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무기

2015 김완수의 춤 공연인 『우리춤, 담향(淡香)』이 11월 28일 양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졌다. 이번 공연은 전통춤을 추는 남성 무용가가 많지 않은 지방 무용계의 실상에서 「동아무용콩쿠르」 한국무용 전통부문의 금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김완수의 춤 공연이라 귀추(歸趨)가 주목되었다. 공연은 크게 4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궁(宮), 그 길을 거닐다”로 『무산향』과 『태평무』가 공연되었고, 두 번째 주제는 “옴바라니 옴바라오”로 남도의 대표적 소리인 「보렴」과 『승무』가 공연되었다. 세 번째 주제는 “에허라… 꿈, 꿈이로다”로 「육자배기, 흥타령」과 『살풀이춤』이 펼쳐졌으며, 마지막 주제는 “놀고, 흥겹고, 풍류놀음 해보세”로 『사물판굿』과 『설장구춤』이 펼쳐졌다. 김완수는 이번공연에서 단편적으로 펼쳐지는 전통춤판 보다는 궁궐에서부터 민중의 삶과 신명에 이르기까지의 스토리텔링을 춤에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궁의 태평성대, 불교예술, 민중의 삶과 애환 그리고 신명과 흥을 각 주제별로 나타내는 시도를 하였다.
젊은 춤꾼의 창의적 생각으로 춤을 채색하고 그것을 액자에 담고자 한 흔적이 엿보였던 구성이었다. 게다가 각 요소에 적절한 무대장치를 사용하여 춤의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한 점도 참신했다. 무대장치는 가운데 궁궐의 지붕과 기둥이 자리하고 기둥의 안쪽에는 가는 발이 세로로 드리워져 궁중과 세속을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했다. 궁궐의 기둥 바깥쪽에는 길고 짧은 발들이 드리워져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그 길이를 조절해 인간 삶의 다양성을 상징하였다. 궁궐의 기둥을 중심으로 무대의 4귀퉁이에 사각 등불들이 놓아져서 마치 대모반(玳瑁盤)을 연상케 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김완수는 사각의 등불 속에서 『무산향』을 추었다. 무대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 무동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복색과 춤태가 무산향을 추기에 안성맞춤이었으나 궁중정재의 특성상 수위를 넘나드는 팔 다리의 굴신은 지양되어야 할 점으로 나타났다.
『무산향』이 끝날 무렵 무대 상 하수에서 상궁 4사람이 서서히 들어와 춤을 춘 무동에게 절을 한다. 무동이 다시 무대 상수를 보고 절을 하자 왕비의 복색을 한 인간문화재 엄옥자가 『태평무』를 추기위해 가운데 발의 안쪽에서 무대로 장엄하게 걸어 나온다. 엄옥자가 무대 중앙에 서게 되자 상궁 4명은 각각 사각 등불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뿌리 깊은 고목이 춤을 추는 양 엄옥자의 농현(弄絃)이 묻어난 춤사위는 여유롭고 무거우며 깊이 있게 펼쳐졌다. 마치 손자의 한바탕 춤공연을 격려하고 지신을 밟아주기 위해 왕림한 할머니의 사랑과 같은 폭 넓은 춤이 펼쳐졌다. 춤이 끝나자 궁궐은 사라지고 무대 뒷면에는 그래픽으로 처리된 노랑나비 두 마리가 음악에 맞춰 날아다녔다. 합장한 채 무대 가운데로 나온 김완수가 추는 한영숙류 『승무』는 장삼뿌림이 힘이 있는가 하면 이내 곡선을 그리며 막힘없이 이어지는 손놀림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춤꾼 자신을 표현하는 듯 했다. 김완수는 정재만, 김미숙, 김완수로 이어진 한영숙류 『승무』를 흐트러짐 없이 담담히 추었다. 짙은 채색화 보다는 담묵을 닮은 춤사위에 북가락을 얹어 마침내 김완수의 승무가 펼쳐졌다.
『승무』에 이어서 양혜인의 「육자배기, 흥타령」이 펼쳐진 후 김완수의 『살풀이춤』이 시작되었다. 동아콩쿠르에서 『살풀이춤』으로 금상을 수상한 전적이 말해 주듯이 수건 놀음이 좋고 손목을 비롯한 몸의 태가 흡사 정재만을 닮아있다. 이어서 이번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사물판굿』과 『설장구춤』이 공연되었다. “무리지어 공연단”이 펼친 『사물판굿』은 연희자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났다. 한바탕 판굿이 끝나자 『설장구춤』이 군무로 펼쳐졌다. 김완수는 가운데서 춤꾼들을 리더하며 「삼천포농악」에서 파생된 『설장구춤』을 추다가 마침내 솔로로 『장구춤』을 추었다.
김완수는 요즘 20대의 젊은이로서는 보기 드물게 악(樂)과 무(舞)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발달한 재원이다.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전라우도농악과 국립경상대학교에서 삼천포농악을 익혔으며, 정재만과 김미숙으로부터 벽사춤을 섭렵하였다. 또한 국립부산국악원 단원으로 재직할 당시에 궁중정재를 이습하였다. 이런 그가 이번 공연에서 그동안 연마한 기량들을 야심차게 풀어냈다. 김완수의 춤은 가공되지 않은 투명한 원석을 보는 듯 했다. 비록 남성다운 기백과 힘이 부분적으로 필요해 보이긴 하였으나, 마치 연한 수묵으로 농도를 달리하며 맑게 채색한 수묵담채화처럼 제목 담향(淡香)에서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향기가 배어있는 춤판이었다. 전통은 변질되지 않고 오롯이 보존될 때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김완수의 춤태가 아직은 정재만의 춤태를 온전히 닮아 있고, 그 위에 벽사의 제자였던 김미숙의 춤색이 얹어져 한영숙 춤의 맛과 멋을 담묵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 위에 어떤 채색이 덧입혀질지 모를 일이다. 이 젊은 춤꾼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한 이유도 이러한 연유에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