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살롱

어와, 세상 벗님네야! 이내 말 좀 들어보소. 장마 끝 팔월이라 입추말복 절기로다. 이글이글 아스팔트바닥 ‘앗 뜨거워라!’ 불에 덴 듯, 돌담 위 호박넌출 개 혓바닥모양 늘어졌다. 모기 입 삐뚤빼뚤 처서는 언제 오나. 문득 곰곰 꼽아보니, 보름여나 남았구나. 오호라, 눈 감으면 얼음동동 수박화채 아른대고, 눈 뜨니 싸락싸락 톱밥빙수 소리 자그럽다.
“쓰름쓰름 쓰으름~” 쓰름매미 살갑고, “맴 맴 매앰~” 참매미 조신하다. “트르륵 츨르륵~” 트럼펫 불어대는 말매미, “따르륵 따르르~” 기관총 쏘아대는 깽깽매미, “지글지글 딱 따그르르~” 기름 볶아대는 유지매미, 온종일 악머구리 끓는구나. 새 각시 방귀뀌듯 조심조심 조선매미, 그 ‘반짇고리 골무’만한 몸피로 험한 세상 어이 살꼬! 저 소나무등껍질 같은 외래매미들 어찌 견디며 살아갈꼬!
꾸덕꾸덕 누습장마에 염천고열 겪었으니, 어디 사람 입안인들 자릿내가 안 날쏘냐. 하물며 참으로 간사한 게 사람 입맛 아니런가. 그 안달복달 어찌 눈꼴시어 봐주리오. 슬프도다! 사람 한생! 겨우 밥 한 보시기를 못 이겨서 애면글면 주접이라. 지난 새봄 푸성귀에 찬밥 한술이면 꿀맛이더니, 이제는 입안 헛헛하여 건입맛만 쩝쩝 다시는구나. 혀끝 맛봉오리, 문 꼬옥 닫았으니, 혓바닥 깔깔하고, 입안 이리 밍밍 저리 뻑뻑, 메마른 입천장에 단침 한 방울 돌지 않는구나.
어와 세상 벗님네들, 이게 무슨 소리런가. 치이~치글치글~ 마당가 무쇠솥 칭얼칭얼 용을 쓰니, 마루 밑 졸던 누렁이, 코 벌름벌름! 혓바닥 쩝쩝흘흘 마당가 뱅뱅댄다. 솥뚜껑 들썩들썩! 콧방귀 뀌어대고, 흠흠! 큼큼! 들크무레 엇구뜰한 보리밥냄새 애간장을 녹인다. 어화, 최고로다! 최고로다! 찬물에 꽁보리밥, 호박된장국, 이 세상 최고로다!
입속 보리밥알갱이가 고무공처럼 노니나니, 어느 놈은 은근슬쩍 잇몸사이에 숨고, 어느 놈은 말랑말랑, 탱글탱글 혀끝에 나부댄다. 에라, 이리 살짝, 저리 슬슬 굴렸다가, 위아래 잇몸사이에 은근슬쩍 지그시 눌러보니, 얼씨구! 지화자! 대장부 한 끼 밥상, 이만하면 좋을시고. 텃밭 풋고추 뚝 따다가 시끄무레한 된장에 푹 박아 한입 베어무니, 십년 묵은 입안군내 눈 깜짝할 새 가셨구려. 어와 벗님네들, 세상이야 혁명을 하든 말든, 우리 모두 마당 평상에 퍼질러 앉아, 대구토박이 상희구 시인처럼 보리밥타령이나 하여보세.
모락모락 짐이 나는 방금 해내/따신 보리밥이 한 양푸이/허슬허슬한 보리밥을/누리끼리한 놋숙깔에다가/북태산겉치 퍼담고는/온통 군둥네가 등청(登廳)을 하는/질쭉한 묵은 짐장뱁추짐치 한 잎사구를/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똥구락키 따배이로 틀어/보리밥 우에다가 얹고는/뽈때기가 오볼티이겉치/미어터지두룩 아죽아죽 씹는데 - 「두 손으로 부욱 찢어서 묵는 짐장뱁추짐치 잎사구 맛」에서
오호라, 강호세상 벗님네야, 서로 옳다 그르다 다툴 것 무엇인가. 사람 한생 그 누구도 갈 때보면 어디 ‘밸 것’ 있기나 하던가. 하고 싶은 것 하고, 맛난 것 먹으며, 슬금슬금 놀다가소. 공중의 새가 어디 발자국을 남길쏘냐. 한 세상 찧고 까불며,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시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