 이상이 감염되고 40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말라리아에 대항하여 가장 효과적인 약물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이 수여되었다. 다른 수상자들은 미국의 윌리엄 캠벨 교수와 일본의 사토시 오무라 교수였다. 이들 역시 이버멕틴이라는 효과적인 장내 기생충 및 사상충 치료제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버멕틴은 부작용이 매우 적은 동시에 수십년간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에서 약물 저항성이 발견되지 않아 ‘기적의 약’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약품 덕분에 회선사상충이라는 기생충에 의해 망막에 손상을 입어 영구적인 실명을 입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좋은 소식은 또 있었다. 개발명 RTS,S, 상품명 모스퀴릭스로 최초의 상용 말라리아 백신이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는 소식이 7월에 들려왔다. 말라리아 백신 연구의 역사는 기생충학의 역사에 있어 오욕과 회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천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가장 넓은 지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혀온 말라리아를 뿌리 뽑기 위해 많은 연구자들이 말라리아 백신 연구에 말 그대로 몸을 바쳤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자신의 몸을 실험체 삼아 백신을 시험해 볼 정도로 불물을 가리지 않고 뛰어 들었고,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력이 투자되었지만 백신은 매번 실패였다. 아르테미시닌처럼 훌륭한 치료제가 있더라도, 말라리아의 침입을 애초에 막을 수 있는 백신이 없다면 결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 뿐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에 결국 올해 7월 첫 말라리아 백신이 선을 보인 것이다. 30년이라는 개발 시간에 비해서는 60%대에 불과한 보호 효과에 여러 번 접종을 해야하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인류에게는 소중한 첫 걸음이었다.
수 없이 많은 약품과 백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진화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인간과 기생충의 경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생충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이야기들은 끊임 없이 들려올 것이다. 기생충학자에게는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