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살롱

탄생 100년, 서거 10주기 식으로 미술인의 삶을 회고하고 기리는 행사가 근래 잦아졌다. 근·현대 미술의 역사가 그만큼 두터워졌다는 증표일 것이다. 연대기적인 전시회가 지닌 맹점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게라도 기념할 수밖에 없는 한국 화단의 현실에서는 고마운 기회라 할 수 있다.
올해와 내년 유달리 100년 전 태어난 화가들이 촘촘하게 줄을 섰다. 이중섭(1916~56), 유영국(1916~2002), 전혁림(1916~2010), 최영림(1916~85), 이봉상(1916~70), 장욱진(1917~90), 박고석(1917~2002)이 그들이다. 앞뒤로 시선을 넓혀보면 이쾌대(1913~65), 박수근(1914~65), 남관(1913~90), 곽인식(1919~89)이 띠를 이루고 있다. 왜 이들은 같은 시간대에 밀집해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초석을 놓았을까.
강원도 원주시 월송리 뮤지엄산(SAN)의 청조갤러리3에서 21일까지 여는 「한국 미술의 산책 I」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작가들이 중심을 이뤘다. 특히 서양화 영역에서 손꼽을 수 있는 대표 화가 16명 대표작 49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컬렉터의 꼼꼼하고 집요한 수집 이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술사 정리에 꼭 필요한 핵심 작품을 집어낸 안목, 미술시장의 유행이나 시류를 타지 않은 취향의 고집 등이 이 컬렉션의 가치를 가늠하게 한다. 뮤지엄산의 관장은 한국 미술사 연구자이자 평론가이며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78)씨다. 한국 현대미술 여명기를 장식한 이들 가운데 유독 1916년 어름에 태어난 이들이 중심이 된 까닭을 물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일본 유학파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된 뒤 일제강점기 영향권에 든 이후에 교육받은 첫 세대이기도 하다.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즉 다이쇼 천황 시대 이후 자유분방하고 활력 넘치던 문화세례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현대미술의 전위적 운동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굴레는 있었지만 서구 현대미술 이론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일본에서 간접 체험한 미술 정신을 한국 상황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풀어낸 것이 이들의 작품세계였다. 일종의 공시성(共時性)이랄까.”
충분히 검증된 이론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짚어볼 구석이 많은 해석이었다. 이 논쟁거리는 후학들의 연구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사가 풀어야 할 숙제가 쌓여있으니 이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은 일복을 타고났다.
이쾌대가 1940년대에 그린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은 이 시기 화가들이 짊어졌던 시대과제를 함축하고 있다. 두루마기를 입었지만 중절모를 쓰고, 치마저고리 입은 여인들이 배경을 이룬 조국산천에서 서양 화구를 든 화가의 모습은 글이 표현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일본 제국미술학교 출신으로 1930~40년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개인 창작물을 생산했고 그룹 활동에 앞장섰던 작가다. 한국전쟁 중 북으로 간 탓에 오랫동안 남쪽에서는 그의 작품을 볼 수 없었다. 1988년 월북 작가 해금 이후 그의 서사적 내용과 상징성 풍부한 대작이 공개되자 한국 미술사는 큰 힘을 얻었다. 통일 이후 우리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