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아무래도 내가 입덧을 하나? 그럴 리가! 설마 중늙은이에게 그런 일이. 게다가 아 참, 난 수컷 아닌가! 그런데 요즘 내 혓바닥은 왜 이리 막무가내로 도리질을 칠까. 왜 이리 안달복달 할까.
잇몸이 근질근질, 혀끝이 간질간질, 방안을 왔다갔다, 의자에 앉았다 섰다, 책을 폈다 덮었다, 도무지 안절부절 못했다. ‘입 몸살, 혀 몸살’에 자못 찜부럭까지 심해졌다.
얼마 전,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날. 갑자기 매운 것이 미친 듯 먹고 싶어졌다. 혀끝 얼얼 화끈화끈 불닭을 먹을까. 고추양념 고추기름에 온몸 짜릿짜릿 짬뽕을 캭 들이켜 볼까. 아니면 무교동 막내낙지집이나 가서 입안창이 활활 타오르는 매옴새콤 낙지볶음을 게걸게걸 먹어볼까.
나중에 정신차려보니 난 종로 낙원동 마산아구찜집에 앉아있었다. 역시 ‘지상의 낙원’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코를 킁킁이며 행복에 겨웠다. 오호라. 살짝 비릿한 아삭아삭 콩나물냄새, 상큼 향긋한 미나리 냄새, 불나게 매운 고춧가루 냄새, 칼칼한 듯 텁텁한 듯 생강냄새….
아구찜은 ‘천불나게 매워’ 한순간 자지러졌다. 온 몸에 우우 소름이 끼쳐 진저리를 쳤다. 한여름 소나기 퍼붓듯 땀이 줄창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머리에 주뼛주뼛 쥐가 났다. 아마 동치미국물을 한 말쯤 마셨을 것이다. 쐬주는 몇 병을 쳐 죽였는지 정신이 아득하여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온갖 해장국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좌악 펼쳐졌다. 전주 콩나물해장국, 부산 해운대 복국, 하동 재첩국, 서울 청진동 선지해장국, 서울 무교동 북엇국, 서산 태안 우럭젓국, 목포 무안 연포탕, 순천 짱뚱어탕, 여수 갯장어(하모)탕, 경주 메밀묵콩나물해장국, 보은 괴산 올갱이국, 주문진 속초 곰칫국, 강릉 물회국수, 양양 섭국, 제주 갈치국과 돼지국수…. 도대체 무얼 먹지?
느닷없이 물메기탕(곰칫국)이 떠올랐다. 물메기의 점막덩어리가 어른어른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목젖이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금세 그 뜨끈 물컹한 덩어리가 미끄덩 목구멍을 넘어가며 뱃속이 따끈따끈 환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곰칫국은 속초 주문진 동해안이나 통영의 남해안이나 가야 제 맛을 볼 수 있는 걸. 서울로 공수해 오는 순간 상해 버린다. 뱃사람들이 잡자마자 쓸모없다며 버리는 ‘물텀벙!’ 신세가 된다.
된장! 고추장! 젠장! 그렇다면 광화문 안성 또순네 집에나 가자. 그 맑고 시원한 생태탕이나 얼크렁덜크렁 탐해보자. 틀리지 않았다. 일단 은은한 국물 맛에 넋이 나갔다.
두께두께 썬 무 맛도 새록새록 은근했다. 두고두고 혀끝에 뱅뱅 맴돌았다. 콩나물 모시조개 팽이버섯 애호박 우러난 물이 흠뻑 배어 입안이 혼곤했다. 미나리 쑥갓 향내가 슬쩍슬쩍 코끝에 걸렸다.
얼씨구! 지화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남이야 혁명을 하든 말든, 어깨가 으쓱으쓱 들썩거렸다.
우쭐우쭐 깨끼춤이 절로 나왔다. 겅중겅중 절굿대춤 돈돌라리춤은 방이 비좁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