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

풍 요

김석일

매월 달거리하듯 어김없이 찾아가는
낡은 면허증을 걸어놓은 동네의원에서
법으로 정해놓은 듯, 더는 안 된다며
혈압 약을 꼭 한 달치씩만 처방해주더니……

무슨 사정인지 의원 앞 약국에 사정이 있다며
인심 쓰듯, 오늘은 두 달분을 처방해준다면서
괜찮겠냐고, 안 괜찮다고 할 수 없게끔
근엄한 목소리로 눈길을 돌리며 동의를 구한다

약국의 아줌마 약사도 아주 수다스럽게
피로회복제 한 병을 건네며 너스레를 떤다
두 달씩 조제해두고 먹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참 말이 길고 많다

의사와 약사의 모종의 음모가 가미된 듯한
두 달분 혈압 약 봉지가 꽤나 풍성하다
공연히 마음까지 여유로워진다. 세상에
별개 다 풍요롭게 느껴지는 나를 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