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끼의 서울유레카

지금까지 라면 카레 등 주로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에 일본을 통해 한국에 전파된 음식을 소개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소개된 여러 음식들의 급속한 한국화 과정이다. 그러다보니 일본과는 다른 스타일이거나 일본에 없는 음식들로 진화된 것들이 많다.
이런 일은 한국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시절 식민통치를 당한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아시아에서는 프랑스의 식민지이었던 인도차이나 3국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요즘도 바게트를 흔히 먹고 있지만, 현지화한 샌드위치가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
일식집은 한국에서 일본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일본음식이라 생각하여 즐겨 먹던 음식이 일본 현지엔 없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실제로 일본 여행 중 이런 사실을 알고 문화충격을 받은 한국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식집에서 흔히 먹던 메뉴를 일본 식당에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덮밥을 시켰는데 그런 음식이 없단다. 회덮밥과 비슷한 메뉴로 치라시스시(ちらしすし)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비벼서 먹는 것이 아니라 와사비 간장과 함께 먹는다. 기본적으로 일본엔 비벼 먹는 음식이 흔치 않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 관광객들은 초고추장을 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초고추장이 있는 식당은 흔치않다. 치라시스시의 밥은 초밥이다. 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어도 맛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반대로 나는 한국에 와서 회덮밥을 처음 먹었을 때 간장을 뿌려서 먹었다. 한국 초보자인 나에게는 회덮밥이 좀 다른 스타일의 치라시스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간장을 뿌려서 회덮밥을 먹었으니 맛이 이상할 수밖에. 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는 스타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회덮밥에 간장을 뿌려 먹은 이유는 메뉴판 때문이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나는 사시미돈(刺身どん)이라는 메뉴에 눈이 갔었다. 일본에서 못 봤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시미는 회를, 돈은 덮밥을 의미한다. 일본에선 덮밥을 비벼 먹지 않는다. 회는 와사비 간장과 함께 먹으면 그런대로 맛이 있지만, 밥에 뿌려 먹으면 그냥 간장 밥이라 당연히 맛이 이상하다. 물론 초고추장과 함께 먹는 스타일이 이방인인 나에게 어색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맛있게 먹는다.
회는 일본에서 기원한 음식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 역사는 그리 깊지 않다. 생선을 생식하는 기술이 문헌에 나온 게 15세기쯤이다. 다른 조미료와 함께 무침으로 먹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회에 간장을 찍어서 먹기 시작한 것은 에도시대 때부터라고 한다. 즉, 간장이 서민들 사이에 보급되면서다. 당연히 간장이 생선 비린내도 잡아주니 금상첨화였다. 에도(동경)는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서 언제든지 신선한 생선을 구할 수 있었는 것도 회가 대중화된 이유 중의 하나다. 간장의 보급과 함께 에도시대 중기가 되면 생선초밥이 등장하여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식문화가 꽃피었다.
물론 같은 바다에 면한 한반도에서도 회를 먹는 식문화가 발달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한국인들이 생선회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에도가 바다에 가까운 반면 한양은 내륙에 위치하여 신선한 생선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회로 먹는 것보다 조림이나 구이 등으로 조리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등포와 제물포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고 전국에 철도망이 정비됨에 따라 생선회를 먹는 문화가 보급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인들은 그냥 회로 먹는 것보다 회무침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물론 와사비 간장도 일본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지만, 한반도만의 독특한 양념문화가 널리 보급되었다. 초고추장뿐만 아니라 된장, 소금과 참기름 등 일본에 없는 다양한 양념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쌈으로 싸서 먹는 스타일도 일반화되었다. 사시미가 아닌 생선회문화의 탄생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일식집에서 먹는 회와 일본 현지에서 먹는 사시미를 비교하면 사시미가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일본에 가서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식집에서 회덮밥과 쌍벽을 이루는 인기 메뉴가 알탕과 내장탕 혹은 매운탕과 같은 탕류일 것이다. 사실 이것들도 일본에 없는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생선을 찌개나 탕으로 먹는 식문화는 있지만, 된장이나 다시마 국물로 만든 간을 맞추는 요리가 대부분이며 식초와 간장을 섞은 폰즈(ポン酢)를 찍어서 먹는 스타일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일본에서 내장을 먹는 문화가 한국보다 덜 발달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복어 고니나 아구 간, 그리고 명태 알 등은 고급 부위로 여겨 먹기도 하지만 대부분 버린다. 생선뿐만 아니다. 육고기 내장도 옛날에는 버렸다.
일본에서 내장을 호르몬(ホルモン)이라고 부른다. 버리는 것 즉, 버릴 부위라는 뜻으로 원래 오사카 사투리이지만 이제는 일본 전국에서 통하는 말이 되었다. 옛날에 버리던 고기 내장은 요즘 들어 일본인들도 즐겨 먹기 시작했고, 고기집 중에는 내장 요리 전문점이 생기는 등 이제는 일반화되었지만 생선내장을 전문으로 내놓는 집은 아직 없다. 아무튼 한국 스타일의 일식을 일본에서 먹으려면 한인타운 안에 있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횟집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까지는 한국엔 있는데 일본에 없는 일식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이제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일식을 알아보자.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우동과 오뎅이다. 우동과 오뎅은 서민적인 음식이다. 일본의 전통 면요리로는 소바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우동만큼 발달되지 않았다. 일본의 면식문화는 소바를 즐겨먹는 동경을 중심으로 한 동일본지역과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당시 조선은 서일본의 우동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소바보다 우동이 널리 일반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동은 일본 것과 보기는 비슷하지만 근본적으로 맛이 다르다. 한국은 주로 멸치국물에 고추가 들어있어서 매운 편이다. 게다가 고추 가루를 듬뿍 넣어 빨간 국물이 특징이며 매운 맛이다. 한편 오사카 우동국물은 주로 다랑어 포로 만든 가츠오부시로 만들어 맵지 않고 맛이 순한 편이다. 한국에는 요즘 가츠오 우동 등 일본 카가와 현이 본고장인 사누키 우동이 상륙해 인기를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츠오부시로 국물로 만든 일본 우동을 좋아하지만 가끔 재래시장에서 파는 우동이 당길 때가 있다. 한국 우동의 멸치국물이 그리 싫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에 포장마차에서 매콤한 우동을 먹는 것이 지극히 맛있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우동과 함께 꼭 나오는 것이 단무지다. 일본에서 단무지가 우동과 함께 나오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국인 친구는 일본에서 우동을 먹었을 때 단무지가 없어서 화가 났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동과 단무지를 함께 먹는 것은 엄연히 한국만의 식문화이다. 반대로 나는 한국에 와서 우동을 먹을 때 단무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기에는 일본의 다쿠앙(たくあん)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맛이 전혀 달랐다.
다쿠앙은 무짠지인데 단무지는 식초에 조려 신맛이 강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오랜 한국생활을 통해 입맛이 변한 것인지 이제는 맛있게 먹고 있다. 시고 단맛의 단무지는 우동이나 라면 같은 면 요리를 먹을 때 나에게도 꼭 있어야 하는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가서 우동을 먹을 때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오뎅하면 일본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 파는 오뎅은 일본에서 파는 그것과 좀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오뎅은 어묵이며, 일본의 오뎅은 한국처럼 간식으로 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일본식 오뎅은 어떤 것일까? 오뎅 국물은 된장, 간장, 흑설탕 등 지역과 파는 집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단 공통된 점은 국물이 진하다는 것. 도저히 국물만 먹을 순 없다. 단 오사카 지역에서는 우동국물과 비슷한 맑은 국물을 즐겨 먹는다. 우동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우동국물은 오사카 지방의 색깔이 짙은 것 같다. 한국 오뎅은 어묵밖에 없지만 일본 오뎅은 계란, 곤약, 튀긴 두부, 무 등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어묵이 기본으로 들어 있으며 오사카는 문어, 나고야는 삼겹살, 오키나와는 족발 등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오뎅이 존재한다.
오뎅의 역사도 역시나 에도시대 때부터 기록이 남아 있으며, 간장의 유통과 함께 에도 서민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생선회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간장의 발달이 오늘날의 일본음식의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일본에서 오뎅을 먹으려면 어디로 가면 될까? 주로 많이 제공하는 장소는 술집이다. 일본에서 오뎅을 술안주로 먹기 때문이다. 특히 뜨거운 정종과 오뎅의 궁합이 잘 맞는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편의점에도 오뎅이 등장하는데 대부분이 맑은 국물인 오사카 스타일이다. 청소가 간편한 것도 있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오뎅은 국물을 마시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한국처럼 매콤하지 않고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물론 오뎅을 보온하는 기계를 청소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맑은 국물이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편의점 오뎅은 술안주이라기보다 간식이나 반찬으로 먹는 손님들이 많은 것 같다.
여기서 반찬이라고 언급했지만 오뎅을 어떻게 반찬으로 먹을 수 있냐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오뎅은 가정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가정 음식이다. 오뎅을 찌개로 만들어 온 식구가 함께 먹는 게 일본 스타일이기도 하다. 어묵만으로도 충분히 반찬이 되지만 일본 오뎅 종류는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