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좌담

김수현(金秀炫) 신순주(辛順周) 홍승엽(洪承燁) 정기헌(鄭基憲)

전라북도립국악원무용단 단장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춤평론

시·도립무용단 운영주체와 예술감독의 분리
정기헌 _ 오늘 시·도립무용단과 ‘춤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북도립국악원무용단 김수현 무용단장, 광주시립발레단 신순주 예술감독 그리고 대구시립무용단 홍승엽 예술감독 세 분을 모시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세 분은 2014~15년 예술감독 및 단장으로 취임 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각자 활동하시는 단체의 역사와 단원의 규모, 또 어떤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홍승엽 _ 대구시립무용단은 창립한 지 30년이 넘었고, 단원 수가 31명이에요. 육아휴직이나 병가 등으로 5명 내외는 연습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공연 때도 단원 전부가 참여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현대춤 단체로는 큰 단체죠.
김수현 _ 전북도립무용단은 전북도립국악원 안에 무용단이 있습니다. 전북도립국악원 아래 관현악단, 창극단, 무용단 각각 분리돼서 운영되고 있어요. 무용단은 사물놀이를 하는 4명을 포함해서 저까지 23명입니다. 무용단원은 29명까지 가능해서 내년에는 더 충원할 예정입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올해 30주년이에요. 그래서 10월에 3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988년 도립국악단이 창단된 것으로 따지면 후년 2018년이 30주년이에요. 상황이 된다면 그때를 겨냥한 작품 준비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정기헌 _ 그러면 전북도립국악원무용단은 무용단 자체 공연도 하고, 창극과 같이 국악원 내의 단체와 합동 공연도 하시는 건가요?
김수현 _ 네, 두 가지 공연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전북도립국악원 30주년을 맞아 창극을 위주로 하는 합동 공연으로 「이성계 해를 쏘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순주 _ 광주시립발레단은 우리나라 유일의 시립발레단이에요.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는 유서깊은 발레단임에도 아직 발레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 작품이 확립되지않아 아쉬웠습니다.
단원은 약 40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정상 그만 두거나 몸이 아파서 쉬고 있는 무용수들이 있어서 현재 출근하는 단원은 35명 정도 됩니다. 우리 무용단이 역사가 좀 긴 편이라 무용단에서 오랫동안 춤을 추고 있는 무용수들이 많아요. 그래서 무용수들의 나이가 좀 많은 편인데, 평균 연령이 30대 후반이에요. 그런데 사실 발레는 힘이 있어야 출 수 있는 무용이잖아요? 한 20대 중반에 시작해서 30대 중반까지 무용수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 나이 대의 젊은 무용수들이 좀 부족한 편이에요. 그래서 대작을 올릴 때는 춤을 출 수 있는 무용수가 부족한데, 충원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돼요. 왜냐하면 시에서 주는 예산이 워낙 작기 때문이에요. 갈수록 공연 규모는 커지면서 작품 제작비는 많이 들고, 반면에 인건비 예산은 추가로 지원되지 않는 거죠. 시와 이런 문제에서 좀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이런 부분이 해결되어야 좋은 무용수들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기헌 _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산 규모는 그리 넉넉하지 않을 텐데요. 시도의 예산상황에 따라 축소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예산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무용단이 시의 문화예산만으로 운영되는지, 아니면 기업체 등과 협력 관계가 있는지요? 또는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일부는 후원을 따로 받아서 운영하는지 궁금합니다.
신순주 _ 시립단체 같은 경우는 다 같은 사정이겠지만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어요. 그러니까 시민의 세금을 가지고 운영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무용단 자체적으로 돈을 버는 행위를 해서도 안 돼요. 또 후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재단이 있거나 하지도 않아서 다른 후원은 전혀 받을 수 없어요. 그야말로 시에서 주는 예산만으로 운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예산이 굉장히 작죠. 비교 대상이라면 국립발레단이나 유니버설발레단 등은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후원을 받을 수 있어요. 또 수익사업을 할 수 있으니 단체가 돈을 벌어서 쓸 수 있지요. 하지만 시립 무용단은 그런 것이 전혀 안 되기 때문에 어떤 사업을 크게 벌이면서 추진하기가 좀 힘들어요.
정기헌 _ 평생회원제도나 후원인 제도 등을 운영할 수 없나요?
김수현 _ 네, 그런 것을 할 수가 없어요. 제약이 많은 상황입니다.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걸 받아서 올릴 수 있는 조례가 없어요.
홍승엽 _ 밖에서 아는 것만큼 상황이 좋지 않아요. 무용단을 활성화시키기가 굉장히 어려운 형편이에요. 후원금 자체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없어요.
김수현 _ 우리 단체 역시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애초에 세운 예산안 안에서 최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 방법만 찾고 있어요. 외부에서 부족한 예산을 채운다든가 그런 활동은 문제가 되더라고요.
홍승엽 _ 대부분의 시립, 도립 단체는 예술회관이나 문예회관 등과 같은 상위기관에 소속된 단체들이에요. 그 기관 또한 독립된 재단법인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김수현 _ 공연 때 공연 예산비가 적어서 잘 모르고 후원을 좀 받겠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물적 후원이나 인적 후원을 받았다가 도로 물린 적이 있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한 번도 열어 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요.
정기헌 _ 후원을 받으려면 재단법인이나 어떤 형식으로든 독립된 구조가 되어야겠군요.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 소속에 있다가 재단법인으로 전환한 것도 대단한 일이었군요.
홍승엽 _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은 재단법인이고 국립무용단은 국립극장 소속이죠. 재단법인과 비재단법인의 시스템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으로 있었을 때 단장이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현대무용계의 몇몇 분들이 난리가 난 거예요. 국립현대무용단은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정관에도 예술감독이 단체를 대표한다고 되어 있어서 예술감독을 단장이라고 호칭한 것인데, 많은 분들이 직책의 호칭 근거를 몰랐던 거죠. 시·도립 단체의 경우에는 시장이나 부시장이 단장을 맡습니다. 그러니까 예술감독 위에 문예회관의 관장이 부단장인 경우가 많고, 그 회관의 윗선인 행정기구의 최종 결정자인 시장이나 부시장이 단장을 맡는 거죠.
신순주 _ 네, 조례 상 그렇게 되어 있는 거죠. 광주시립발레단은 단장이 부시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김수현 _ 전 단장으로 불리고있어요. 우리는 단장보다 예술감독이 더 큰 상위개념인거 같던데요. 단장에서 예술감독으로 개칭해서 사용할 것을 요청했더니 안된다고 하는데, 3단을 총괄할 개념으로 예술감독이 조직도에 있더라고요.
홍승엽 _ 내년에 대구시립무용단이 홍콩 초청 공연을 요청 받았는데, 홍콩 측에서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서명을 받아서 보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건 예술감독의 서명을 받을 사안이 아니라 예산 집행을 결정하는 관장의 서명을 먼저 받고, 예술감독인 내가 협조 서명을 하겠다고 정리했어요. 그러니까 그런 행정적인 부분을 잘 알고 있어야지, 잘 모르고 예술감독이 덜컥 일처리를 했다가는 그 책임을 지기 힘든 부분이 있어요.

단원 개개인의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활동을 응집해서 끌어내야
정기헌 _ 이번에는 무용단체를 맡으시면서 단체에 들어가기 전에 바깥에서 본 모습과 들어가서 함께 활동하면서 본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말씀해 주세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 테지만, 바깥에서 볼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지역 단체에 들어가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원래 연고가 있었는지요?
홍승엽 _ 저는 대구에서 초등학교까지만 다녔어요.
정기헌 _ 그래서 ‘대구로 돌아온 홍승엽’ 이런 기사가 올라왔군요.
신순주 _ 초등학교까지 나왔으면 사실 큰 연고는 아닌데요?
홍승엽 _ 그래도 고향이니까 연고죠.(웃음)
정기헌 _ 신 감독께서는 무용단을 밖에서 보셨을 때와 단체장으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들어가셨을 때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요? 아니면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신순주 _ 저는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발레를 하고 대학을 서울로 왔는데요. 광주는 옛날부터 발레의 본고장으로 우리나라에서 발레 인구가 가장 많았고 활성화돼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50대, 60대의 광주 출신 교수님들도 상당히 많고, 무용수도 많아요. 그래서 광주 출신의 발레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어요.
정기헌 _ 광주에는 유명하고 큰 규모의 발레 학원이 있다면서요.
신순주 _ 네. 우스갯소리로 세 라인이 있었어요. 광주에서는 발레 쪽에 먼저 학원을 만들어서 활동하신 엄 선생님, 박금자 선생님이 엄청나게 대단하신 분들이었죠. 박금자 선생님은 광주에 시립발레단을 처음 만드셨고, 광주에 발레를 뿌리내리게 한 분이세요. 저는 광주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활동을 하다가 다시 광주로 내려와서 살면서 광주시립발레단의 공연을 많이 봤어요. 제가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을 비교하면서 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게 광주시립발레단에 좋은 인재가 부족하다는 점이었어요. 그렇다면 서울의 실력 있는 무용수들이 내려올 수 있는 기회가 있거나, 좋은 안무가나 선생들을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문이 열려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랬으면 광주시립발레단이 좀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광주가 발레의 본고장이라고 할 만큼 발레를 하는 인구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40년의 역사를 지닌 발레단이 너무 뒤쳐져 있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제가 광주시립발레단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발레단 문을 오픈한 거예요. 서울에 있는 무용계 인사들에게 내가 광주시립발레단에 갔으니 좋은 무용수들 있으면 내려와서 같이 활동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또 좋은 안무가 선생들께는 비록 급여는 많이 못 드리지만 와서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외부 트레이너 교사들도 많이 불렀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보시고 칭찬해 주시니 스스로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기헌 _ 국악원 안의 무용단은 또 다른 분위기일 것 같아요.
김수현 _ 그렇죠. 국악원의 무용단인데, 제가 창작을 좀 많이 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갔어요. 그런데 가서 보니 실질적으로는 국악원이라는 정체성을 살리는 게 가장 크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정기 공연은 창작 작품을 하고, 일반 지원공연이나 상설공연은 민속 작품을 하는 식으로 나눴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재인 궁중무용까지 포함시켜서 세 다리가 정확하게 다 서 있는 그런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정기 공연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뭔가를 하려면 여분의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또 모든 예산이 무용단 자체 예산이 아니라 기획실 예산으로 편성되어 있어서, 무용단이 뭔가를 기획해서 공연을 진행하려고 해도 예산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고 해서 바로 원장께 협의요청을 했어요. 도립무용단에 자체 예산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무용단이 단원들에게 그 많은 월급을 주면서 어떻게 정기공연 1회와 지원공연만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용단 자체로 활동할 수 있는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연말에 내년 예산을 편성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특별 기획공연 예산을 편성해서 요청했어요. 그래서 기획공연 예산 5천만 원을 받았어요. 정말 2년을 별러서 하게 된 사업이죠. 올해 처음으로 궁중 정재를 바탕으로 한 『왕의 순행』이라는 기획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은 민속 작품으로는 지역에 계시는 인간문화재 분들의 춤을 흡수해서 전북도립무용단이 지역의 문화재 춤인 『호남살풀이』, 『호남한량무』, 『호남산조』 등을 작품으로 올릴 수 있는 틀을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 정재로는 「악학궤범」에 전해져 온 『정재무』 외에 전주지역정재라고 할 수 있는 『금척무』까지 다 보유할 수 있게 하고, 또 창작으로는 전체 소재는 아니겠지만, 지역의 레퍼토리를 찾아 작품을 올리려고 합니다. 올해 기획공연까지 올리면 제가 처음 부임하면서 계획했던 세 파트는 다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 30주년이 끝나고 나면 내년에는 그 모든 걸 다 통틀어서 지역의 하이콘텐츠 레퍼토리를 발굴해내는 쪽에 중점을 두고, 전북지역 내 타 단체들과 연합 작품을 하는 무용단의 공연기회를 가져보고 마무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헌 _ 민속춤도 하고, 정재도 하고, 창작도 해야 하니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김수현 _ 그래서 최고점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지금은 기반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놓는다는 쪽으로 목표를 잡고 있고요. 그 다음으로는 우리 무용단이 30년이 되다 보니까 이제 연륜 있는 중견 무용수들이 제법 많아요. 그런데 그 중견 무용수들이 무용수로만 자리 잡고 있는 것보다는 다른 부분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적어도 수석 무용수나 무용단을 대표하는 중견 무용수에게는 한 시간 정도의 공연 레퍼토리를 만들게도 하고, 그 작품을 진행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주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춤은 무용을 하면서 자기 것을 만들어 내는 그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신만의 무용과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 작품을 충분히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자기가 몸담은 단체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기 이름을 내세워서 작품을 만들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런 틀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에요.
정기헌 _ 홍 감독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퇴임하고 1~2년 공백이 있었지요?
홍승엽 _ 공백이 있었어요. 독일에 안무 차 잠깐 갔었고, 다녀와서 한 1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죠. 2013년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퇴임하고, 2015년 11월에 대구시립무용단에 다시 들어갔으니까요.
그런데 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게 저는 ‘댄스시어터 온’이라는 민간 무용단체를 17년간 했어요. 그 다음에 국립현대무용단을 맡았을 때 상주단원이 없는 프로젝트 단체였어요. 아직도 현대무용계에서는 상주단원을 만들라는 목소리가 클 거예요. 하지만 저는 현대무용은 절대 상주단원 체제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로서는 국립현대무용단이 프로젝트 단체 인 것을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후 독일에 가서 또 다른 체제의 무용단을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그게 아마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연간계약 또는 기간제 계약 단원 체제일 거예요. 그리고 다시 대구시립무용단에 와서 또 다른 시스템의 상주단체를 경험하게 됐어요. 그렇게 무용단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들을 두루 경험하게 된 거죠.
정기헌 _ 외국의 상주단원 시스템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홍승엽 _ 외국에서는 주로 1년 2년 3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계약기간 동안은 단원으로서 철저하게 보장을 받아요. 그렇지만 계약기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평가받고 재계약이 이루어져요. 그러니까 음악같은 장르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번 들어가면 정년이 보장되는 정년제와는 전혀 다른 거죠.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프로페셔널 무용단의 질서가 잡히기 전에 시·도립 여러 단체들이 만들어 졌는데, 그런 무용단에서 무용단원들이 자기들의 여러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노조가 만들어져야 했을 겁니다. 저는 무용단 노조의 존재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용단의 상위 노조가 예술가나 무용가와는 전혀 무관한 성격의 노조라는 점이에요. 상위 노조는 운수노조라던지 금속노조 등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나 예술가의 정서와는 크게 벗어난 내용과 형식의 교섭투쟁 방식을 보여줍니다.
물론, 무용단이라는 조직에서 생길수 있는 문제를 노조가 있음으로 해서 사전에 견제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김수현 _ 보통 무용수들이 무용단에 들어가기 전에 사적으로 활동을 했잖아요. 사적으로 활동하면 솔직히 무용에 마음과 목숨을 다 걸고 덤벼서 활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무용단에 그런 마인드로 가서 하다가 호되게 일을 겪었는데, 그건 절대 안 되는 것 같아요.
홍승엽 _ 그렇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어디까지인가를 잘 파악하고 일을 해야합니다.
정기헌 _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한다는 것이 외부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것과 개념이 다른 것 같아요. 물론 단체이기 때문에 가능한 긍정적 예술활동도 있겠지만, 제가 국립단체 주역으로 활동한 무용수와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아주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이야기 하더군요. ‘어떻게 내 돈 들여서 작품을 만들어요?’ 이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놀랍고 예술활동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데도 이런 사고가 있구나 놀랐었습니다.
홍승엽 _ 단체에 소속돼있지 않고 프리랜서로 움직이는 사람의 환경과 단체에 소속돼있는 사람의 환경은 너무나 다릅니다. 단체에 소속돼있지 않은 사람들이 직업무용단 소속의 단원들을 보면 정말 저 사람들은 귀족질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무용단에 있는 단원들의 입장에서는 무용단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활동해온 것은 당연히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받은 거예요. 그들에게 힘들게 활동하는 다른 무용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만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단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책임감있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단원의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 무책임한 단원도 있기는 합니다.
신순주 _ 네, 분명히 맞는 말씀인데, 정기헌 선생이 말씀하신 그 무용수는 본인이 무용단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소속 무용단의 지원이 있는 경우에만 한다는 것이지요.
정기헌 _ 단체 밖에 있는 무용가의 입장에서 생각한 거죠. 그들은 돈을 못 받는다고 작품 활동을 안 하지는 않잖아요. 작품을 하고 싶은 열정이 있으면 어떻게든 끼워 맞춰서 작품을 올리는 거지요. 그런데 그 무용수는 지원받지 않으면 할 생각이 없었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했다고 하니 깜짝 놀란 거죠. 그렇게 관점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수현 _ 앞으로는 그렇게 안정적인 지원 하에서 작품 활동해야 되는 게 맞는 거긴 하죠. 그게 우리가 바라는 바죠. 그런데 이건 우스갯소리인데, 보통 일반 단체에서는 우리가 공연할 때 개인 차량으로 이동을 하잖아요? 그런데 무용단에서 나오는 차량으로 이동하는 게 힘들 때가 있어서 개별이동을 상의할 경우, 결국 차량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죠. 일반단체와 직장의 차이점이예요.
홍승엽 _ 그건 우리가 무용계에 있으면서 어르신들한테 배워 온 것과는 굉장히 다른 사고방식입니다. 이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직장인으로서 생활을 한 거예요.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 왜 내 돈을 써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문제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일반 회사를 생각해 보면, 그 부분에서 우리가 화살을 들이대거나 그럴 일이 아니라는 거죠.
김수현 _ 잘 모를 때는 그런 부분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는데 이제는 그 생리를 아니까 그것부터 진행해주고 있어요. 하다못해 슈즈 하나까지도 다 챙겨서 줘야 되는 상황이에요. 그런 건 이제 이해하니까 해주려고 하는데, 또 그렇게 지원하는 만큼 단원들도 열성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기헌 _ 지원은 세심하고 정확하게 해주고,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활동은 응집해서 끌어내야 겠죠. 무용단은 시에서 예산을 지원받고 그 예산 안에서 살림을 운영하는 건데, 시 지원에 있어서 특별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신순주 _ 저는 광주시립발레단에 가자마자 진짜 목청 높여서 예산을 요청했는데, 다행히 관장의 결정으로 예산 지원 폭을 확 넓혀서 몇 천 만원의 예산을 받게 되었던 부분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예술활동과 시·도립무용단의 구조
정기헌 _ 자, 지금 단체의 현황에 대해서는 얘기를 충분히 들어봤다고 생각 되고요. 이제 예술 활동과 단체의 운영에 대한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홍승엽 _ 시·도립무용단 예술감독들이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럴 때 우리가 대외적으로 어떤 색깔을 내보이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술감독들이 굉장히 조심을 많이 해요.
신순주 _ 우리 발레단이 올해 『봄의 제전 G.』라는 대작을 공연했어요. 정말 좋은 안무가와 전문가들을 모시고 안무를 해서 돈이 무척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한국 창작 작품으로 대작을 만들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가 받아 놓은 1억 예산으로는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택도 없는 거예요. 좋은 감독님을 모시기도 힘들고, 영상이나 조명감독은 아예 부를 수도 없고, 예산에 맞추려면 우리끼리 알아서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예술감독이 뛰어다니면서 행정 부시장과 문화실장을 만났어요. 그냥 무조건 찾아가서 계속 방문을 두드린 거죠. 찾아 가서 광주를 대표하는 시립발레단의 한국 창작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기획안으로 꼭 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이 정도 작품성이 있는 공연을 해야만 광주 발레의 수준이 올라가고, 광주 예술을 알릴 수 있다고 말했죠. 그런데 지금 받아 놓은 예산 1억으로는 절대 할 수 없고, 2억 원만 더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으로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쫓아갔어요. 1억 원 예산에 맞추려고 작품 수준을 낮출 수는 없으니 지원을 적극 요청한 거죠.
그런데 사실 우리 문예회관 관장 자리도 보면 예술계에 종사하시던 분이 아닌 공무원 분들이세요. 또 수시로 바뀌어요. 이번에도 관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무조건 가서 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번 찾아가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꼭 이 규모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우리 시립발레단이 꼭 해야 한다고 설득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시에 직접 가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관장님이 의회에 가서 이야기를 하셔야 하니까요. 그렇게 자주 찾아가서 제가 귀찮게 하니까 시립단체 중에 제가 관장님께 제일 이미지가 안 좋아요.(웃음)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승인을 받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시에서 특별히 예술단체를 생각해서 뭔가를 해주기보다는, 예술감독의 능력으로 가서 지원을 요청하고 이야기를 해야 일이 추진되는 것 같아요.
홍승엽 _ 예술감독이 단체의 행정, 경제적인 것까지 다 커버하는 매니저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데 저는 현재로서는 그런 역할은 하지 않고 단원통솔과 기획방향설정 그리고 작품안무만 하고 있어요. 외부에서 누가 와서 만나자고 해도 가급적 안 만나고 단원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사무실도 단원들에게 내주고, 저는 무용실 안에다 내 책상을 갖다 놓고 일하고 있어요.
어떤 역할을 하는 게 더 좋고, 더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지역 또는 그 기관이 요구하는 방향과 범위에 따라 예술감독의 역할이 달라진다고 봐요. 그 기관 시스템과 예술감독의 궁합이 잘 맞으면 어떻게든지 조금씩 발전해 갈 거예요. 그러니까 광주 시민들의 예술적인 요구가 자꾸 올라오는 것 같아요. 신순주 감독이 단체의 문제에 있어 비즈니스로 뚫고 나가야 하는 부분에서 역할을 너무 잘 해주고 계세요.
김수현 _ 얘기를 안 해서 그런 거지, 그 안에서 그런 트러블 있으면서도 그냥 가는 거예요.
신순주 _ 그런데 사실 제가 작품은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해서 지원금 확보하러 다닌 거예요.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면서 지원금을 달라고 하소연 한 건데, 홍 감독께서는 지원금이 부족하지는 않으신가요?
홍승엽 _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대구시립무용단에서 제일 힘든 게 뭐냐면, 하반기에는 규모있는 작품을 공연할 기회가 없다는 거예요. 상반기가 끝나고 이미 예산은 다 썼으니, 단원들 클라스 시키고 하반기에 있는 단원작품공연을 준비하게 하고 나는 손가락 빨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나는 움직여야 하고, 무용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이게 제일 힘들어요. 인건비 지출은 아주 크고 거기에 비해 작품비나 공연비는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김수현 _ 다음 년도 예산 세울 때 그걸 신청할 수 없나요?
홍승엽 _ 이걸 이렇게 요청하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서면 내가 움직일 겁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식으로 아무리 움직여도 답이 없겠구나하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이 서면 굳이 움직여서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정기헌 _ 그러면 내년과 올해의 예산이 매번 비슷하게 나오겠군요.
홍승엽 _ 그런데 사실 저는 예산 부분이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이미 많이 변화를 만들었어요. 다른 문제를 가지고 계속 뒤흔들고 있었단 말이에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여기 저기 들쑤셨다가는….

지역을 대표하는 무용단, 지역을 상징하는 작품이란
정기헌 _ 지금까지 무용단 구조에 대해 이야기는 나누었는데 이제 예술 작품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늘 어떤 지역을 대표하는 예술단체가 가지고 있는 컨텐츠가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거나, 지역 문화적 소스를 가진 예술작품을 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그런 작품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전북에서‘매창’이라는 작품 하셨잖아요? 지역에 전해 오는 옛 역사 속 인물을 바탕으로 해서 작품을 만드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주도에 있는 무용단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그 작품으로 인해 제주를 찾게 하는 이유가 된다면 너무 멋진 일일 거라 생각해요. 각 예술단체에서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나 구상하는 작품 중에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 있다면 좀 소개해 주세요.
신순주 _ 이번에 『봄의 제전 G.』 기획하면서 일이예요. 한국 창작 작품을 만들 때 안무가가 저에게 ‘광주만이 갖고 있는 소재로 작품을 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한국 창작의 공통적인 소재를 갖고 작품을 하길 원하는지’ 물어봤어요. 사실 요즘은 말 한 마디만 해도 세계로 쫙 퍼지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시대에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우리 광주는 ‘민주항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광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주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내에서나 다른 나라에서도 아픈 역사를 가진 도시로만 비춰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특히 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광주 5.18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봐.’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저는 그게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통해 ‘광주에 이런 한이 있어요. 광주가 이렇게 민주화 운동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됐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나는 예술인이기보다는 정치가가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을 그렇게 풀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공통적인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무용단이 공연한 『봄의 제전』에는 스토리는 같지만 거기에서 표현하는 것은 다 달라요. 같은 소재라도 춤이 다르고, 어떤 내용으로 풀어내느냐가 중요한 거죠. 광주시립발레단이 하는 『봄의 제전 G.』는 광주시립발레단만의 ‘봄의 제전’인 거죠. 그 작품을 보고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훌륭하다는 평가를 해줬을 때, 다른 사람들도 ‘그 발레단이 어디 있어?’, ‘광주에 있어’, 그러면서 광주시립발레단의 작품을 통해 광주라는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될 거라고 봐요. 그렇게 작품을 통해 광주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작품 창작을 해왔어요.
김수현 _ 우리 무용단의 30주년 동안 한 활동 중에 지역적인 소재를 갖고 했던 걸 보면, 특정 인물보다는 지명이나 지역 색깔 등을 다룬 작품이 많아요. 그 외에는 인간사에 관한 작품들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지역 역사를 다룬 중요한 작품으로 ‘동학혁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어요. 지역적인 소재나 역사를 다룬 무용 작품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예술적인 면을 보여주고 꿈을 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지 못했던 화려함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매창』이라는 작품을 할 때 우리 지역의 인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외부의 유명한 인물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그 지역에 중요한 인물이 있다면 지역민들이 잘 알고, 또 귀하게 여기면 좋을 것 같았어요. 또 그 인물을 전국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매창』이라는 작품을 만든 거죠. 저도 그 인물을 잘 몰랐는데, 다른 분께 추천을 받고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 정말 매력이 많은 인물이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몇 년 전에 국립무용단에서도 김현자 선생이 ‘매창’을 소재로 작품을 하셨더라고요. 저 역시 지역의 인물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하고, 우리 무용단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그런데 개인의 인물사에서 끝나지 않고,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역까지 포함해서 백제권까지 조망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렇게 지역 레퍼토리가 시작된 거죠. 그런데 『매창』을 하고 나니 ‘이 소재로도 작품을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왜냐하면 도립무용단의 역할이 전북과 호남권을 다 포괄하다 보니 우리 무용단이 특정지역 소재로 작품을 만든 것의 여파가 상당히 큰 거예요. ‘매창’이 원래 부안 사람이어서 부안 군수도 보시고 지역 소재를 활성화 해줘서 고맙다고 제작진과 무용수들에게 식사도 내셨어요. 또 지원을 통해 이런 공연은 서울에 가서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의견도 피력하셨어요. 결국 예산 편성이 안되어 별도 공연 진행은 못했지만, 서울시와의 교류공연으로 구로아트밸리에서 축약된 『매창』 하이라이트를 공연하긴 했어요.
지역에 보면 좋은 소재들이 참 많은데, 이런 소재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잘 엮어서 작품성 있는 공연을 만들어 내는가가 더 중요해요.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지역적인 소재를 갖고 공연을 개발해 놓으면 다음에 어떤 예술감독이 오더라도 거기에 또 다른 소재를 보태서 차츰 지역 레퍼토리들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홍승엽 _ 김수현 단장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니까 무엇을 하느냐보다는 그것을 어떤 예술가가 얼마나 훌륭한 예술적인 깊이로 다뤄서 관객과 공감을 해내느냐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각 시·도립 단체가 그 지역과 연관성이 있는 소재를 끌어들이는 것은 중요해요. 그런 소재는 시·도립 단체가 아니면 하기 힘들거든요.
지역 예술가들은 지역사회를 위해서 할수 있는 역할에 대해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지역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역할을 잘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로지 지역소재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용단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기헌 _ 소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고,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네요.
홍승엽 _ 그렇죠. 예전에 너도 나도 현대 무용에서 향 피우고 이럴 때 제가 모 무용가에게 ‘우리나라의 정서나 소재는 좋은 게 너무나 많다. 그런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안무가가 그 소재들을 함부로 갖다 써서 그 좋은 우리 것들이 싸구려로 소비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지역적인 소재들도 마찬가지에요. 예술가가 그 소재를 갖다가 정말 진실성을 갖고 심도 있게 다룰 자신이 없으면 아예 다루지를 말아야 돼요. 관객을 애향심만으로 선동하는 거라면 박수는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작품이 관객에게 예술적 감동을 경험하게 하기는 힘드니까요.

세대와 함께 변화해가는 단체장의 위상과 역할
정기헌 _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는 지금 계신 단체로 가셔서 1~2년의 시간이 지났죠. 단체 밖에서 작품 안무도 하시고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단체에 들어가서 같이 작업을 해보시니 어떠신가요? 대화도 많이 나누셔야 할 테고, 그래도 충돌하는 부분도 있을 텐데 진행 과정에서 그런 것은 어떻게 풀어 가시는지요? 또 예술감독으로서 자신의 예술적 지향을 갖고 작품을 하시는데, 기존에 그 단체가 갖고 있는 분위기나 지향과 충돌하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재미있게 서로 융화할 수도 있겠죠. 그런 부분을 토론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수현 _ 대화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홍승엽 _ 제 생각에는 지역에서 열심히 하시는 많은 예술감독들이 한 6개월 정도 단원들과 큰 전쟁 벌이지 않고, 또는 전쟁이 있더라도 발전적인 부분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훌륭한 거예요. 예술감독직을 잘 수행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예술감독이 새로 부임했는데 아무 충돌도 없이 온 동네가 조용하고, ‘거기 누가 있기는 해?’ 이렇게 되면 적응력만 너무 좋은 것이 아닐까요?(웃음)
김수현 _ 우리 무용단은 전주에 위치해 있다는데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완전히 그 안에서 고립되는 지역적인 입지에요. 그렇다 보니 솔직히 골치 아픈 일을 안 만들려면 그냥 그 안에서 주어진 것만 하고,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으면 돼요. 제발 일 좀 만들지 말라고 하면 얌전히 시키는 것만 하고, 단원들이 원하는 것만 해주고 있으면 다들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분위기예요. 이런 분위기를 깨려면 많은 대화가 필요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타당성을 설명하고, 단원들은 크게 필요하지 않겠지만 타당성과 의미를 공감하고 한 번 같이 해보자고 말해야 하는 거죠. 화두를 던져 놓고, 그동안 우리가 너무 등한시했던 부분을 채워나가자고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우리도 한 번 저 속으로 들어가 볼까?’ 하면서 끌어내야 하는 게 필요해요.
홍승엽 _ 개인적으로 저는 무용단의 가장 중심은 무용수라고 생각해요. 예술감독이 중심이 아니에요. 하지만 중심인 무용수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예술감독에 달렸어요. 예술감독이 불쏘시개 역할로 자꾸 자극을 주어야 하는데, 예술감독의 능력은 다 다를 거예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예술감독은 모든 무용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용단원의 3분의 2 이상에게는 공감을 얻어요. 그래서 ‘저 예술감독이 옳다.’, ‘저 예술감독이 자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 우리 단체를 잘 되게 하려는 거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 단체는 움직여요. 하지만 무용수들이 ‘예술감독이 자기 욕심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예술감독이 아무리 명분 있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떠벌려도 무용수들은 움직이는 척만 합니다. 다 각자의 욕심으로만 존재하고 움직일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예술감독은 일단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단원들에게 공감을 얻어야 해요. 그게 말이건, 행동이건, 정말 땀 흘리면서 발 벗고 뛰면서 뭔가 보여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용수들은 마음을 열지 않아요.
김수현 _ 우리가 흔히 단체장이라고 하면 엄청난 파워와 카리스마, 독재력을 가지고 운영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과거 우리 앞 세대 분들은 그런 역할을 했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 2세대들은 그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지금처럼 단장이나 예술감독이 새로 부임해오는 개방형이 되면서부터는 많은 사람들을 겪은 무용수들이 훨씬 많은 것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갖게 됐지요.
그래서 이제는 단장이나 예술감독과 무용단원이 상하 개념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단장이나 예술감독도 인간으로서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무용단원도 이런 것은 받아야 한다는 거죠. 서로 인간적으로 소통해서 단장의 역할을 정하고, 자신들의 권리도 주장하는 식이에요. 옛날처럼 예술감독이 와서 강제하고 억압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이제는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홍승엽 _ 대전에서 시·도립무용단 운영에 대해서 토론을 한 번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떤 분이 예술감독이 단원들을 이끄는 데서 역할을 못한다, 예술감독의 문제가 크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에 제가 한 말씀 드렸어요. ‘제가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무용수를 잘 뽑고 평가를 잘 하라고 하는데, 평가를 통해 부족한 무용수를 퇴사시켰다고 봅시다. 적지 않은 경우 그 무용수가 피켓을 들고 부당한 해고라고 1인 시위를 하게 됩니다. 1인 시위에 들어가면 언론에 노출되고, 시에도 보고가 되겠죠. 그러면 시에서는 경위를 알아보라고 하겠죠. 그 순간부터 기관의 행정 라인은 업무량이 엄청나게 많아져요. 보고도 해야 하고, 책임소재도 가려야 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분주해 지는 거죠. 그러면서 결국에는 예술감독 계약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파악하고, 왜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대부분의 예술감독들은 그런 과정을 이미 겪었거나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얼마나 많은 예술감독이 소신껏 움직이고 부딛혀 나가겠어요?
김수현 _ 예술감독은 전체 조직의 일부분이에요. 제도와 기존 단원들 안에서 고립되어 있는 게 단장이나 안무자의 상황인 것 같아요.
홍승엽 _ 밖에서 보는 시각과는 크게 다릅니다. 무용수 입장에서 예술감독이 마음에 안 들면 조금 시끄럽게 해서 버티면 다음에 그 예술감독은 재계약이 힘들게 되는 거예요. 그게 뭐 그렇게 어렵겠어요?(웃음)
김수현 _ 계약 부분을 넘어서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피폐해지는 부분이 생겨요. 큰 조직과 단체 안에서 예술감독은 혼자서 싸워야 하거든요.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혼자서 그 많은 시간을 버텨내야 하니까 잘못 하면 인간이 망가질 수도 있어요. 보통 정신력 갖고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연고가 없는 지역 단체에 가면 더 고립감을 느끼고, 마치 외딴 섬에 있는 상황이 되는 거죠.
홍승엽 _ 대부분의 단원들은 이런 제도에 이미 적응이 되어 있어요. 또 조직은 그 흐름을 유지하려는 기조가 있어요. 그런데 예술감독은 많이 달라요.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달라야 하는 것이고, 다르지 않으면 예술이 아닌 거죠. 달라지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이 예술가인데 그런 사람이 변화할 의지가 약한 조직에 혼자 딱 들어가 있는 거예요. 다행히 현재의 시·도립무용단의 예술감독은 세대교체가 많이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단체 안에서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무용수들도 자극을 많이 받고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거죠.

예술감독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틀을 구축하는데 힘을 모아야
정기헌 _ 오늘은 시스템 문제가 중요한 이야기로 나오고 있네요. 그런데 예술감독 임용 기간이 2~3년 정도인데, 이 기간에 뭔가를 펼치기에는 짧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도립단체가 가지고 있는 예산운용 방식이나 정규 단원과 객원 무용수 비율, 구조적인 개선점 등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 꽤 많겠네요. 그리고 바꾸고자 한다고 해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뭔가 변하려면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겠는데 단체 속에서 활동하고 계시니 바뀌었으면 하는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홍승엽 _ 일반적으로 단체들은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정기헌 _ 원래 조직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공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구조를 지키려고 하겠지만, 예술감독들께는 뭔가 좀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지 않을까요?
김수현 _ 그게 어떻게 보면 참 위험한 생각일 수 있어요. 지자체나 여러 단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봤을 때, 참 골치 아픈 문제들이 있어요. 아까 말씀하신 객원을 더 많이 쓰고, 정규 단원을 비상임 단원으로 돌렸을 때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요. 지자체에서는 고용의 폭을 넓히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 온 예술감독에게 그런 부분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술감독이 그걸 받아들여 성실히 수행하게 되면 단원들의 반발을 사게 되는 거예요. 정규 단원에서 비상임 단원으로 가게 되는 사람은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모든 책임을 관에서 지는 게 아니라 예술감독이 지게 돼요. 결국 감독이 사표 내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신순주 _ 정규 단원이 비상임으로 갈 수가 있나요?
김수현 _ 우리 단체는 아니지만, 오디션을 통해서 인원조정 할 수도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비상임 단원이 된 사람이 피켓 시위 등을 하도록 그냥 두는 거죠. 그럼 또 그런 상황을 활용해서 예술감독 재계약을 안 하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런 상황을 이용하는 거죠. 예술감독은 왔다가 가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용되는 예술감독이 있으면 무용계의 엄청난 손해고,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되는 일이에요. 예술감독이 그런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정신적인 소모가 엄청나게 큰 거죠.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예술감독이 들어가서 조직을 바꾸기보다는 그 단체를 관할하는 관청에서 알아서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예술감독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틀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감독이 조직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수 있어요.
신순주 _ 우리 무용단의 무용수가 35명인데, 실제로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20명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대작을 공연하게 되면 최소한 무용수가 40명 정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객원 무용수를 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문제는 객원 무용수들에게 지급할 비용이 공연 예산에서 나간다는 거예요. 공연에 쓸 돈이 줄어드는 거죠. 그래서 부시장께 건의해서 정규 단원을 뽑지 않는 대신 인건비에서 객원 무용수 비용을 지급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요. 제도를 바꿔 달라고 했지요. 기존 조례를 보면 비상임 단원의 경우 수석 무용수라 하더라도 최대 80만 원 정도 밖에 급여를 지급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서울 등에서 무용수를 데려 오면 적어도 100만원은 넘게 줘야 광주까지 내려와서 한 달 가까이 지내면서 공연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조례에서 그 부분을 바꿨어요. 비상임에 상응한 돈을 지급하되, 예술감독의 권한으로 150만 원까지 맞춰서 지급할 수 있게 바꾼 거죠. 그 문구 한 줄 바꾸는데 몇 달 걸렸어요.
김수현 _ 빨리 해 준 거예요. 문구 하나 바꾸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시도의회에 가서 승인을 거쳐서 해야 돼요.
신순주 _ 어쨌든 그 문구를 바꿔서 객원 무용수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노조에서 그걸 알고 단원 자리가 나오면 정규 단원을 뽑아야지 왜 자꾸 객원 무용수만 쓰냐는 이런 식으로 말도 나오기도 했어요.

해외 교류 선두단체로서의 시·도립무용단의 활동에도 충실
정기헌 _ 현재 각 무용단에서 다른 시나 도, 또는 해외의 다른 도시와 연계해서 하는 프로그램은 어떤 게 있나요? 또 자매결연 맺은 다른 나라나 도시가 있나요?
신순주 _ 우리는 중국 광저우와 교류하고 있어요. 올해로 교류 20주년이에요. 이번 9월에 우리가 『봄의 제전 G.』 작품을 갖고 가고, 10월에 광저우발레단과 가무단이 광주에 와서 공연을 합니다.
김수현 _ 전북도립국악원이 속해있는 전라북도는 해외지역 교류를 맺은 지가 오래 되었어요. 중국 남경과 20주년, 일본 가고시마현과 40주년으로 지난해 교류 공연을 다녀왔어요.
홍승엽 _ 우리는 지난 해 일본에 다녀왔어요. 일본 무용계의 황태자인 가나모리 조가 저를 초청했어요. 중국과 홍콩을 다 아울러서 페스티벌 등을 관장하는 예술감독인 윌리 차오와 가나모리 조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모여서 같이 세미나와 식사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나모리 조에게 너무 고마워요. 가나모리 조는 40대고, 나는 50대고, 윌리 차오는 60대에요.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쉽지 않고,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만남이 지속되도록 하자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일본 니카타와 대구, 중국 쪽과 계속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내년에는 대구시립무용단이 「홍콩페스티벌」에 갈 거고, 니카타 시립극장에 가서 공연할 거예요. 또 니카타에서도 우리나라에 올 거고, 내후년쯤에는 중국 팀이나 홍콩 팀이 대구로 오게 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쭉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우리가 만나서 한 이야기가 ‘이제 유럽이나 미국을 바라보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현대춤은 아시아에서 시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현대춤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개인의 능력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니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신순주 _ 다들 현대춤 전공이신가요? 「홍콩페스티벌」이 현대춤 페스티벌이에요?
홍승엽 _ 주로 현대무용 쪽을 하죠. 가나모리 조는 어릴 때부터 워낙 춤실력이 출중한 일본의 최고스타입니다. 윌리 차오는 홍콩댄스컴퍼니를 만든 사람이에요. 홍콩 뿐만 아니라 지금 중국에 여러 현대춤 페스티벌을 많이 관장하고 있죠.
김수현 _ 각 단체가 대외적으로 그런 교류활동을 하고 있고, 내적으로는 우리 세 단체가 올해부터 교류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초청을 해서 8월 18일에 익산예술의전당에서 3개 장르가 한 무대에 올라가는 교류 공연을 합니다.
홍승엽 _ ‘시·도립무용단 예술감독협의회’가 발족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공유가 되기 시작한 거예요. 사실 그 전엔 만날 일이 없었는데, 작년부터 여러 번 만났어요.
정기헌 _ 올해도 벌써 하반기로 넘어가는데,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소개 해주시죠. 또 재임 기간에 소속 단체에서 하고 싶은 작품이나 레퍼토리가 있으면 소개해 주시죠.
홍승엽 _ 한 단체의 예산이 대부분 인건비로 들어가요. 상주단원 체제에서 좋은 점은 제가 이렇게 한 6개월 정도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보여요. 작업을 한 번 하니까 보이더라고요. 집중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연습에 임해요. 프로젝트 단체와 상주단체라는 서로 장단점이 있는데, 그게 장르별로 달라요. 발레와 현대춤과 한국춤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이 다 달라요. 현대춤은 태생부터가 창조작업을 하는 예술이에요. 항상 깨고, 부수고, 만들고, 깨고, 부수고 이렇게 해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고이기 시작하면 그 땐 이미 죽기 시작하는 거예요. 거기에 비해서 한국춤은 더 쌓아가야 되는 작업이죠. 그러니까 같은 무용이라고 해서 여기에 같은 잣대를 댈 수가 없어요.
김수현 _ 저는 아까 얘기했듯이, 오랜 연륜으로 이루어진 단원들이라서 그들을 오래됐다고 뭐라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 하면 ‘어’ 해서 ‘딱’ 해주는 그런 부분이 귀한 거거든요. 단지 인원을 늘려서 좀 젊은 단원도 있고, 좀 연륜 있는 단원도 있어서 두 개 조로 운영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서로 구별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예산은 다 지자체에서 결정하는 거니까 마음대로 할 수 없죠.
신순주 _ 저도 이번에 돈을 다 끌어다 써서 지금 특별한 계획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아까 홍 감독이 그러셨잖아요, 손가락 빨고 계신다고.(웃음) 그런 상황인지 몰랐어요. 중국까지는 계획된 거라 진행하는데 다녀와서는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하고 올해를 끝내야 할 듯싶습니다.

예술감독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시·도립무용단을 통한 춤예술발전의 관건
정기헌 _ 오늘 세 분과 이야기하면서 작품 이야기를 깊이 있게 하지 못 한 것이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세 분과 이런 현황들을 이야기 나누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더하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가 있으면 한 마디씩 해주시죠.
홍승엽 _ 예술감독들이 다 느끼는 문제일 텐데, 제가 제일 아쉬운 것은 예술감독이나 예술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렇고, 특히나 공무원 사회 조직 안에는 예술가에 대한 신뢰가 없어요. 저 사람은 그냥 잠깐 왔다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우리 무용단 관계자에게 ‘나 여기 예술감독인 것 같지가 않아. 그냥 객원 안무자인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객원 안무자의 역할에 한정돼 있어. 모든 건 다 위의 조직에서, 예술감독이 해야 될 역할조차도 조직에서 다 정하고 있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조례 상에 다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다른 단체도 대동소이합니다.
그동안 나는 주로 민간단체와 비교적 자유로운 조직에서만 지휘해서 그런지 ‘예술감독을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아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감독을 그저 시나 도의 문화국 아래, 또는 문예회관 아래, 과장 밑의 행정직원의 지휘를 받는 단기계약직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조직에 잠깐 계약직으로 들어온 사람이라는 거지요. 안됐지만 그게 아주 정확한 시각일 거예요.
오늘 봤는데 강수진 고별 공연하는데 객석에서 다 하트를 들고 있더라고요. 그건 예술가에 대한 아름다운 존중과 존경의 표시거든요. 그걸 바라지는 않더라도 예술감독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제대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지식도 없고, 신뢰도 없어요. 이제 그런 인식과 신뢰를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숙제에요.
신순주 _ 홍 감독께서 객원 안무가로 와 계신 것 같다면, 저는 스폰서로 와 있는 것 같아요.없는 돈 끌어오기.(웃음)
홍승엽 _ 매니지먼트 그런 건가요? 사업구상을 한 번 해 볼까요?
김수현 _ 그렇게 얘기하니까 난 심부름꾼이네요. 단원들의 불편사항과 관의 불소통을 뚫어주는 심부름꾼이에요. ‘뭔가 불편한 게 있나요?’ ‘이런 게 우리 그 동안 안 됐어요.’ 그럼 저는 달려가서 이야기하고 그걸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을 잘 하면 단원들이 다 호응하고, 그게 잘 안 되면 대화할 꺼리가 없다고 해야하나요? 이런 느낌인 거죠. 그러니까 제작비관련 시시비비 설전하는 긴 회의 한 번 하고 나면 안무를 못 해요. 회의하다 나와서 공무원적인 마인드 상태에서 갑자기 무슨 안무를 할 수 있겠어요? (웃음)
홍승엽 _ 우리 세 사람의 현재 역할의 색깔이 지금 다 나왔네요.
정기헌 _ 시도예술단체의 현황에 대해 산전한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고 세 분과 함께여서 단원들과 작품으로 파고드는 이야기를 깊게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각 단체가 긍정적인 가능성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앞으로의 활동에 기대가 됩니다. 각 도시를 찾아가 준비하고 계신 작품들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맡은 기간 동안 단체에서 즐거운 작업 많이 만드시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