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동숭문화광장

지난 칼럼에서 다룬 ‘예술산업화’ 이야기를 한 번 더 하려 한다. 전편에서는 (순수)예술의 산업화 논의의 문제를 주로 현재의 망가져가는 예술생태계 등을 들어 제기했지만, 이번에는 보다 근본적인 예술의 속성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부분을 우리는 경험으로나 학습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차제에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사실 명명백백한 이야기를 시시콜콜 다시 하려니 마뜩찮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미 10여 년 전에 문화계에서 ‘기초예술’이란 용어까지 사용해가면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정리해 놓은 순수예술을 놓고 일각에서 산업화 운운하고 있는 상황을 가볍게 웃어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랫동안 클래식이나 전통음악, 연극, 무용 같은 예술은 비영리장르로 간주되어 왔다. 대표적인 논거가 시장실패론이다. 1966년 미국의 두 경제학자 보몰과 보웬이 펴낸 「공연예술, 경제적 딜레마」에서 이점이 실증되었다. 두 저자는 길게는 100여 년간의 미국과 영국의 유명 공연예술단체의 비용과 수입들을 분석하면서 제작비용 상승률은 항상 물가 상승률 수준의 2배, 심지어 10배까지에 이르고(비용질병), 티켓 수입 상승률은 그에 못 미쳐서 갈수록 적자의 폭이 커져왔다는 것(수입격차)을 입증한 것이다. 저자들은 그 이유로 자동차 같은 일반 상품들은 기술의 발달에 따라(기술집약적 상품) 부품이 표준화되면서 한계생산비용이 낮아지거나 적어도 급격히 오르지 않아 생산성 향상의 혜택을 보는 반면에, 예술상품은 인건비의 비중이 높은 수공업이어서(노동집약적 상품) 기술발달의 이점을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예술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가격 같은 경제학적 메커니즘에 의한 정상적인 거래(이것이 산업화의 기본 조건이다!)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정부나 기업, 개인들의 지원이 없으면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시장실패 상품이라는 것이다.
다른 논거로는 순수예술이 일정기간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일정수준의 취향이 형성되어야 비로소 소비가 가능해진다는 ‘취향론’이 있다. 이런 예술은 단기간에 사람들과 친숙해지기 어려워 대규모의 소비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보몰과 보웬도 위 저술에서 공연예술의 관람층이 대부분 긴 기간 동안 예술에 대한 이해력을 쌓아 온 고학력자들로 구성된다는 것을 최초로 밝혔다.
경영학에서 다루는 ‘서비스 상품의 특성론’에도 예술이 자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도사리고 있다. 경영학의 대가 필립 코틀러가 제시한 네 가지 특성을 통해 서비스 상품인 예술이 일반 상품에 비하여 불리한 점을 살펴보자.
첫째는 무형성으로, 서비스 상품은 소비자가 구매하기 전에는 보거나 맛보거나 느끼거나 들을 수 없는 특성을 가진다. 일반 상품은 구매하기 전에 그 디자인이나 성능을 미리 파악해 볼 수 있으나 서비스 상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우선 구매부터 해서 경험해 보고 난 다음에야 상품의 가치를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를 경험재라고도 한다. 예술도 그와 같아서 그 가치나 형태를 경험하기 전에 티켓을 먼저 구매해야 하므로 소비자들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둘째는 비분리성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분리될 수 없다는 서비스 상품의 특성이 공연예술에서는 무대에서 공연을 수행하는 공연자와 동시에 이를 관람하는 관객의 관계로 나타난다. 즉, 공연자와 관객이 한 장소에서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다른 상품에 비할 데 없이 불리하다. 일반 상품은 물론이고 영화처럼 복제가 불가능하여 한 번에 하나의 공연만 존재하게 되므로, 공연장의 좌석 수만큼만 판매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뮤지컬처럼 좌석 수가 많은 극장에서 몇 달 이상 몇 년까지 장기 공연을 시도하는 것은 이런 한계를 넘어 보자는 것이지만, 클래식 음악, 오페라, 국악, 연극, 무용은 소비자 규모가 작아서 장기 공연 시도 자체가 아예 어려운 장르다.
셋째는 변화성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시기, 장소, 방법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는 것이 서비스 상품의 다른 속성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성악가라도 음향 시설이 좋지 않은 체육관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전문적인 콘서트홀에서 하는 것은 품질 자체가 다르다. 전성기인 젊은 시절의 공연과 나이 들어 목소리가 예전과 같지 않을 때의 공연도 다르다. 오늘과 내일 공연처럼 목소리의 차이가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공연장의 사정, 예술가의 컨디션, 관객이 많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등에 따라 발산되는 공연자의 에너지가 다를 수 있다. 세상에 똑같은 공연은 없다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 또한 소비자들의 구매가 한정되는 이유이다.
넷째는 ‘소멸성’으로 판매나 사용 후에 저장이 불가능한 서비스 상품의 속성은 공연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단 지정된 날짜의 공연이 끝나면 팔리지 않은 티켓은 저장했다가 다시 팔 수 없다. 일반 상품의 경우 팔다 남은 제품은 저장을 했다가 다시 팔 수 있고 비용도 저장 비용 정도가 고작이지만, 남은 공연 티켓을 팔려면 공연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공연의 비용, 일반 상품으로 말하면 생산비가 거의 다시 지불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논거들은, 말하자면 순수예술은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도 기술의 진화에 의해 생산성이 높아지는 일반 상품이나 대량 복제가 가능한 영화보다 시장성을 갖기가 근본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중음악이나 뮤지컬 같은 대중예술은 그래도 이를 즐기고자 하는 팬이나 관객이 많으므로 순수예술에 비하면 유리하다. 그렇다면 순수예술이란게 전혀 돈이 되지 못하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스타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나 음반사업, 미술품 거래사업은 막대한 돈이 오간다. 정명훈 같은 명성 있는 지휘자들, 조수미 같은 성악가, 정경화, 장영주 같은 기악연주자들이 그들이며, 비싼 값에 작품이 거래되는 미술가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이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사교육 시장의 비중이 공교육을 포함한 전체 교육시장의 규모보다 훨씬 작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우리가 교육 시장을 산업화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순수예술시장 또한 산업화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수예술 시장 전체로 보면 분명히 비영리 시장임이 드러난다. 어느 나라보다도 시장성이 강하다는 미국을 보더라도 그렇다. 미국은 1960년대 들어 예술시장이 팽창하는데도 여전히 외부 기부로 연명하던 예술계에 경영학의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여 자생력을 가져보라는 요구를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마케팅에 기대어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에 공연장을 유료관객으로 가득 채워 놨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했다. 오늘날에도 보통 6대 4의 자체수입과 외부지원은 비율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티켓 가격도 우리네보다 상당히 높은 데도 말이다. 아직 전국 공연장의 유료관객비율이 잘해야 평균 50%대에 머물고 있는 우리 공연시장에서는 미국처럼 자체 수입비율이 60%가 아니라 30%도 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 어떻게 산업화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 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가까이는 관객을 더 개발하는 일이고, 양질의 예술이 만들어지도록 효과적인 지원을 계속하는 것이다.
사실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예술의 산업화든 뭐든 연구와 논의를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그것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은 누구도 할 수 없다. 다만 이를 우려하는 것은 우리가 예술산업화가 가능하다고 믿고 그것을 밀고 나가기 시작할 때부터 시장은 왜곡되고 공공지원의 방향은 잘못된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지금도 간혹 그렇지만 공공문화시설도 돈을 벌 수 있다며 재정자립도를 과도하게 높이라고 요구하거나 예산을 삭감하는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공공지원 규모가 왜소하고 추가 재원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조차 기약하기 어려운 다른 쪽 즉, 예술산업화 지원 쪽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술산업화 지원법을 추진한다니 하는 소리다. 법으로만 시장을 규정하고 공공자금 투입은 자제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들어가는 인적 투입이나 노력은 수반될 것이다. 산업화가 가능하다면 그런 곳에 공공지원은 왜 필요한지도 모를 일이다. 모순된 일이 아닌가. 혹자는 산업화를 자극하는 정도의 지원을 의미하는 ‘마중물론’을 운운하기도 하지만, 마중물도 지하에 풍부한 밑물이 존재할 때나 통하는 법이다. 기초예술의 밑물은 늘 부족한 법이다. 아무리 봐도 필자에겐 예술산업화란 유령이 걱정스러운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