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의 서울유레카

폭염이 낮밤을 가리지 않는 요즘 빙수처럼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인 음식도 없다. 그중 한국인이 선호하는 빙수는 뭐니 뭐니 해도 팥빙수. 일본에도 빙수가 있는데 그것을 카키고오리(かきごおり)라고 부른다. 한국의 빙수엔 여러 토핑이 올라가는 반면 일본 빙수 카키고오리는 얼음 위에 시럽만 살짝 올라가는 것이 차이다. 물론 시럽의 종류는 다양하다.

일본 빙수의 기원
빙수의 기원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겨울철에는 흔한 것이었지만 여름에는 굉장히 귀한 것이 얼음이었다. 지금은 냉장고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얼음을 접할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된다. 이런 현실을 배우 차태현이 주연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에서 잘 보여주었다.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서빙고의 얼음을 훔쳐 탐관오리를 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의 경우 한강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본의 경우 천왕이나 장군들이 교토에 살았었다. 문제는 얼음 창고가 교토 근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 후지산에 있었다는 점이다. 후지산에는 ‘후케츠(風穴, 바람이 나오는 구멍)’라 불리는 많은 동굴들이 곳곳에 있다. 이곳은 연간 평균 기온이 3도로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생긴 ‘빙주(氷柱)’를 여름에도 볼 수 있다. (밀양의 얼음골을 생각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빙주를 꺼내서 교토까지 운반하는데 직선거리로 300km, 아주 커다란 얼음 덩어리도 교토에 도착하였을 때는 아주 작은 조각이 되고 만다. 교토의 고위층들은 이 얼음을 갈아서 수액 등을 뿌려서 먹었다는 기록이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년)의 수필 「마쿠라노소우시(枕草子)」에 기록되어 있다.
일반인들도 빙수를 먹기 시작한 것은 1869년, 마차다후사조가 처음으로 요코하마에 빙수점을 열었다. 마치다후사조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데, 1891년엔 나카가와 카헤이(中川嘉兵衛)가 하코다테(函館)에서 생산한 얼음을 도매시장에 유통시켰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때도 불량식품이 문제였다. 1878년 정부는 불량얼음을 단속하기 위해 ‘얼음 제조인 및 판매인 단속 규칙’을 공포하였다. 따라서 영업자는 위생검사에 합격한 얼음의 생산지와 판매자명을 명기한 깃발이나 간판을 거는 일을 의무화시켰다. 1883년에는 동경제빙주식회사가 생겨서 동경에서도 인공 얼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때쯤부터 빙수가 대중화되었다. 빙삭기의 기초는 무라카미 한자부로(村上半三郞)가 1887년에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하였지만 기계가 일반화된 것은 1920년. 그때까지는 손으로 갈아서 빙수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갈은 얼음 위에 설탕을 뿌린 것을 ‘유키(눈)’, 설탕물을 뿌린 것을 ‘미조레(진눈깨비)’, 팥을 올린 것을 ‘킨토키’라고 불렀다. 해방 후에는 설탕을 뿌린 유키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대신 딸기나 레몬 맛 시럽을 뿌리는 빙수가 주류를 이뤄 현재의 일본 빙수 모습이 등장하였다.
여기서 잠시 빙삭기에 대해 첨언하겠다. 거칠게 얼음을 갈아 얼음 느낌을 그대로 살린 빙삭기와 얼음을 눈처럼 가늘게 갈아 토핑의 식감을 더 강조한 빙삭기 두 종류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전자, 일본은 후자를 많이 이용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빙수도 눈꽃 빙수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눈꽃 빙수는 기존의 얼음 보다 더 늦게 녹는 등 장점이 많고, 토핑의 다양화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다. 이 유행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여러 나라로 진출하기도 했는데, 지난 6월 30일 도쿄 하라주쿠에 ‘설빙’ 일본 1호점이 문을 열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더 성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독자적인 길을 걸어온 한국과 일본의 빙수
조선의 빙수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빙수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식 빙수가 주를 이루지만, 이전에는 복날이면 서빙고나 동빙고에서 얼음을 꺼내 관원들에게 나눠 주며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팥빙수가 유행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단팥죽을 올려서 먹은 게 기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의 단팥죽과 빙수를 결합시켜 만든 게 팥빙수이다.
다시 일본 빙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먹어 온 빙수는 일종의 서양식 빙수다. 간 얼음 위에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시럽을 뿌려서 먹었다. 좀 더 일본적인 빙수를 찾는다면 그것은 우지(宇治)라고 불리는 녹차빙수다. 우지는 차로 유명한 우지 지역의 지명이며, 말차에 설탕과 물을 섞어서 만든 시럽을 얼음에 뿌린 빙수이다.
우지는 킨토키(金時)라는 단팥을 얼음 속에 넣어 먹는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지 킨토키의 역사는 길다. 우지는 16세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얼음에 말차 가루를 뿌려서 먹은 기록이 남아 있으며, 에도시대에 들어서는 단팥을 곁들어서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지 킨토키에 우유를 뿌려서 먹는 밀크 우지 킨토키의 역사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29년에 오카야마 현 오카야마 시에 있는 다방 카니돈(ガナドン)에서 단골손님인 제6고등학교(지금의 오카야마 대학교) 학생이 커피용 밀크를 우지 킨토키에 뿌려서 먹은 게 시초라고 한다.
아무튼 일본의 독자적인 빙수문화는 근대화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우동, 생선회 등 일본의 식문화가 남아 일본과 다른 길을 걸어온 것처럼 한국의 빙수문화도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해방 후에 우지가 사라진 것은 질 좋은 말차 가루를 구하기 어려워서는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다만 단팥과 우유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으며, 한국인이 즐겨 먹던 미숫가루와 떡을 함께 토핑한 한국형 팥빙수가 발전해온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은 팥을 얼음 속에 숨기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은 숨기고 한국은 왜 얼음 위에 얹어서 먹었을까? 그것을 일본식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얼음 속에 숨기면 그릇에서 넘칠 걱정이 없고, 양이 얼마나 되는지 딱 보기로는 알 수 없다. 일본의 어느 지방에서는 국수 속에 고기를 숨겨서 손님들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고기 크기 때문에 싸움이 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는 것이다. 일본이 빙수에 들어가는 팥을 숨기는 이유 중 하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의 빙수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먹는 법이다. 한국은 전체를 다 비벼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일본은 얼음을 조금씩 숟가락으로 퍼서 먹는 스타일이며, 비벼서 먹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른 사고방식이라 뭐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사실 한국의 팥빙수는 전체를 비벼 먹지 않으면 제 맛을 느끼기 어렵다. 가장 큰 원인은 시럽 때문이다. 팥빙수에는 시럽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단팥의 단 맛을 빙수 전체에서 느끼기 위해서는 비벼서 먹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한편 일본 빙수의 단팥은 얼음 속에 있으며 얼음만 먹으면 아무런 맛이 없다. 그래서 딸기나 레몬 등 각종 시럽을 첨가한다. 시럽이 얼음 전체에 뿌려져 있기에 한 숟가락만 퍼서 먹어도 맛이 난다.
사이즈 차이도 있다. 요즘 한국 가게에서 파는 팥빙수는 혼자서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연인이나 친구끼리 2명 이상이 먹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일본의 빙수는 일인용으로 한국에 비하면 사이즈가 작다. 나는 여럿이 함께 빙수를 먹는 데 별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데, 한 일본친구는 질색을 하기도 한다. 그 친구가 “넌 너무 많이 한국화되었다.”고 비난하듯 말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는 법’. 난 한국에서 한국식으로 사는 것이 편하다.

다양한 일본빙수
이야기를 다시 일본 빙수로 돌리자. 빙수기와 빙수용 시럽의 보급으로 다양한 빙수가 등장하였다고 위에서 소개하였다. 그중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유니크한 빙수를 소개한다.
▶ 야키고오리(燒き氷). 말 그대로 불타는 빙수다. 20세기 초반 오사카의 다방 ‘하쿠우테이(白雨亭)’에서 ‘야키고오리’란 간판을 걸고 팔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당시 귀했던 캐러멜소스를 사용했고, 도수가 높은 소주를 위에 뿌려서 불을 붙인 것이다. 최근까지 잊혔던 빙수 중 하나였지만, 2013년 NHK 드라마 ‘잘 먹었습니다(ごちそうさん)’의 극중에서 소개된 이후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아카후쿠고오리. 미에 현 이세 시(伊勢市)에서 여름에만 등장하는 빙수. 아카후쿠라는 유명한 단팥떡이 들어 있는 빙수이며 말차 시럽을 뿌려서 먹는다. 빙수와 함께 뜨거운 호지차를 곁들어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1961년에 해수욕객을 상대로 ‘아카후쿠 아이스’로 팔기 시작했지만 현재는 시내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시로쿠마(白くま). 백곰이라는 뜻이지만 고기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큐슈지방 특히 카고시마가 유명하며 얼음 위에 통조림 귤, 파인애플 등의 과일과 단팥, 얼음 위에 연유를 뿌린 빙수다. 빙수 전문점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스타일로도 팔리고 있다.
▶ 귤빙수, 파인애플빙수.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판매되고 있는 빙수. 갈은 얼음 위에 통조림 귤이나 파인애플을 얹고 시럽을 뿌려서 먹는 단순한 빙수. 이곳을 홈으로 하고 있는 요코하마 DENA의 야구 경기가 있을 때 많이 팔린다.

여기에 소개한 빙수는 일부이며 빙수도 지방색이 있다는 것이 일본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엔 ‘빙수의날’이 있다고 한다. 그 날짜는 7월 25일이다. 1933년 7월 25일 야마가타 현 야마가타 시에서 최고기온 40.8도를 기록하여 일본에서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되었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빙수의날’로 제정하였다 한다. 하지만 2007년 8월 18일에 사이타마 현 쿠마가야 시(熊谷市)와 기후 현 다지미 시(多治見市)에서 40.9도를 기록하며 74년 만에 최고기온을 갱신하였다. 그럼에도 빙수의 날은 여전히 7월25일이다.
왜냐하면 725라는 숫자를 일본어로 해석하면 7은 ‘나나’, 2는 영어의 ‘츠’(Two의 일본식 발음)로 나츠(여름)라는 말이 된다. 5는 ‘고’이며 고오리(얼음)의 첫 글자와 같다. 즉, 나츠고오리(여름 빙수)가 된다. 아무튼 일본과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 각 나라의 특색이 있는 빙수가 있다. 더운 여름날 빙수만큼 좋은 피서 음식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