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살롱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연극행사가 하나 생겨났다. 바로 「원로연극제」이다. 효행과 원로를 특별히 예우하는 한국사회가 아니면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연극축제이다. 그런데도 무언가 사족의 말이 필요한 행사인 것이 분명하다.
우선 원로연극제라는 것에 유감이 있다. 참가한 4명의 나이를 보면 하유상 선생이 89세로 최고령이고 김정옥 선생과 천승세 선생이 85세, 84세로 비슷하고, 오태석 선생이 77세로 가장 젊다. 하유상 선생과 오태석 선생의 나이는 12세나 차이가 나서 어디에 기준을 두고 원로 연극인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태석 선생은 가장 젊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85세의 김정옥 선생도 먼 훗날에는 몰라도 오늘은 현역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처지다. 하유상 선생은 89세라는 나이는 물론이고 작품발표 시기로 볼 때도 단연 원로에 속한다. 그는 일찍이 1950년대에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1957) 「젊은 세대의 백서」(1959)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지만 6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따금 신작은 물론, 희곡집도 출간하고 있는 현역이다. 그리고 천승세 선생은 희곡보다는 소설에 전념하고 있지만 자신의 소설을 희곡화하여 원로 연극제의 무대에 올릴 정도로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고 있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를 기준으로 하여 원로라는 이름을 붙여서 연극제를 여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아직 쇠진하지 않은 기력과 창작욕에 불타는 현역을 원로연극제라는 이름을 빌려 특별히 예우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인가.
또한 이번 원로연극제는 문화예술위원회의 기획과 지원으로 행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임시로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같은 느낌이 든다. 예산이 충분하여 이런 저런 행사를 꾸미다 보니 원로 연극제라는 기획도 하나 끼어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굳이 원로연극제라는 것을 기획하려고 했다면 무엇보다 레퍼토리와 연출가의 선정과 제작비 지원에서 특별한 고려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참가자들이 아직 현역임을 자처하는 사정을 고려하여 수시로 공연해온 구작보다 신작을 공연할 수는 없었을까. 공연을 보면서도 어떤 공연은 제작비를 좀더 투입하여 수준을 높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원로연극제의 공연작품이 초연시보다 수준이 떨어진다면 재공연의 의의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원로 연극은 시간의 조탁과 상관 없이 무대 위에서 더욱 빛과 윤기를 자랑할 수 있도록 모두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원로연극제의 미래에 유감이 있다. 원로연극제는 올해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의 원로연극제를 보면 당장 내년의 원로연극제가 유명무실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오랜 기간에 행할 수 있는 연극제로서 안목과 비전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로연극제는 한국 현대연극의 성장과 변혁에 참여한 살아 있는 예술가의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정신과 역량을 고양하려는 목적을 지녀야 하기 때문에 문화예술위원회의 재정적 지원과 함께 연극사적, 예술적 안목이 있는 연극학자와 연극평론가의 참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