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살롱

올해 상반기 시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대거 오른 것은 ‘지금 여기’의 시집들이 아니라 현대 한국 시문학을 수놓은 옛 유명 시인들의 복간본이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년 증보판)」(윤동주), 김소월의 「초판본 진달래꽃」, 백석의 「초판본 사슴」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나태주, 이해인, 기형도, 류시화 등의 구간 시집들까지 가세했다. 복고풍의 대유행이라 할 만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집 판매량이 많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교보문고 시/에세이 분야의 전년 대비 판매 권수는 2014년 24.7%, 2015년 17.3%로 계속 하향세를 그리다가 2016년 상반기에는 25.2%로 신장했다. 전체 도서 중 판매 권수 점유율을 보아도 시/에세이는 2014년 4.8%, 2015년 4.7%로 주춤하다가 2016년 상반기에는 5.9%로 비중이 훨씬 커졌다. 종합 베스트셀러 8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오르고,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교양 에세이로 인기를 얻은 것은 이례적이다. 인터넷서점 예스24 역시 올해 상반기 시집 판매량은 27만 5279권으로 전년 동기 판매량(16만 8781권) 대비 63% 증가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집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었고, 시집이 100만 부 이상 팔리던 ‘시의 나라’에 대한 향수와 기대감을 자극한다.
우리 출판시장에서 시(시집)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 직전까지 10년간에 걸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0년대에 시작된 베스트셀러 집계 이후 1984년에 최초로 종합 순위에 오른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뜬 후 1994년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끝나, 시집 제목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질 정도다. 2000년대 이후에는 베스트셀러 상위권에서 시집이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비록 옛 시집들에 기댄 부활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거의 20년 만의 ‘시의 복권(復權)’을 반기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신문 연재 소설이 거의 사라진 시대임에도 여러 일간지에서는 깊은 울림을 주는 시를 매주 소개하고 있다.
최승자 송찬호 김선우 이이체 유계영 서윤후 등 올해 시집을 낸 시인들의 상당수가 초판을 소화하고 증쇄를 찍었다고 한다. 독한 시어를 구사하는 최승자 시인의 여덟 번 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올 6월 중순 출간 이래 한 달 만에 4쇄, 1만 부를 찍었다. 이런 판매 호조에 힘입어 문학 출판사들의 절판된 구간 시집 복간본 출간 경향도 늘고 있다.
문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시집 전문 서점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서울 신촌의 ‘위트 앤 시니컬’(유희경 시인 경영), 문래동의 ‘청색종이’(김태형 시인 경영), 대구 동인동의 문학다방 겸 시집 서점 ‘시인보호구역’(정훈교 시인 경영), 시집과 소설책을 파는 광주 조선대 앞 ‘검은책방 흰책방’(김종호 소설가 경영)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시인들을 만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문학책 읽기 모임, 창작 강좌 등도 다양하게 열린다. 시의 지평을 넓히는 살아 있는 문학캠프 역할을 넉넉히 하는 곳들이다. 지난 시대를 복기하며 시의 시대가 새로운 페이지에 쓰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