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공연평

*부산시립무용단 74회 정기공연 『업경대』 (7월15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업경대(業鏡臺)』는 김용철의 대명사라 할 만큼 안무가로서 그의 위상을 확고히 한 대표작이다. 초연 이래 공연장의 환경과 공연의 성격에 따라 그 규모를 달리해가며 꾸준히 공연해온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이미 평단의 호평과 다수 작품상 수상 경력을 볼 때 또 하나의 평을 쓴다는 것이 구태의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올해부터 부산시립무용단 단장을 역임하게 되면서 첫 작품으로 선정한 『업경대』에 대한 기대는 그간의 연륜을 통해 작품의 깊이가 한껏 무르익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게다가 부산시립무용단 단원들과 함께 부산문화회관에서 대극장 규모로 극대화한 무대라는 점에서 『업경대』의 ‘그랜드버전’에 대한 기록은 필요하다 하겠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업경대』는 ‘한 남자의 진혼곡’이라는 뜻의 『A Man’s Requiem』로 영문의 제목이 더 와 닿는다. 그 이유는 한 남자가 망자가 되어 겪는 죽음에 대한 부정, 극락과 지옥 그리고 체념과 회복 등 죽음의 오디세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마치 일주문을 거쳐 대웅전에 도착할 때까지 걸어가는 동안 자연의 삼라만상을 경험하듯 각 장을 거칠 때마다 전혀 다른 색채의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흑과 백의 색채를 이용해 죽음과 영혼을 상징하면서 극히 절제된 부분에 오방색을 첨가해 소위 ‘쉰들러 리스트 기법’ 혹은 ‘신시티 기법’이라 부르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은은한 모던함과 전통스러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예를 들어 메인 막 앞에서 벌어지는 ‘거울이 부르는 노래’인 1장은 죽음을 상징하는 검정의 이미지속의 고깔을 연상케하는 오방색이, 2장인 ‘영혼의 습지’는 폭포같이 떨어지는 흰 쌀과 꽃으로 영혼으로 비견되는 백색, 3장에서는 검정 바탕에 조명을 통한 빨강의 요소를 통해 ‘욕망의 무게’를 표현했으며, 대미를 장식한 4장 ‘지워진 자를 위한 난장’에서는 다시 한 번 오방색의 큰 천이 1층 객석의 관객들을 쓸어내리며 씻김을 표현하였다. 이후에 다시 백색의 이미지로 돌아가 눈꽃과 함께 각 장을 색채로 각인시켰을 뿐 만 아니라 부산예고 재학생들과 객원 무용수들까지 합세하여 총 60여명이 한꺼번에 종횡무진하는 역동성을 보여주는 대규모 군무의 ‘난장’은 실제와는 달리 여러 색깔을 사용한 것과 같은 컬러풀한 잔상을 제공했다. 대규모의 군무임에도 무용수들 하나하나의 표정에는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잃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남성 무용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사위와 몸짓 그리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부각시킴은 물론, 동시에 남성이 보여주는 여성성을 통한 요사스러움 또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불교와 무속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이를 풀어내는 춤의 방식과 수단은 마치 태양의 서커스의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보듯 몽환적인 색채와 비트가 강한 음악이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김용철 개인 레퍼토리를 재현했다기 보다는 국제성을 띤 검증받은 한국적 무대를 통해 지역무대를 고무시키며 지역 무용단의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이라 하겠다.
김용철 예술감독은 그간 일본,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지의 댄스페스티벌 및 심포지엄과 강습회 등으로 활동하며 아시아춤사위를 아우르는 시도를 꾀하며 많은 작품들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또한 『업경대』를 통해 부산시립무용단 단원들은 물론 부산예고 무용과 재학생들에게도 큰 경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 무용수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서는 국제적인 교류도 가능하지 않을지 사뭇 기대하게 만든다.

*오설영 『빅빅빅땡큐』(6월23일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
오설영은 리틀엔젤스예술단 출신의 현대무용가다.
자신이 유년시절에 몸담았던 이 단체에 대한 시선이 그래서인지 남다르다. 단원이었다고 리틀엔젤스에 대해 다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단원이었던 만큼 이 단체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겠다. 이번 국립현대무용단의 안무 실험 프로그램 ‘안무LAB’ 연계 공연 Part 1에 첫 작품으로 선보인 『빅빅빅땡큐』는 크게 리틀엔젤스로 활동했던 시절과 졸업 후 성인이 되어 바라본 모습 그리고 제 3자가 생각하는 리틀엔젤스 등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것에 대한 기억과 재발견 그리고 전자와 후자가 대립하면서 생기는 괴리감의 공존에 대한 이야기를 퍼포먼스가 짙은 형식으로 풀어나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큰 자개상을 가져와 단원시절 사용했던 빨강 화장케이스, 장고와 소고, 리틀엔젤스의 대표 레퍼토리인 『꼭두각시』와 『부채춤』의 관(冠), 리틀엔젤스 LP 음반, 공로패, 기념품과 사진은 물론 맥콜 등을 상 위에 빼곡히 채우고 나서 본 공연으로 들어간다. 그러는 동안 오설영과 파트너를 이룬 현대무용가 장홍석은 신디사이저로 공연시작을 알리는 징소리나 목탁소리 등을 재현하여 청각적인 효과로 신무용계 한국춤 단체를 어떻게 현대춤 형식으로 풀어낼 지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 한국춤을 전공한 컨템포러리 춤 안무가로서 그려낼 어린이 민속 예술단의 모습은 무엇일지 기대감을 갖게끔 만들었다.
공연은 주로 영상과 내레이션을 통해 이 단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1962년에 창단되어 벌써 54년의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오랜 세월만으로 그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 70년대 초에는 “The National Folk Ballet of Korea”라는, 국립민속무용단의 자격으로 대외활동을 했으며 초기의 레퍼토리들을 지금도 상연할 정도로 세월을 초월한 작품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이 단체를 통해 춤 예술은 물론 교육에까지 전반적으로 한국의 공연문화가 발전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이 단체라는 이유로 간과되거나 특히 특정종교단체의 산하기관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선입견이 공존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어린이가 보편적으로 순수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크게 부각되는 반면, 긍정적인 이면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금기시 하는 분위기 때문에 마냥 밝은 면만 보이려는 데에 대한 현실감의 괴리가 느껴지기도 하다.
안무가는 그러한 금기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낸 리틀엔젤스에 대한 시선을 시대상황에 맞물려 정치적인 도구로서의 단체로 초점을 맞추었는데, ‘여전히 안무다’ 만큼이나 『빅빅빅땡큐』라는 알듯 모를듯한 어감의 제목이 이를 대변해준다. 그러나 작품을 보다보면 “빅빅빅땡큐“라는 의미가 순수하게 ‘고마움’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가장 어린 단원의 개막 전 인사말을 여러 나라 언어로 재현하는 것이나 기념품 스푼을 던지는 것 등은 그렇다 하더라도 객석에는 리틀엔젤스 단원출신은 물론 전, 현직 지도교사들도 간간이 눈에 띠었음에도, 가르치는 이가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서나 어린이 인성교육을 위한 구호들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요소로 간주하여 희화화 시켜버린 부분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공연단을 만든 것에 대한 비판인지, 아니면 단체를 후원하는 재단의 문제인지 아니면 비판을 위한 비판인지 혼란을 야기 시켰다.
어떤 공동체이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반드시 공존한다. 그런데 리틀엔젤스예술단은 어린이로 대표되는 긍정의 긍정을 드러내려다 보니 오히려 외부에서 볼 땐 그 이미지가 작위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로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점을 안무가는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문법에서도 부정의 부정은 강한긍정으로 돌아오듯 안무가가 던지려는 의도가 장점까지 싸잡아 비틀기에만 끝나 무엇을 말하려했는지 모호해져버렸다. 관객은 크게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그런 단체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로 나뉜다. 때문에 분명한 방향성의 제시 없이 비판적 관점의 나열 속에서 간헐적으로 연출된 희극적 재현은 관객을 위한 배려라기보다 자칫 리틀엔젤스 관계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일반관객들에게 한낱 웃음꺼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혼란을 제공하는 것과 논란을 제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