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지역문화진흥법의 의의
1980년대에 대형 문화시설 건립과 재원 조성 등을 내용으로 하여 비로소 추진되기 시작한 지역문화정책은 1990년대에는 지방자치제와 이에 따른 지방화의 조류 속에서 문화 향수권 신장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 활발하게 추진된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역문화의 해’(2001) 등 지역문화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크고 작은 정책 프로젝트들을 계속 펼쳤음에도, 2004년 당시 문화관광부는 『예술의 힘』을 통하여 그 동안의 지역문화정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지적과 반성을 하기에 이른다.
첫째 정책 추진 체계상의 문제점으로서 ‘중앙정부 및 관 주도의 정책 추진으로 지역 현실과 괴리’, ‘국가 차원의 지역 균형 발전에의 청사진 부재’, 둘째 문화공간 확충·운영상의 문제점으로서 ‘문화시설의 절대수 부족과 지역별 격차 현상 심각’, ‘수요자 중심 문화공간 운영 전략의 부재’, 셋째 지역문화프로그램 운영상의 문제점으로서 ‘문화행사의 서울 및 대도시 집중과 지역의 전통적 특성의 약화’, ‘지역문화프로그램 특성화 및 다양화 추구의 기반이 되는 지역문화자원 개발 및 관련 정보 공유 체계 구축 미흡’, 넷째 지역문화 전문인력 육성상의 문제점으로서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 체계 미흡’, ‘지역 간 전문인력 수급상의 불균형성 존재’, 다섯째 지방문화 진흥 재원 측면에서의 문제점으로서 ‘지역문화 발전에 필요한 재원확충 미흡’, ‘지역문화진흥 재원의 배분구조 왜곡’ 등이다.
지방자치제의 부활 이후 지역문화정책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보낸 10년의 세월은 그 이후 지역문화진흥법의 논의부터 제정까지 새로이 들인 10년의 세월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역문화정책 추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과 제도를 구축하는 데 적어도 20년이 든 셈이다. 다시 말해 지역문화진흥법은 오래 전부터 문화 현장으로부터 제기되어 온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해묵은 처방전의 성격을 띠며, 여기에 생활문화 지원 등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부 과제가 더해진 법률이라는 의미다. 향후 지역문화정책의 과제와 전망은 이러한 내력을 찬찬히 되짚어보면서 그 처방과 필요과제들이 얼마나 타당하고 또 적절한지, 그리고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검토와 함께 도출되어야 할 줄 믿는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참여정부의 새로운 문화비전인 『창의한국』(2004)을 준비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문화정책을 아울러 추진하고자 하였고, ‘문화와 지역-국가 균형발전의 문화적 토대 구축’을 5대 기본방향의 하나로 제시하였다. 『예술의 힘』과 함께 발표된 『창의한국』은 ‘지역문화진흥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발전을 이루기 위한 핵심과제’이자 ‘지역의 문화역량 제고는 지역문화진흥의 선결과제’로서 지역의 문화역량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중앙-지방-민간의 바람직한 역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에 문제점으로 꼽은 것이 바로 ‘중앙정부의 종합적인 지역문화정책의 미비’였으며, 이를 위한 법적·제도적 출발이 지역문화진흥법에 관한 담론이었던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의 주요 제정 의의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역문화를 바라보는 정책 프레임이 최초로 개별법으로 정립되었다는 점이다. 현장의 오랜 요구로 성안되는 법령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해석하는 기본 프레임을 표상하는 것인데, 이 지역문화진흥법의 주요 지향은 문화현장의 이론가와 활동가들이 지속적으로 제시해 온 정책대안으로서 이를 국가가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의 생활문화진흥(제2장), 지역의 문화진흥기반 구축(제3장), 문화도시·문화지구의 지정 및 지원(제4장)을 둔 다음 그 대표적인 실행 기관인 지역문화재단의 설립(제5장)을 규정하였다. 이로써 지역문화진흥법이 중앙정부의 문화정책 전달체계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 추진체계가 지역문화재단 중심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정책 현장의 실제 상황을 인정한 법률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범위가 지속 확대되어 온 지역문화 정책영역의 포괄적 실행 주체가 1990년대까지의 지방문화원에서 2000년대 이후 지역문화재단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을 계기로 지역문화재단의 위상과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문화정책의 이념이 본격적인 문화민주주의(cultural democracy)를 실천하고자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문화민주주의는 ‘모두에 의한 문화(culture by everybody)’를 지향하여 시민들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대중적이고도 국지적인 문화를 강조하며, 공공부문에서는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자율적인 문화적 선택을 존중하고 지원해야 함을 지향한다. 1970년대 이후 예술과 전통문화 중심의 정책, 1980년대 이후 문화 향수권과 문화복지의 확대·확산을 위한 정책, 1990년대 이후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문화산업으로서의 정책에 이어 2000년대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응하여 환경과 생활로서의 문화를 정책으로 담아낸 것이다. 이는 전문 예술가·예술단체 중심의 예술문화에서 우리 모두의 생활문화로 정책대상이 이동함과 함께 특별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문화 활동에서 언제 어디서나 하는 문화 활동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시프트(shift)는 특히 지역에서는 문화예술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부르며, 이에 대하여는 뒤에서 다시 다루기로 한다.
셋째, 문화정책에서의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와 정책거버넌스(policy governance)를 실현할 수 있는 틀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이 문화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지역 단위의 문화자문단 운영(제13조)을 제도화하고, 지역문화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진흥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지역문화재단 및 지역문화예술위원회를 설립·운영(제19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위한 정책 수립과 문화복지 차원의 시민문화 활동 참가를 유도하기 위해 지역문화전문가들과의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제19조)하도록 하고, 문화서비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문화단체들과의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해 실질적인 문화서비스가 전달(제12조)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 책무가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문화예술진흥법, 지방문화원진흥법 등의 법률에 지역문화에 관한 사항이 단편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지역문화진흥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역문화진흥법을 통해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수립과 재원 확보 등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제4조)로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즉 지역 문화예술인 및 문화예술단체의 창조적 역량 제고를 위한 지원과 시책 강구(제10조), 생활문화 시설의 확충 및 운영 활성화(제8조), 문화환경 취약 지역과 문화소외계층에 필요한 지원과 시책 강구(제9조), 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과 자질 향상을 위한 시책 강구(제10조),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재정 확충(제21조), 지역문화진흥기금 설치(제22조) 등을 규정하였다.

지역문화진흥법의 한계
지역문화진흥법은 ‘지역 간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국가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제1조)으로 한다. 그리하여 지역 간 문화격차의 해소,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 강화로 문화 다양성 확보, 생활문화의 활성화로 시민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문화계의 숙원으로서 이러한 여러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법률임에도 재원 확충과 집행의 방식 등 지역문화진흥에 필요한 핵심 사항들이 보다 충실히 논의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역문화정책 추진 주체들의 의견이 시행령에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한편, 법 시행 후 1년 뒤인 2015년 7월 법 제6조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수립한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에는 이를 수용하려는 매우 괄목할 노력들이 담겨 있다. 물론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어야 그 정책적 구속력과 추진력이 보다 확실해진다.
지역문화진흥법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정책에 대한 분권과 자치의 비전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에 2014년 2월 4일 부산에서 광역·기초 지역문화재단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연 ‘지역문화진흥법 시행령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라는 소극적 차원이 아닌 ‘문화분권’과 ‘문화자치’라는 적극적 차원의 가치 실현을 법의 목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마땅한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지방자치의 발전이 선순환구조를 이루므로 1980년대까지의 지역문화정책의 근본적인 한계로 지방자치의 부재가 가장 먼저 지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분권과 자치의 분명한 지향을 갖지 아니할 경우 ‘지역별로 특색 있는 고유의 문화’에 대한 중앙정부의 정책은 문구상의 의도와 달리 그 관점에서부터 획일화하기 십상이다. 이는 네 번째 지적 사항과 일맥이다.
둘째, 지역문화진흥 재원의 확충을 위한 정책 의지가 미약하다는 점이다. 지자체로 하여금 그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면서도 실천적 방법을 밝히지 않았을 뿐더러 국가로 하여금도 지역문화진흥 재원의 확충에 필요한 예산 지원을 ‘할 수 있다’고만 했지 ‘해야 한다’고는 규정하지 않았다. 제1조에서 법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첫 수단으로 제시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는 지역문화진흥 재정 확충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